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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전투표제, 이 좋은 걸 왜 이제서야…

[취재파일] 사전투표제, 이 좋은 걸 왜 이제서야…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사전투표제 입니다. 재보궐 선거에서 실시된 적이 있지만 전국단위 선거로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누구나, 신고 없이, 아무 투표소나 가서 간편하게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를 경험한 유권자들은 편리하다는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동시에 이 좋은 제도를 왜 이제서야 도입했냐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더군요.

사전투표가 가능해진 것은 통합명부제 도입 때문입니다. 국회가 2012년 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부재자 투표에 한해 통합명부제 도입 조항을 포함시켰는데 바로 이 조항 때문에 사전 투표가 가능해졌습니다.

통합명부란 한 마디로 전국의 선거인(=유권자)이 등록된 하나의 명부를 작성한다는 뜻입니다. 선거인 명부란 한마디로 유권자 명단입니다. 이 선거인명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들만이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면 선거 관리인들이 명부를 보고 이름을 확인한 뒤 투표할 수 있도록 투표용지를 건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2년 선거법 개정 이전까지는 각 선거구 단위로 명부를 작성했습니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선거인 명부가 개별적으로 작성되고, 이 명부를 이용해서 선거를 치렀습니다. 서울 양천구 목1동에 사는 사람들은 목1동 선거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고 ,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사는 주민들은 용강동 선거인 명부에 등록되는 식이었습니다.

선거인 명부를 이렇게 작성하다 보니 목1동 주민은 목1동에서만, 용강동 주민은 용강동의 정해진 투표소에만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목1동 주민이 용강동에 투표소에 가면, 그 투표소에 비치된 선거인 명부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투표용지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통합 선거인 명부가 도입되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통합명부란 말 그대로 전국의 모든 유권자를 하나의 명부에 등록하는 식입니다. 전국 모든 투표소에 전국 모든 유권자가 다 망라돼 있는 통합 선거인 명부가 비치되니 목1동 사람이 용강동에 가도 명부에서 이름을 확인한 뒤 투표를 할 수 있고, 용강동 주민도 목1동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물론 지역 별로 투표용지가 다르다는 기술적 문제가 남습니다. 총선이라면 서울 마포구 주민의 투표용지에는 마포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들의 기호와 이름이 인쇄돼 있어야 하고, 양천구 주민이 받는 용지에는 양천구 출마자들이 올라가 있어야 되니까요. 이런 기술적 문제는 유권자가 자신의 신분을 확인만 시켜주면 통합선거인명부에 등록된 정보에 따라 해당 지역의 투표용지를 즉석에서 인쇄해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사전투표를 해본 분들은 대부분 투표소 현장에 프린터에서 투표용지를 즉석 인쇄해주는 색다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통합선거인명부는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된 것입니다. 신고 없이 신분증만 들고 아무 투표소나 들어가서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중앙선관위는 설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아마 주민등록제도 때문일 것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주거지와 신원 정보가 전산망에 완벽하게 정리된 주민등록 제도를 갖춘 나라가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란 겁니다. 통합선거인명부를 오차 없이 작성하려면 모든 유권자의 지역과 개인 정보과 오차 없이 정확해야 하는데. 이런 명부 작성의 기초자료가 되는 주민등록 데이터가 우리나라처럼 완벽한 나라는 없다는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제서야 통합명부를 이용한 사전투표제가 도입했을까요? 중앙선관위는 이미 2008년과 2009년에도 통합명부를 이용한 사전투표제를 도입하자고 법률 제정 의견을 국회에 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다가 2012년에 이르러서야 법률이 개정됐다고 합니다. 법률 개정에 시간이 걸린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 니다. 아마도 사전투표제 실시로 인한 투표율 상승 효과를 놓고 여야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통합명부제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과제가 더 남아 있습니다. 사전투표뿐 아니라 선거일 당일 투표에도 통합명부제를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통합명부제가 도입되면 신고 없이 전국의 아무 투표소에 가서나 투표를 할수 있습니다. 선거일 당일 투표에도 통합명부제가 도입되면, 선거일 날 놀러간 사람들도 해수욕장이나 스키장 근처의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2012년 법 개정 당시에는 부재자투표(사전투표)의 경우에 한해서만 통합명부제를 실시하도록 했기 때문에 선거일 당일에는 여전히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투표할수 있습니다. 아마도 일단 사전투표의 경우에 한해 통합명부제를 도입해보고 부작용이 없으면 선거일 당일에도 적용하도록 확대하자는 취지였을 것입니다.

사전투표제에 대한 지금까지 평가는 긍정적입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편리하다며 좋아하고 있고, 정치권과 선관위도 투표율 제고 효과가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함보다 중요한 것은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직 선거가 끝나지 않은만큼 사전 투표의 안정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사전투표의 기술적 안정성이 몇 차례에 걸쳐 입증된다면 선거일 당일에도 통합명부제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한다면 통합명부제 활용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유권자의 표심이 기술적 오류 때문에 왜곡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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