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다시 쓰는 '모형탑 훈련기'

[취재파일] 다시 쓰는 '모형탑 훈련기'
 재작년... 계절상 가을로 접어드는 인디언 썸머가 잠깐 찾아온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국방부에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제작성을 강화하라는 보도국의 주문이 떨어졌습니다. 방송 리포트에 제작성을 가미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현장성을 살려주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토론과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체험 리포트'를 제작해보자.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기자가 1인칭의 관점으로 현장에 직접 참여하면 어떨까(?)하는 관점을 전환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소재는 특전사 여름캠프였습니다. 극한의 특전사 훈련을 경험하며 정신력을 키워보자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곳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두려울까? 형용사와 부사를 기사에 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직접한번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특전사 훈련을 가장 실감있게 보여주기 위해선 고소공포증이 있는 제가 11미터 모형탑 낙하훈련을 선택했습니다. 낙하 훈련에 필요한 헬멧과 레펠을 연결하기 위한 특수복장을 착용하는 것도 초보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찌나 무겁던지...

11미터 모형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습니다. 사람들은 일반 잔디밭이라는데 제 눈에는 검은색 심해 바다가 보이고 귀에서 종소리가 나더군요.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음식인 줄 알면서도 먹어야 하는 기분이랄까요? 프로의 세계는 비정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번의 시도끝에 뛰어내린 모형탑 훈련...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현장감은 영상과 음성의 조화로 전달됩니다. 음성에는 기자의 오디오와 인터뷰도 있지만 현장음도 있습니다. 모형탑의 현장음을 네티즌들은 이렇게 표현해 놨더군요.
(으아아~카캬커켜코쿄쿠큐크기~) 시인 이상의 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나마 고상한 표현입니다. 다른 네티즌은 해석불가라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으아아~!#%@!!#$!@#($!@#(~) 사실 리포트 편집당일 전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의 전투수영 취재를 위해 출장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제가 편집실에 있었다면 현장음을 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티즌의 반응은 의외로 폭발적이었습니다. '기자양반, 가래기자, 예능데스크'라는 별도의 수식어가 제 이름 앞에 접착제처럼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진지하고 사려깊은...기자가 꿈꿨던 '젠틀맨'의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감이 있었지만 관심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딱딱한 이미지가 아니라 괴상한 숨소리와 불량한 복장, 우스꽝스럽기도 한 망가진 기자의 모습을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다소 신선하다고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적어도 '체험리포트'가 현장감을 전달하는데에는 더없이 좋은 방식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한석 전투기

체험리포트는 계속됐습니다. 'F-16 전투기 탑승기'는 조수석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기자의 표정변화를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보여드리진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유유히 하늘을 여행하는 멋드러진 직업이 아니라 ...매순간 중력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생과 사를 넘나드는 파일럿의 애환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80kg 무게의 장비로 몸 전체를 중무장 한 폭발물 탐지반과 유격훈련, 전투수영 체험기까지...1년 남짓 국방부 기자로 살면서 관찰자에서 체험자로 관점을 전환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제작성을 강화하라는 지침이 비단 국방부에만 내려온 것은 아닙니다. 정치부에서 제작성을 가미한 현장 리포트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그나마 국방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밝혀둡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