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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목숨 잃게 한 원장, 여전히 형제복지원 자랑스러워해"

대담: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 한수진/사회자:
지난 토요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 - 형제복지원의 진실> 편 보셨습니까? 방송은 27년 전, 구타와 학대, 성폭행은 일상이었고, 12년 동안 500명이 넘는 목숨을 잃게 했지만, 가해자인 당시 복지원 원장은 이른바 복지재벌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의 지난 27년은 어땠을까요. 이 시간에는 1984년 8살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피해자 분의 목소리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한종선 씨 재작년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책으로 펴내서 이 사건을 세상에 다시 알린 분이신데요. 저희 프로그램에서도 당시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죠?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 한수진/사회자:
그 때 시간이 모자라서 다음에 꼭 시간을 만들어서 모시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이제야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하셨는데. 당시 쥐를 산채로 잡아먹는 분들도 있었다고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그 때 쥐를 잡아먹는 건, 당시 27소대에 있었을 때일 거예요. 제가 10살 때, 85년 즈음이었을 거예요. 소대마다 토요일에 대청소를 한 번씩 하거든요. 침대 매트리스 쌓아놓은 곳이 있어요. 그러면 그 부분이 눅눅하게, 축축하고, 쥐들이 살기가 딱 좋아요. 한번 스윽 끄집어냈는데. 그 안에서 쥐가 털도 아직 안 났고 눈도 아직 못 뜬 것, 꿈틀이들이 3마리 정도 있었어요. 당시 저는 너무 어린 나머지, 아이다보니까 가지고 놀고 싶어 하고 뭔가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크잖아요. 그래가지고 저는 그걸 키우려고 잡았던 건데. 뒤에 있던 큰 형들이 그걸 본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거 보면서, 이런 거는 보약이라면서 그냥 입으로 넣고 꾸역꾸역 씹는데, 저는 그 때 그걸 뺏긴 것에 대해서 약간 좀 화가 났었죠.

▷ 한수진/사회자:
그 만큼 너무 배가 고팠던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그렇죠. 먹지를 못하니까. 저 같은 경우는 지네나 이런 것을 잡아먹고. 솔방울, 솔잎, 새순 같은 것, 새로 나오는 것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건 거의 다 따먹었으니까.

▷ 한수진/사회자:
앞서 ‘소대’ 라는 말씀도 하셨잖아요. 잘 이해가 안 가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거기 형제복지원은 군대와 똑같아요. 군대보다는 어떻게 보면 북한수용소에 가깝다고 봐야 하겠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북한수용소랑 비슷한 곳이 어디 있느냐, 라고 말씀 많이 하시지만, 솔직히 형제복지원이 그런 곳이었어요.
형제복지원 캡쳐

▷ 한수진/사회자:
군대처럼 만들어놓고. 중대장, 소대장, 조장이라는 사람들이 군기 잡기 위해서 매일 사람들을 무조건 팼다면서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거기 잡혀온 사람들이 박인근에게 충성을 하게 되면. 거기서 중대장과 선도부장, 선도 위원, 이런 식으로 각 완장을 차게 돼요. 그렇게 완장을 차게 되고, 중대장부터 해가지고 전부다 잡혀온 사람들이 그렇게 직책을 맡았어요.

▷ 한수진/사회자: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폭력을 가하고 그런 끔찍한 일을 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네요. 그런데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이 있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건가,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에 어떻게 들어가시게 된 거죠?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저 같은 경우는 당시 아버지 슬하에 큰누나, 작은누나, 그리고 제가 3남매로 있었는데. 큰 누나는 어느 순간 다른 친척집으로 간걸로 알고 있고, 아버지 손에 의해서 작은 누나와 제가 파출소에 갔던 거죠. 그런데 당시 아버지가 파출소에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입소 자료에는 통장이 맡긴 것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이미 문서위조가 되어 있었던 거고 그리고 위탁 종용이 엄청나게 횡행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까 그 당시에 “혼자서 어떻게 키우느냐, 그렇게 보내라고 하니까 보냈던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 한수진/사회자:
복지 시설인줄 알고 간 거예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그렇죠. 국가가 지원해주고. 당시 20억 이면 엄청나게 큰돈이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 엄청난 돈이 국가에서 지원이 되고 있었고요. 끌려간 것이 1984년 우리 나이로 9살의 일이었고요. 근데 그 때 형지복지원에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다면서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거의 대부분이 자기 스스로 들어온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진짜로. 0.01%도 없을 것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대부분 왜 오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끌려왔다?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같이 생활하면서 “니는 어떻게 들어 왔냐” 하고 물어볼 기회가 있잖아요. 그러면 전부다 말도 안 되게, 집 앞에서 놀다가 잡혀온 애들도 있고, 학교 갔다가 오는 길에 옷이 지저분하니까 잡혀온 애들도 있고, 말도 안 되는, 그냥 말 그대로 인신매매 수준이었다고 보면 되요, 아동들은 거의.

▷ 한수진/사회자:
아시안게임도 있고 올림픽도 있고 해서 그래서 많이들 잡아오고 그랬다면서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당시 사회정화사업이라고 해가지고 전두환 대통령 때 그렇게 했던 거죠. 내무부 훈령 410호에 의해서 부랑자들을 싹 치우라는 그런 공문도 보내고 했던 것 같은데. 저희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국가사업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누구나 다 환영할 겁니다. 88올림픽이든 아시안게임이든 국책사업이잖아요. 국가 이름을 드높이는 브랜드 사업이고 하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환영입니다. 근데 그로 인해가지고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형제복지원 캡쳐

▷ 한수진/사회자:
그런 정부 정책을 복지원에서 이용을 한 거죠. 근데 왜 그렇게 구타를 하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고 그랬습니까?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당시 3,500명이라는 수용 인원을 원장 혼자서 관리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절대로. 무작위로 잡혀온 사람들이니까 관리 차원에서는 아마 공포가 필요했겠죠. 본보기로 누군가 말을 안 들으면 반쯤 죽이고. 그러다가 진짜 죽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우리 원생들이 그걸 지켜보고 말을 안 들을 수 없게 되는 거겠죠.

▷ 한수진/사회자:
무턱대고 사람을 패는데도 반항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군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그렇죠. 아마 513명의 사망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반항을 했다가 자기의 억울함, 내가 왜 여기 끌려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의제기를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 그렇게 죽어나갔을 것 같아요.

▷ 한수진/사회자:
나는 나가고 싶다, 난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하면 무조건 때리고?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그렇죠. 일단 거꾸로 매달아가지고 개 패듯이, 그렇게 입에 재갈 물려놓고 두들겨 패면 누가 버텨냅니까, 아무도 못 버텨낸다고 봐요.

▷ 한수진/사회자:
그런 인권유린의 현장에 부산시나 정부기관에서 혹시 점검을 나오거나 와서 보러 온 적도 없었어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그랬던 적은 전혀 없던 것 같아요. 가끔가다가 해외선교사업들이나 그리고 뭐 은인이라고 해서 박인근이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아동들은 그 날을 준비해서 며칠 전부터 대청소를 싹 하고 옷도 새 옷으로 싹 갈아입어요, 추리닝을. 그리고 정문 입구에서부터 차타고 들어와서 시찰하는 곳까지 아동들이 일렬로 쫙 서요, 양옆으로. 그래놓고 만국기를 하나씩 들고 그 사람들, 원장하고 같이 차타고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북한하고 똑같이 만국기 흔들고 박수 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도감독 해야 될 기관까지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건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거죠, 뒷거래가 있었던 거고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당시 국가 예산 20억 받을 정도면,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최소한 그거라도 관리를 해야 되잖아요. 그것조차도 안 했다는 거죠.

▷ 한수진/사회자:
지금 박인근, 박인근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시설의 원장이에요. 박인근 원장. 이런 문제들이 알려졌는데도 불과 2년 6개월 밖에 형을 살지 않았고요. 그나마도 재판을 거쳐서 형이 계속 줄어서 이렇게 된 거죠?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그것도 저희 피해자들은 전혀 몰랐던 거죠. 형제복지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우리는 풀려났지 않습니까. 풀려나고 박인근은 구속되었다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 인간은 이렇게 악행을 저질렀으니까 사형까지는 그냥 가야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세월이 지나가지고 검색을 해보니까 2년 6개월 받았다는 것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죠.

저희들은 아무 죄도 안 짓고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가가지고 사람이 죽거나 팔 다리가 부러져서 장애인이 되거나 정신지체 장애인이 되거나 해서 이렇게 몇 십 년 씩 고생하고 있는데. 그들은 2년 6개월 달랑, 일사부재리의 원칙 이런 걸로 해서 죄도 다시 묻지 못하게 만들어 놔버렸으니, 저희 피해자들은 속이 답답하죠. 아마 국민들도 답답하실 거예요.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거죠. 감금 부분이 무죄로 판결이 되어서 나머지 폭행이나 살인죄는 거의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지 못했다는 걸로 알려지고 있는데 말이죠. 지금 박인근 원장이 중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하죠? 자식들은 복지법인 이어받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혹시 원장 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적 있습니까?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그랬던 적은 한 번도 없던 것 같고요. 박인근 원장 측은, 말 그대로 박인근은, “형제복지원은 자기가 국가를 위해서 했다, 그리고 국가가 시켰으니까 했다. 떳떳하다”라고 지금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분이에요.

▷ 한수진/사회자:
이번에 방송에도 나왔잖아요. 박인근 원장 아들이 “우리 아버지도 인권이 있다, 왜 촬영을 하느냐.” 이런 장면이 있었어요. 시청자들이 참 많이 분노를 하셨는데. 어떤 생각 드셨어요? (해당 장면은 뉴스타파 촬영분)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뉴스타파에서 취재를 하면서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보고. 박인근 한 번 직접 만나볼 생각 없느냐고 했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제가 박인근을 만나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폭력으로 사건 마무리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건 어떻게든 정상적인, 합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참겠습니다. 안 내려 가겠습니다” 했는데. 그 영상을 보고 나서는 ‘진짜 만약에 내려갔으면 진짜, 죽였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폭력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 짓게 될 것 같았던 거죠.

▷ 한수진/사회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피해자 분들 하나같이 다 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어요. 고통스러운 기억과 싸우면서 지난 27년을 보내셨을 것 같은데. 아마 또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돌리기 싫어서 모른 척하고 사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고요. 지금 피해자들 중에서 얼마나 연락이 되고 있나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80~100명 정도요.

▷ 한수진/사회자:
이 분들 사정이 대부분 다 많이 어려우시다고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아니면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더라도 다 누락되거나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그리고 법의 혜택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또 다시 시설 안에 갇혀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고요.

▷ 한수진/사회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법이 오늘 발의된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정부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제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가슴에 안고 지금까지 살아온 지가 어느새 28년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지금 현 시점에 터진 것만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저는 문제라고 봐요. 이미 근본적인 잘못이 있는데, 그 근본적인 걸 계속, 썩어 들어가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고 지금 터지는 것만 막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봐요. 근본적인 것을 뜯어내야만 앞으로 이런 사건들이 안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요.
저희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피해자가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또 생길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픈 기억을 다시 마주한 채 이야기를 하고 증언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 형제복지원이라는 곳은, 우리 같은 피해자는, 진짜 부랑자여서 들어갔다기보다는 누구나가 부랑자라는 이름으로 잡혀 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 오명이 떨어지지가 않죠. 어떤 언론이든 형제복지원 하면, 부랑자 시설, 이렇게 해서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부랑자들 아니었느냐, 라는 인식으로 아직까지 언론이 나오는 곳도 있고 이야기가 되는 게 있어서 피해자들이 많이 힘들어하거든요.

▷ 한수진/사회자:
그야말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죠. 명확한 진상규명 필요하고요.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도 꼭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한종선 공동대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모임)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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