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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문의 버스 질주' 풀리지 않는 의문

브레이크 고장 났나, 잘못 밟았나

[취재파일] '의문의 버스 질주' 풀리지 않는 의문
지난주 토요일 오후, 경찰에서 송파 버스 사고와 관련해 갑자기 브리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실제 수사 내용과는 다른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어서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보도는 '운전기사가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는데,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운전기사의 '졸음 운전'이 1차 사고의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경찰이 말하는 '졸음 운전'이 1차 사고 이전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언론이 말하는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는 건 1차 사고 이후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송파 버스사고
# '졸음 운전'이 1차 사고의 원인?
경찰이 공개한 버스 내부 CCTV를 보면 실제로 운전기사 염 모 씨가 고개를 떨구면서 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됩니다. 경찰은 버스가 차고지에서 출발한지 20분 뒤부터 사고가 발생한 밤 11시 40분쯤까지 1시간 반에 걸쳐 27차례나 졸음운전 징후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원본 영상을 보면 신호에 걸릴때마다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나 중간중간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눈을 비비면서 잠에서 깨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1차 사고의 원인이 졸음 운전이라는 경찰의 설명은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 '졸음 운전'이 사상자 발생의 원인?
비슷한 말이지만, 전혀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1차 사고의 원인은 '졸음 운전'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1차 사고 당시 버스의 속도는 시속 22km에 불과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영상을 보면 운전기사는 버스를 멈추지 않고 계속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송파 버스사고
좌우로 몸을 크게 움직이면서도 운전대를 놓지 않습니다. 1차 사고 이후 운전자는 보행자나 차량을 피해 운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1차 사고 이전의 '졸음 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송파 버스사고
 
지도 아랫부분에 흰 동그라미가 1차 사고가 발생한 장소입니다. 여기서부터 1km가 넘는 거리를 질주한 버스는 2차 사고를 냈고(지도 우상단 흰 동그라미 부분) 여기서 3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1분이 넘는 질주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실제 이 사고의 본질입니다.

# 브레이크... 잘못 밟았나, 고장났나
1차 사고 당시 버스 내부 CCTV엔 운전기사 염 모 씨가 '무언가'를 강하게 밟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경찰은 이 부분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염 씨가 1차로 택시 3대를 연쇄 추돌한 후 당황한 나머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당황'으로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엔 이상한 부분이 많습니다.

1차 사고와 2차 사고 사이에는 69초라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1차 사고 당시 혹여 당황을 해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하더라도 1분 넘게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는 말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 1차 사고 이후에 행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등 방어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졸음'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그렇다면 차량 파손 가능성은 어떨까요.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사고 이후 브레이크나 가속 페달의 결함이 생겼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송파 버스사고
                                              <사고 버스 '디지털 운행기록계'>

사고의 충격으로 차체 일부에 결함이 생겼다는 사실은 위에 있는 '디지털 운행기록계'를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운행기록계는 차량의 속력과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기록하는 장치로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1차 사고 이후 우회전하는 과정에서 기록이 멈췄습니다. 버스 내부에 설치된 GPS는 1차 사고 당시 꺼졌다고 경찰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 '급발진' 가능성은 없나?
사고 버스는 1차 사고 이후 1분만에 속도가 50km 이상 증가했습니다. 1차 사고때 시속 22km였는데, 2차사고 당시 장면이 찍힌 화면을 토대로 도로교통공단에선 시속 78km로 추정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가속페달을 밟아서도 충분히 올릴 수 있는 수준이지만 '급발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보통 급격하게 속도가 증가하는 '급발진'과는 성향이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버스가 일반 차량에 비해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 버스 제작사에 대한 조사는?
사고가 발생한지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경찰은 버스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에 대해선 한번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버스 자체 결함이 발견되면 조사를 벌인다고 설명했지만, 운전사와 버스회사를 수차례 조사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보통 차량 내부엔 EDR(비상 데이터 레코드)라는 기기가 존재합니다. 비상상태에서 차량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 경찰이나 국과수, 도로교통공단에서도 사고 버스에 EDR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릅니다. 제조사만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현대자동차에 대한 조사가 전무한 상황에서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 사고의 결정적인 원인이 운전자의 졸음운전이냐 기기결함이냐에 대한 논란은 수사가 마무리 될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까진 섣부른 판단은 오해만 낳겠지만, 혹여 수사가 온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 결과가 나온다면 이 역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될 겁니다. 차분하지만 정확한 수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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