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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유괴된 아들 14년만에 찾았더니 '벌금 5천만원'

[월드리포트] 유괴된 아들 14년만에 찾았더니 '벌금 5천만원'
14억 명 가까이 사는 중국에는 특이한 사연이 넘쳐흐릅니다. 별별 해괴한 일을 접하다보니 이제 웬만해서는 심드렁합니다. 처음 중국에 와서는 '세상에 이럴수가'를 연신 외쳤는데, 지금은 대부분 '인생사 그럴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렇게 무뎌진 제 감정에도 한 15세 소년의 이야기는 기가 막혔습니다. 팔자가 기구해도 이렇게까지 사나울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괴
광둥성 선전시에서 한참 시골로 들어가면 한적한 농촌 마을 룽강신툰촌이 나옵니다. 리중상 씨 가족은 이곳에 살았습니다. 리 씨는 비록 가난해도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난 지 반 년된 아들 리청룽을 보는 재미에 행복했습니다. 1999년 7월30일 생각지도 못한 비극을 겪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날 리 씨의 아내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청룽을 방에 놔두고 잠시 동네 앞 샘물로 물을 길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 바라보니 자기 집에서 한 남자가 청룽을 업고 부리나케 뛰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물동이를 던져두고 쫓아갔지만 결국 잡지 못했습니다.

청룽을 유괴한 남성은 바로 옆집에 살던 청모 씨였습니다. 청 씨는 청룽을 납치해 한 부부에게 넘겼습니다. 이 부부는 이웃 마을인 룽강둥산촌으로 가서 중년 여성에게 아기를 팔았습니다. 청룽은 다시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이 마을에 사는 한 부부에게 건네졌습니다.

●불우한 성장
양부모는 청룽에게 황줘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호적에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꽤 아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친아들이 태어나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청룽을 후이저우시에 있는 외가에 맡겼습니다. 몇 년 뒤에 다시 양어머니의 언니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청룽에게 아무도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때가 그나마 학교도 다니면서 편안하게 보낸 시절이었습니다.

청룽은 12살이 되자 양부모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양부모는 집이 좁다며 청룽과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따로 자취방을 얻어주더니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직장을 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고작 12살의 청룽이 일거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양부모와는 거의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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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룽을 잃어버린 리중상 씨 부부는 아들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멀리 광시까지 가서 수소문했습니다. 리 씨 자신은 미장공으로, 아내는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버는 족족 아들을 찾는데 썼습니다. 들인 돈만 1백만 위안, 우리 돈 1억6천만 원이 넘는다고 리씨는 말했습니다.

2012년 말 마침내 청룽을 유괴했던 청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청 씨의 실토로 중간에 청룽을 사고 판 부부와 룽강둥산촌의 중년 여성까지 검거됐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 다음 고리 역할을 한 2명이 잠적해버려 청룽의 행방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리중상 씨는 그후 틈만 나면 룽강둥산촌을 찾아갔습니다. 촌로들과 안면을 트고 아들의 행방을 확인할 만한 단서를 쫓았습니다.

이런 리씨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관할 경찰서는 룽강둥산촌을 중심으로 청룽 또래 아이들의 DNA를 일일히 조사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청룽을 찾아냈습니다. 2013년 7월31일, 납치된 지 만14년 하고도 하루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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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청룽을 찾았다는 소식에 리중상 씨는 경찰들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리 씨의 가슴에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했습니다. 혹 양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어쩌지? 그럴 경우 굳이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먼발치에서만 보고 돌아설 생각이었습니다.

직접 본 청룽의 모습에 리 씨는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학교는 그만둔 지 이미 3년이나 됐습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는 너무 오랫동안 감지 못해 누렇게 변해있었습니다.

리 씨는 당장 청룽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룽은 친부모를 만난 사실에 대단히 행복해했습니다.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들과도 친해졌습니다. 리 씨는 청룽을 잃은 뒤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더 둔 상태였습니다.

청룽은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5학년을 채 못 마쳤기 때문에 5학년 1학기로 입학했습니다. 자신보다 학년이 높은 동생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그만둔 지 꽤 됐지만 열심히 노력해 역사 과목은 98점이나 받았습니다.

●어둠의 자식
청룽의 불행은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4월 갑자기 학교에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청룽의 호적이 삭제돼 학교에서 계속 공부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리 씨는 청룽을 데려오자마자 자신의 호적에 올리려고 관할 관청에 신청했습니다.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청룽을 호적에 올리려면 30만 위안, 우리 돈 5천만 원 가까이를 벌금으로 내라는 요구했습니다. 가족계획법에 의해 리 씨는 2명까지 자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룽이 없어진 뒤 세 명의 아이를 가지면서 막내아들의 경우 8만 위안의 벌금을 이미 냈습니다. 하지만 청룽이 큰 아들로 호적에 오르면 2명의 아이가 불법적인 자녀가 되고 따라서 벌금이 가중되면서 30만 위안을 더 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리씨에게 30만 위안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청룽의 옛 호적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올 4월 후이저우시가 청룽의 호적이 불법적으로 꾸며진 것이라며 삭제해버렸고 결국 청룽은 무호적자가 됐습니다. 친부모를 찾았기 때문에 중국어로 헤이후, 말 그대로 어둠의 자식이 됐습니다. 헤이후는 의무교육을 받을 수도, 대학 진학 시험을 볼 수도 없고,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서도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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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짜 호적은 되고 진짜 호적은 불가능하죠?"

리중상 씨는 지금의 상황이 부조리하다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양부모가 청룽을 아들로 꾸며 허위로 신청한 호적은 아무 문제 없이 등록된 반면 어렵게 아들을 되찾아 자신의 호적에 올리려는 리씨의 시도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청룽과 같은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호적 등록을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도록 했습니다. 근거가 불분명한 출생신고가 들어오면 이를 인지한 의사와 간호사 등은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청룽의 경우 이 서류가 위조됐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임신 때부터 관할 기관에 이 사실을 등록해 기록을 남겨둬야 합니다. 이 서류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았는데도 무사통과 됐습니다. 리 씨는 애초 청룽의 가짜 호적이 등록되지 않았다면 청룽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았겠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청룽과 관련해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규정만 내세우는 관계기관의 태도에 분노했습니다. 벌금의 벽에 가로막혀 청룽에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했습니다.

제도는 인간의 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제 제도 속에 살다보면 거꾸로 인간을 얽매고 불행하게 만드는 사례를 셀 수 없이 접합니다. 

청룽의 사연은 그저 팔자가 사납고 기구한 탓이라며 탄식하고 말 일일까요? 제도의 허점인지, 이를 운용하는 관리의 문제인지 살펴서 바로잡아야 할 부조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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