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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해자만 5백여 명…英 국민 MC의 추악한 실체

[취재파일] 피해자만 5백여 명…英 국민 MC의 추악한 실체
지미 새빌(Jimmy Savile). 3년 전 죽은 영국 BBC 방송국의 유명 진행자 이름입니다.
새빌의 전성기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였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에 번쩍이는 장신구를 착용한 독특한 외모가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재치 있는 입담이 인기의 비결이었습니다. 영국인 대부분이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을 정도로 남녀노소에게 사랑을 받았다죠. 어디 그뿐인가요. 봉사활동에 수백억 기부까지 한 것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습니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으니까요. 그의 장례식은 생전의 명성과 인기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이렇게 전설적인 MC의 실체는 한 방송국의 짧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동영상은 1976년 그가 진행했던 BBC 방송국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의 한 장면입니다. 동영상 속에서 새빌은 젊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다음 곡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빌 오른쪽에 서 있는 한 여성이 갑자기 펄쩍펄쩍 뜁니다.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왜일까요? 자세히 보면 해당 여성의 몸을 더듬고 있는 새빌의 ‘나쁜 손’이 보입니다. 여성의 이상한 행동은 가슴과 배, 다리로 뻗어오는 새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겁니다.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태연자약하게 성추행을 저지르는 국민 MC의 모습, 영국인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방송 중에도 저 지경이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오죽했을까요.  영국 아동학대예방협회는 새빌에게 성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이 적어도 5백 명에 이른다는 새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새빌이 죽은 후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조사했을 때보다 피해자가 늘어난 겁니다. 피해자의 대부분 13세에서 15세 사이의 어린아이들이었고, 가장 어린 피해자는 고작 2살에 불과한 아기였습니다. 방송국 대기실, 자동차 등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장소를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사인을 요청했다가 피해를 당한 아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얼굴이 동네방네 알려진 유명 MC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새빌은 자선활동을 범죄에 악용했습니다. 당시 새빌은 병원이나 고아원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상은 자원봉사를 빙자해 성욕을 채운 것이었겠죠.)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의 경우에는 새빌이 자주 방문하는데다 노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자문위원으로까지 위촉되자 열쇠를 따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검은 욕심을 채우기가 너무 쉬운 환경 탓일까, 이 병원에서는 애초 알려진 16건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10대였던 피해 여성들은 새빌이 병원 직원의 눈길이 닿지 않는 칸막이 뒤나 소파에서 강압적으로 몸을 더듬었다며 몸서리쳤습니다.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BBC와 경찰, 병원 측의 묵인입니다. 당시 피해자들은 BBC 제작진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BBC 측은 방송국 간판 진행자의 불미스러운 일이 알려질 경우 시청률이 하락할 것을 염려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새빌이 봉사를 다니던 병원에도 성범죄 신고가 접수됐지만, 새빌이 내는 수많은 기부금에 눈이 멀어 쉬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편한 이유를 댐으로써 범죄를 중단시킬 기회를 놓쳤습니다.

만약, 사랑받는 국민 MC가 추악한 성범죄자라는 사실이 당시에 알려졌다면 어땠을까요? 온 언론이 하루 종일 보도해 대는 등 와글와글 시끄러웠겠지만 적어도 수백 명의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러운 범죄는 새빌 개인이 저질렀을지 몰라도 이를 키운 건 영국 사회인 셈입니다.

새빌은 아이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내용의 'jim'll fix it' 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TV에 나와 웃고 떠드는 새빌의 모습을 보고 성범죄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무참히 짓밟히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새빌이 죽은 이후에 진상 조사를 하네 마네 아무리 부관참시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 감시 기능이 죽은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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