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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美 '대입 소수인종 우대' 기로에…연방대법 "우대 금지해도 합헌"

“인종차별 보완 정책은 투표로 정하는 게 맞다” vs “다수결로 뭐든 할 수 있는 것 아냐”

[취재파일] 美 '대입 소수인종 우대' 기로에…연방대법 "우대 금지해도 합헌"
미국의 해묵은 인종차별 관련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22일 밤 늦게,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입학 사정 과정 등에서 인종을 하나의 요소로 고려하는 것을 금지한 미시간 주 헌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대학들이 소수 인종을 입학 사정 과정에서 우대하는 것을 ‘합헌적으로’ 주 정부가 금지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겁니다.

대입 과정 등에서 소수 인종에게 일정한 특혜를 주는 정책을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라고 부릅니다. 이 정책은 워낙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인종적 불평등을 고등 교육 기회 확대를 통해 풀어보려는 고민의 산물이었습니다. 중립적 표현으로 ‘소수 인종’을 정책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처음에 의도한 건 바로 흑인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획득한 흑인 아이들의 경우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뒤져있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성적이나 경험 등을 토대로 똑같이 대입 사정을 하면 백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의 일정 비율을 흑인 등 소수 인종에게 할당한 겁니다. 인위적으로 소수 인종의 고등교육 기회를 넓혀 줌으로써 사회적 평등을 좀 더 확보하자는 뜻입니다. 또 공공 계약이나 공무원 채용 등에서 소수인종에게 특혜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정책의 혜택은 모든 소수 인종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리 아시아계는 물론 중남미 히스패닉 등이 모두 이 정책 덕분에 그 전보다 더 많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즉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놓고 경기를 해야 공정하다는 생각도 깔려 있습니다. 이른바 ‘평평한 운동장’(Level Playing Field)를 만든 뒤에 경쟁을 시켜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같은 고등학교에서 서로의 실력을 잘 아는데, 자기보다 성적이 낮은 소수 인종 학생이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대학에 들어가고 자기는 ‘백인이라는 이유로’ 낙방하게 되면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백인 학생들의 반발이 점차 커지면서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고 이런 대입에서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폐지하거나 아예 헌법으로 금지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8개 주가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주 헌법으로 금지하거나 법률이나 행정명령 등으로 소수인종에 대한 우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연방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것도 미시간 주가 주민 투표를 통해 헌법을 고쳐서 이런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금지한 것이 헌법에 위반되느냐입니다. 지난 2006년에 58%의 미시간 주민들이 찬성한 개헌안입니다. 공립학교는 물론 정부의 계약이나 공무원 채용에 있어서 특정 인종에 대한 특혜나 차별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으로 구성되는데 엘레나 케이건(Elena Kagan) 대법관이 자신이 법무부에서 송무담당 차관으로 일하면서 이 사안을 다룬 적이 있다는 이유로 기피 신청을 해 대법관 8명이 심리에 참여했습니다. 안 그래도 진보 성향 대법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케이건 대법관이 기피했으니 애초에 보수 성향으로 결론이 날 것은 자명해 보였습니다. 물론 가끔 중도적인 대법관들이 통상의 성향과는 다른 판결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Swing Justice’라고 부르는데 이번에는 진보 성향 재판관으로 유대인인 스티븐 브레이어(Stephen Breyer) 대법관이 보수 진영에 가담해버렸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소


결과는 6대 2.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푸에르토리코 이민 2세인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또 다른 여성 재판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 뿐이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긴


애초에 대법원에 올라온 제6항소법원의 판결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금지한 미시간 주 헌법은 헌법의 평등권 보장(Equal Protection) 조항에 위반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항소법원 내에서도 판사들 사이에 격론이 붙어서 사건 심리에 동등한 자격의 항소법원 판사 15명이 참여했는데 결론이 8대7로 위헌으로 나왔습니다. 단 한 표가 많아서 위헌이 되기는 했지만 항소심에서부터 전조가 심상치 않았던 셈입니다. 이렇게 의견이 엇갈렸다는 것은 사건 자체가 대법원에 올라가서 뒤집힐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입니다.

케네디(Kennedy) 대법관이 집필한 다수 의견의 핵심은 소수인종에 대한 우대 정책을 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은 사법부가 정할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의사에 따라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시간 주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이런 헌법 개정안을 가결시킨 만큼 그들의 선택을 따르면 되는 문제이지 소수인종 우대 정책 자체를 놓고 합헌이나 위헌 여부를 심사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겁니다. 미국 언론들은 판결문을 읽은 케네디 대법관이 ‘매우 사무적으로’ 판결문을 낭독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사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는 주문인 셈입니다.

하지만 전체 108쪽에 달하는 판결문 가운데 51쪽부터 전체의 절반이 넘는 장문의 소수 의견을 쓴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매우 격앙돼 있었다고 합니다. 판결문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등 감성적이고 호소력 있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이런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녀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부부의 딸입니다. 이런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없었다면 자신은 프린스턴과 예일 로스쿨을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오늘의 자기도 없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런 감성적인 접근을 넘어서서 소토마요르가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은 바로 기존에 일반적인 행정부 등의 정책으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시행되던 것을 미시건 주가 헌법까지 개정해서 금지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소수인종이 정치적으로 다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되살리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높은 장벽을 쳐놓았다는 겁니다. 소토마요르는 소수의견문 첫머리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견제가 없다면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만들어진 입법을 통해서 소수자들을 억압할 수 있다”면서 “헌법은 다수결로도 할 수 없는 것을 정해놓았고 바로 이 사건이 그런 한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토마요르는 판결문에서 미시간 주의 경우 이런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금지한 이후 흑인 등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립대 합격생 비율이 하락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이런 정책이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2012년에는 흑인의 신입생 비율이 4%대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주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영향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미시간 주립대 신입


미국 서부의 명문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주립대인 UC 버클리의 경우에도 인구의 비율과 신입생 비율의 격차가 이런 소수인종 우대 정책 폐지 이후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UC 버클리의



미국 내에서 인종 문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해서도 ‘차별의 문제를 또 다른 차별로 푸는 것이 옳으냐?’라는 근본적인 물음도 있습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가 표면으로 부상할 것이고 많은 논의가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 흐름으로 가면 머지 않아 백인이 흑인도, 아시아계도 아닌 남미 출신의 히스패닉에 밀려서 소수 인종이 될 거라는 전망까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의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계와 함께 소수인종으로서의 특혜를 요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번 판결은 관심거리입니다. 우리의 농어촌특별전형이나 차상위계층에 대한 우대 등 사회적으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대입 제도는 물론 각종 공적 채용 과정에서의 지역 할당 같은 논의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은 끝났다는 식으로 풀이한 글도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이미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003년 Grutter v. Bollinger 판결에서 로스쿨 입시에서 다양성이라는 요소를 확보하기 위해 인종을 신입생 선발 기준의 하나로 활용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또한 ‘신입생 선발에 인종을 하나의 기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을 유지하는 것도 열려 있는 겁니다. 미국 내에서도 인종간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는 게 바람직한지 논의가 진행되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의 의미를 너무 크게 확대 해석하는 것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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