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한수진의 SBS 전망대] 세모 부도 후 두문불출 '구원파' 유병언씨는?

대담 : 이동형 작가

▷ 한수진/사회자:

검찰이 세월호 선사 비리에 착수하면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동형 작가와 관련한 내용 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작가: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세모 그룹이 97년에 부도를 맞았었죠.

▶ 이동형 작가:

네, 97년 중반에 부도를 맞았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또 이렇게 해서 다시 유병언 회장 이름이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 청해진해운의 실 소유주라고 하죠?

▶ 이동형 작가:

그렇습니다. 청해진해운의 최대 주주는 조선 업체인 ‘천해지’로 39.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천해지는 경영 컨설팅 업체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유병언 씨 두 아들들입니다. 결국 이들이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인 오너인 셈이 되는 것이죠.

▷ 한수진/사회자:

이 계열사로부터 경영 컨설팅 비용으로, 명목으로 받아서 매출 실적을 올렸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세모 그룹을 한 번 돌이켜봐야 할 것 같아요. 80년 대 신생업체였는데 한강 유람선 사업권 따내면서 아주 급부상하지 않았어요?

▶ 이동형 작가:

그렇습니다. 한강 유람선 사업권이 대단히 이권이, 이득이 있는 그런 사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세모그룹은요. 유람선 사업을 위해서 82년 10월에 급조된 회사입니다. 조선 기술도 없었고 경험이 없었죠. 또한 승선 요금도 경쟁업체였던 라이프 그룹이 2,500원, 선문그룹이 3,000원, 대선조선이 2,900원을 써냈던 것에 반해 세모는 6,000원을 적어냄으로서 나머지 8개 업체의 2~3배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권을 따냈죠. 유병언 회장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과 동향의 친한 사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과 유착 의혹이 계속해서 따라다녔죠. 또한 전두환 대통령이, 유 회장이 운영하는 업체에 방문해서 잘 봐주라고 지시한 적도 있습니다. 또한 97년에 무리한 경영, 사세 확장 등으로 세모가 부도를 맞았는데요. 고작 2년이 흐른 후 다시 청해진 해운을 세운 것으로 봤을 때 부도 직전에 거액의 회사 돈을 빼돌린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도 사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도 유 씨 일가는 외국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검찰이 세모 그룹의 자금이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횡령이나 배임, 조세 포탈 등이 있었는지 집중 수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만 해도 2,400억 원이라면서요. 해외에서는 얼마나 되는지, 수천억에 이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지금 오대양 사건이 이번에 언론에 다시 회자가 되고 있어요.

▶ 이동형 작가:

유병언 회장과 관계가 있다, 라고 해서 다시 언론에 나오고 있는데요. 잠깐 설명을 드리면요. 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주식회사 오대양의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와 가족, 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를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교주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해 집단 거주를 시켰는데, 어린 학생들은 집단 거주지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청, 장년층들은 오대양에서, 자기 공장에서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박순자는 신도들의 가족들로부터, 87억이 공식 발표이고요, 피해자들 주장으로는 200억 정도 되는 돈입니다. 거액의 돈을 사체를.

▷ 한수진/사회자:

헌금처럼 헌납을 받은 거죠.

▶ 이동형 작가:

그렇습니다. 사체를 동원해서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항의하러 온 신도의 가족들을 집단 폭행한 적도 있었는데요. 그래서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박순자 일당이 검거 되었는데, 박순자가 경찰 조사 중 실신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틈을 타 도망을 가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오대양 용인 공장에 잠적했었죠. 나중에 경찰이 방문해보니까 거기 창문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 거죠. 그것이 오대양 사건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근데 또 당시 경찰 수사 발표가 집단 자살로 결론이 내려졌는데,

이 발표 자체에 의혹을 갖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 이동형 작가:

그 때도 많았고 지금도 많이 있죠. 경찰은 집단 자살로 결론을 내렸으나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 씨가 이 공장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점하고요. 주식회사 오대양이 대통령 표창, 도지사 표창 등을 받았다는 점. 85년에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모 방송사에서 특집으로 박순자와 오대양을 다루었다는 점. 또 80년 대 급성장했던 세모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정권과 결탁한, 혹은 정권이 뒷배에 있다는 무수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자살이 아닌 정권에 의해, 혹은 세모의 유병언 회장에 의해 저질러진 타살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었죠.

그러나 경찰 수사는 자살에서 별 진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5공 정권이 끝나고 5공비리 청문회 때 오대양 사건이 5공과 관계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돌면서 재수사에 들어갔거든요. 그러나 그 때 역시 자살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1991년 7월에 오대양 신도 이었던 김도현 씨 등 6명이, 집단 자살 이전에 이미 오대양 총무 노순호 씨 등 4명을 교주 박순자의 지시로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고 밝혀서, 자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경찰이 다시 한 번 3번째 재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3번째 수사에서 역사 단순 자살로 결론이 났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3차례나 재조사 했는데 결론은 항상 같았네요.

▶ 이동형 작가:

그런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어떤 선정적 보도, 경검의 수사 미비로 이 사건은 아직까지 권력과 유착된 사건, 혹은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죠. 세모와 오대양의 관계도 바로 그런 이야기인데요. 교수 박순자가 원래 열혈 구원파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세모의 유병언 사장이 구원파의 목사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오대양의 사체 일부가 세모에 흘러 들어갔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유병언 회장이 오대양 관계자 32명을 사주해서 살해한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돌게 되었었죠.

 나중에 재판 결과 유병언 씨가 4년 형 받았거든요. 범죄 명은 사기죄였는데 오대양 사건하고는 별 관계가 없었고요. 단순 구원파 신자들을 속이고 돈을 받아서 가로챘다. 이것 때문에 구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박순자 씨는 구원파의 신도였지만 나중에 구원파에서 탈퇴를 했거든요. 그리고 오대양이라는 신흥 종교를 자신이 직접 세웠기 때문에 유병언 회장이 죽음을, 타살로 유도했다, 이런 점은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주장을 탁명환 씨가 주장했었죠. 탁명환 씨가 오랫동안 구원파하고 좋은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런 주장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금 이 유병언 씨의 구원파라는 것은 일단 정통 교단에서 보면 이단으로 결정이 내려진 건가요?

▶ 이동형 작가:

그렇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한국 개신교이죠, 이단으로 내려졌고요. 문제점은 그런 겁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세 차례나 수사를 했지 않습니까. 근데 오대양 사건이 후에 집단 자살로 결론이 나서, 사실은 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도 몇 차례 다루었습니다. 다루었는데 우리 언론이 오대양과 세모 관계에 대해서 선정적 보도를 한 것 관련해서 자성하자, 이런 분위기가 강해졌었거든요.

근데 이번 사고가 일어나면서 다시 한 번 오대양과 유병언의 관계가 있을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다시 돌고 있었던 거죠. 결론을 내면요. 오대양 사건의 결론은 교주 박순자와 강신도들이 일으킨 집단 자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회장 일가가 이번 사건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철저히 밝혀야겠죠. 그래서 마땅히 법의 단죄를 받게 해야겠으나 지금처럼 오대양 자살 뒤에 유 회장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세모 부도 이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특히 국내 언론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런데 얼굴 없는 사진작가로 활동했다는 그런 주장이 제기 되었어요. ‘아해’ 라는 이름 이었다면서요?

▶ 이동형 작가:

영어 이름을, 우리나라 말인데 보통 외국에서 아해로서 굉장히 외국에서도 유명한 사진 작가 라고 합니다. 2012년에는요.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을 통째로 이 아해라는 사진작가가 샀다고 해요. 그래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는데, 한국의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해라는 사진작가가 유 전 회장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프로필이 나와 있는데요.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와 20살 때부터 그림, 조각 등 예술 활동을 했다. 20대와 30대 초반엔 방송 분야에 종사했고 35살에 첫 사업체를 세우며 비즈니스 세계에서 창조적 재능을 발휘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이 모든 것이 유병언 회장의 경력과 일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해가 유병언 회장과 동일인물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런데 35세에 첫 사업체를 따냈는데요. 세모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해진 해운과 관련, 관련업체에서 많은 사진 작품을 거액의 돈을 주고 사들인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 사진 작품이 바로 이 아해, 유 회장의 작품이에요.

▶ 이동형 작가:

그래서 주장이 제기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회사에서 거액을 주고 유회장 작품을 비싸게 주고 산 것 아니냐, 그래서 돈을 빼돌린 것 아니냐, 이런 주장이 한쪽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인데요.

▷ 한수진/사회자:

수 백만 원을 들여서 작품을 샀다는데 연간 선원 안전 교육비로는 54만 원 썼다고 하잖아요, 청해진 해운 같은 경우는. 그런데 이런 유 회장의 작품을 사들이는 데는 수 백만 원을 썼다는 거예요.

▶ 이동형 작가:

그런데 지금 앵커께서 말씀하신대로 유 회장이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보도에 보면요. 구원파의 본산이 있거든요. 금수원이라는 기도원 같은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지금 기거 중이다, 이런 보도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자 지금 뭐 막대한 재산을 갖고도 직원들에게 인색했고 승객 안전에 무심했다, 이런 비난이 나오고 있는데 수사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칼 끝이 어디로 갈지, 지켜봐야 되겠네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동형 작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