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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도권 광역버스 안정화 되고 있다" 패기 넘치는 공무원들

정책에 책임지는 자세는 어디로

[취재파일] "수도권 광역버스 안정화 되고 있다" 패기 넘치는 공무원들
수도권 광역버스에서 입석 승차를 막은 지 오늘로 일주일이 됐습니다.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결국 어제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8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단속을 미루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국토부가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발표했습니다. 알고보면 이유가 좀 씁쓸합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코앞인데, 이 문제 때문에 민심이 좋지않자 부랴부랴 국회의원 세 명이 장관을 찾아가서 이런 약속을 받아냈던 겁니다. 수많은 시민들 목소리보다 성난 국회의원 세 명이 더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정책을 결정한 국토부 당국자들의 입장은 크게 바뀌지 않은 모양새입니다. ‘취약 지역에 대해서' 단속을 미룰 수 있다는 단서를 계속 달고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입석 금지를 그냥 밀고 가겠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어제 대책을 발표하면서 지금 상황을 ‘커다란 혼란 없이 안정화 되고 있다’고 평가하기까지 합니다. ‘안정화’랍니다. 시민들 이야기를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핫포토] 광역버스

버스를 일부 추가로 종점이 아니라 중간 정류장부터 투입한 부분 같이 일부 정책은 조금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습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갈 수 있게 상황이 갖춰져야 ‘안정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첫째, 상당히 많은 버스들이 그냥 예전처럼 입석 승객을 받고 있고, 둘째, 잠을 포기하고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집을 일찍 나서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아니면 아예 차를 끌고 나오는, 그러니까 버스 타기를 포기한 시민이 많기 때문에 혼란이 그나마 줄어든 것처럼보인다는 측면이 더 큽니다. 휴가철에 방학인데도 이 모양인데, 8월 지나서 개학하고 사람들이 몰리면 그땐 어떨까 아찔합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250대가 넘는 버스가 추가로 투입됐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버스가 아닙니다. 다 돈 주고 빌려온 버스들입니다. 연말까지 못해도 70억원은 더 들어갑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돈을 줄 생각이 없답니다. 그러면 누가 내야 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결국은 승객이 요금을 더 내야 합니다. 입석 승차를 막으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시나리오였습니다. 당국자들은 어제서야 기자들이 캐물으니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입석 승차를 막고 나서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말할게 아니라, 요금을 올려야 입석 승차를 막을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어야 했습니다.

또 처음부터 제대로 된 승객 예측 조사 없이 일을 저지른 책임도 큽니다. 어제 브리핑에서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 버스의 움직임과 승객이 모이는 패턴, 이동 패턴, 이런 것을 조사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백 만명이 넘는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시스템에 손을 대면서, 별 준비도 없이 그냥 정책을 던졌다고 실토한 셈입니다.
광역버스 줄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일반 기업에서 이렇게 일처리를 해서 소비자들 불만이 쏟아졌다면 그 책임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자리에 붙어있지 못했을 겁니다. 연구도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고는 “이건 안전상 필요한 정책이니까, 이 정도 불편은 당신들이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현실, 이게 바로 ‘관료주의’입니다.

이런 관료주의가 실패해서 생기는 또 다른 부작용은 불신입니다. 사람들이 또 한 번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되는 겁니다. 올 봄에도 전월세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설익은 정책을 던졌다가 시장에 혼란만 일으키고는 결국 접고 말았던 일이 떠오릅니다. 불신은 사회적 비용을 키우고, 그 피해는 다시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이번 정책 실패 과정은 감사원 같은 기관이 나서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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