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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코스 요리 대신 간단하게…프랑스에 부는 햄버거 열풍

[월드리포트] 코스 요리 대신 간단하게…프랑스에 부는 햄버거 열풍
     햄버거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햄버거를 미국식 싸구려 음식이라고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미식의 나라, 미슐랭 스타의 나라가 ‘정크푸드’로 알려진 햄버거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이야기가 됐습니다.

     프랑스 외식시장 분석업체인 ‘지라 콩세이’가 2013년 프랑스 샌드위치 시장을 조사했습니다. 샌드위치는 모두 21억 4천만개가 팔렸는데, 이 가운데 햄버거가 9억 7천만 개로 약 45%를 차지했습니다. 프랑스인이 식사를 간단히 해결할 때 2번 중 한 번은 햄버거를 먹었다는 겁니다. 햄버거 판매는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전체의 3분의 2가 이뤄졌고, 나머지 3분의 1은 식당에서 만든 수제 햄버거였습니다. 또 다른 조사를 보면 프랑스는 일년에 일 인당 햄버거를 14개 먹는다고 합니다. 17개를 먹는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둘째로 햄버거를 많이 먹는 나라가 됐습니다. 판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햄버거는 2000년에는 샌드위치 9개 가운데 하나 꼴로 팔렸는데, 2007년에는 7개 가운데 하나, 지난해에는 2개 가운데 하나로 증가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판매가 크게 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햄버거 열풍이 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프랑스식 식사 문화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식사는 ‘전식-본식-후식’으로 이어지는 3가지 코스를 기본으로 합니다. 프랑스인들은 식사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고, 음식을 음미하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햄버거는 그런 엄격함에서 자유롭습니다. 프랑스인 호망 씨는 “햄버거를 먹으면 상대방과 대화가 부드럽고, 음식에 너무 집중하지 않아도 돼 좋다”고 예찬했습니다.

     둘째는 점심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인들은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즐기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프랑스 사회보장위원회 통계를 보면 점심식사 시간이 1975년에는 평균 80분이었는데, 지금은 22분으로 거의 1/4로 줄었습니다. 짧아진 점심은 2000년 주당 35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시작됐습니다. 근무 시간이 줄자, 직장인들은 점심 때 식당 가는 걸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하루 업무를 다 마치려면 간단하게 해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야말로 ‘패스트푸드’가 필요했고, 햄버거가 그 역할을 한 겁니다.
    셋째는 경제적 이유 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인보다 1년에 일 인당 평균 1천 달러를 음식값으로 더 지출했다고 합니다. 식사 때 여러 코스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오자 식비를 줄여야 했습니다. 프랑스의 평범한 카페에서 점심때 3가지 코스 식사를 하면 13~15유로 정도가 듭니다.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는 6~7유로이니까 절반 이상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거죠.

    이런 요인을 이해한다 해도 의문은 남습니다. 프랑스인에게도 프랑스식 패스트푸드인 샌드위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전통적으로 간편한 식사용으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바게트 속에 햄과 버터를 넣은 이른바 장봉뵈르(jambon beurre) 샌드위치입니다. 가격도 햄버거랑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경제성과 속도 면에서 비슷한데 프랑스인들은 왜 바게트 샌드위치 대신 햄버거를 자꾸 사먹는 걸까요?

     햄버거가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미국 경영학석사 코스인 와튼스쿨의 자료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햄버거를 제일 많이 파는 업체는 세계 1위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 입니다. 맥도날드는 197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1호점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매장수가 1200개가 넘어 프랑스에서 가장 많습니다. 세계 2위 업체인 버커킹도 1981년 프랑스 시장에 진출했다가 매출 부진으로 1997년 철수했습니다. 햄버거 열풍에 작년에 매장을 다시 열기는 했습니다.

  두 기업의 엇갈린 성적표는 현지화를 얼마나 했느냐 에서 갈렸다는 겁니다. 버거킹은 미국식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결국 장사가 안돼 철수했습니다. 반면 맥도날드는 1995년부터 프랑스산 다양한 치즈와 겨자 소스를 이용하고, 요리법도 프랑스식으로 바꾸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바게트 사랑이 유별나다는 점을 고려해 버거용 빵을 바게트로 바꾼 메뉴도 출시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후식으로 커피 한 잔 주문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 착안해, 전자식 주문기를 도입한 것도 성공했습니다. 자판기처럼 버튼만 누르면 미리 주문이 끝나, 손님들은 햄버거 세트를 받아 추가 주문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맥도날드는 또 식재료의 95%를 프랑스에서, 나머지 5%는 유럽에서 들여온다고 홍보합니다. 1999년 프랑스에서는 농민 운동가인 조제 보베가 맥도날드 매장을 공격했습니다. 미국이 무역보복 조치로 프랑스산 치즈 수입을 금지한 데 항의한 것입니다. 조제 보베는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가 쓰레기 음식을 팔고 농업을 규격화,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 맥도날드는 프랑스 농가와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프랑스산을 쓴다는 걸 강조해 소비자 신뢰를 얻겠다는 전략입니다.

    수제 햄버거 열풍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산 식재료에 대한 믿음입니다. 수제 햄버거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유명 프랑스산 고기, 프랑스산 치즈, 신선한 채소가 든 햄버거를 먹으며 자부심을 표현했습니다. 마티유씨는 “미국의 저질 햄버거가 프랑스에서 적응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조금 먹을 만 해졌다는 거죠. 프랑스인들이 보기엔 탱자가 대서양을 넘어와 귤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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