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한수진의 SBS 전망대] "안중근 보고 뒷걸음질 치던 이토의 마지막 말은…"

대담 : 재미언론인 문기성 씨

▷ 한수진/사회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기사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재미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인 문기성 씨가 100여 년 전 발행된 싱가포르의 영자신문에서 찾아냈는데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도 담겨있다고 합니다. 문기성 씨 연결해서 어떻게 이 자료를 찾아냈는지,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기성 씨 안녕하세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이번에 찾아낸 기사, 언제 어디에서 발행된 신문 기사인가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싱가포르 프리프레스(The Singapore Free Press and Mercantile Advertiser) 신문입니다. 한국말로 하면 싱가포르 자유 신문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언제 발생된 기사죠?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1909년도 11월 18일 날 발생된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저격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격 당시 상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그 당시 일본 하얼빈 총영사가 실력자 이토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일본인 환영 인파들을 모집해서 하얼빈역 내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러시아 군인들이 보안, 검색이 허술해질 것 아닙니까. 그러한 허점들을 이용해서 조국의 원수인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서 안중근 장군 일행들이 나타납니다.

▷ 한수진/사회자:
저격 순간은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까?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이토가) 하얼빈 역에 도착해서 열차 안에서 러시아 재무상 코콥초프와 약 30분 동안 회담을 합니다. 열차에서 내려가지고 일본 총영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내려와 가지고 러시아 군인들과 중국 군인들이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합니다.

이토가 사열하면서 일본인 환영 인파까지 가는데, 이토가 갑자기 뒷걸음을 칩니다. 그 때 바로 안중근 의사가 나타난 것을 이토가 본 거죠. 안중근 의사가 위치한 지점이 정확하게 어디냐고 하면, 우리가 열십자를 그으면 가운데 점 좌측엔 러시아 의장대 마지막 사병이 서 있는 장소이고, 맨 앞줄 우측은 일본 환영 인파입니다. 그 사이로 안중근 의사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 거리가 이토하고 1.5m정도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바로 마주했군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네, 그 때 이토를 향해서 3발을 발사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갖고 계신 총이 7연발 권총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1발, 복부에 2발을 쏩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주 근접하게 바로 앞까지 가서 총을 쏜 거고요. 저격 직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총알을 맞고 열차로 가면서 말하기를, 영어로 “I’m done for”라고 합니다. 영어로 I’m done for 라는 것은 내 인생이 끝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더 하여 말하기를 “3발의 총탄이 내 목숨을 갖고 가고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저격 직후,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 대해서는 묘사한 장면이 있습니까?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네,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양복을 입었고요. 머리에는 모자, 영어로는 ‘shooting cap’ 이라고 하는데 그 모자를 쓰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담겨 있다고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가장 중요한 것은 안중근 의사의 위치가 드러났습니다. 첫째 줄 러시아 의장대 끝입니다. 그 끝하고 일본 환영인파, 그 사이에서 안중근 의사가 갑자기 나타나가지고 이토를 저격하려고 할 때, 이토는 안중근 의사를 봐가지고 뒷걸음을 쳤죠, 한 서너 발을, 그 때 안중근 의사가 저격을 단행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말씀을 들어보니까요. 굉장히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기사가 직접 현장을 목격하고 기사를 썼다고 볼 수 있을까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그 당시에는 로이터 등 대형 통신사들이 있습니다. 또,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중국 노동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중국문화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니까 만주의 소식이 하루면 싱가포르까지 전해집니다.

▷ 한수진/사회자:
통신사 기사를 받아서 쓴 것이다?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네, 그럴 수도 있고. 10월 26일에 안중근 의사 거사가 되었기 때문에, 18일이니까 한 3주 정도 지난 기간 동안 탐사를 해가지고 기사를 발부했는지도 모릅니다.

▷ 한수진/사회자:
왜 싱가포르 언론이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왜냐하면 당시 미국하고 일본하고는 선린 외교관계가 있었고. 그 다음에 일본에서는 보도 통제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한수진/사회자:
일본은 보도할 수가 없었고, 미국도 자세하게 보도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네, 보도를 하더라도 이렇게 이토의 죽음까지 자세하게 나온 것은 드뭅니다.

▷ 한수진/사회자:
문기성 씨가 앞서서 안중근 의사의 저격 동영상이 있다, 이런 사실도 밝혀내지 않았어요? 100여 년 전에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서 동영상 존재를 확인하신 거죠?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저격 동영상은 찾을 수 있을까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제가 예상하기로 동영상은 1909년도 경 미국에는 극장이 9천 개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그리고 당시에 촬영된 필름이 35mm입니다. 미국에 와 있다면 제가 보기에는 어딘가는 분명히 그게 있다고 보고요. 그리고 일본 NHK에서 제작한 슬픈 테러리스트라는 안중근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에 가장 중요한 저격 장면만 빼놓고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은 반드시 저격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 그 시대의 동영상이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자유자재로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찍혔을까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하얼빈 관할은 러시아가 하기 때문에 당시에, 영상을 만드는 것은 최근에 우리가 셀카 하는 것처럼 하나의 유행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뉴욕타임스 삽화를 보면 그 삽화에도 촬영기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라이트 형제 세계 최초 비행을 하는 장면도 보면 촬영 기사가 등장합니다. 영상 하나 만드는 것이 그 당시 문화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문기성 선생님께서 참 이런 귀한 자료들, 값진 자료들을 열심히 찾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찾은 자료들,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세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제가 보기에는 제3자가 보도하고 발행된 신문에 의한 자료는 역사적인 가치, 그 다음에 사료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안중근 의사 동영상 우리 정부가 꼭 찾아야 할 텐데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동영상은 제가 생각하기로는 일본 아니면 미국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단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안중근 의사 요즘 들어서 참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요. 왜 요즘 들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 문기성 씨 / 재미언론인:
일본 정부가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독일은 나치 시대에 자기들이 피해를 준 국가에 가가지고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데, 일본 정부는 뻔뻔스럽게 과거를 망각하고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안중근 장군님 같은 분들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릅니다.

▷ 한수진/사회자:
오늘이 또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입니다. 안중근 의사 저격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 듣다보니까 가슴이 참 뜨거워지네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재미언론인 문기성 씨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