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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돌아온 슛도사' 이충희 감독, 이번에는 성공할까?

[취재파일] '돌아온 슛도사' 이충희 감독, 이번에는 성공할까?
1970년대 신동파, 1980년대 이충희, 김현준, 1990년대 문경은, 우지원….

지금은 명맥이 끊긴 한국 농구의 슈터 계보입니다. 이 중에서도 저는 이충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1980년대 실업팀 현대전자에서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 한 경기에 30점 이상을 어렵지 않게 넣었던 선수였죠. 어느 각도, 어떤 상황에서도 림에 쏙 빨려 들어갔던 3점슛과 상대 수비를 무력화 시키는 페이드 어웨이 슛이 일품이었습니다. 지금은 국가대표팀이 중국과 중동팀들에 밀려 아시아에서도 맥을 못 추는 현실로 전락했지만, 당시는 달랐습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결승, 1987년 방콕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과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이충희가 있었습니다. 슛에 있어서는 최고라며 '슛도사'라는 별명이 붙었고, 아시아 무대를 뛰어 넘는 슛 실력에 당시 NBA와 스페인리그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던 이충희였지만, 사령탑으로는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 프로농구 출범 2년차인 1997-1998 시즌 창원 LG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그 해 팀을 정규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수비 농구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반짝 돌풍에 그쳤습니다. 이후는 악전고투와 하향세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외국인 선수와 주먹다짐까지하는 불상사 속에 결국 2000년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에 실패해 지휘봉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후 7년 만에 어렵게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 사령탑으로 복귀했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습니다.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이라는 악재 속에 4승 22패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7개월 만에 시즌 도중 경질되는 아픔을 맛봤습니다. 2009년 모교인 고려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선수 폭행과 고연전 패배 등으로 3개월 만에 물러나 체면만 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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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며 와신상담을 노리던 이충희 감독에게 드디어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된 강동희 감독의 뒤를 이어 동부의 사령탑에 선임됐습니다. 2007년 오리온스 감독 이후 5년 4개월만의 프로팀 감독 복귀입니다. 1959년생으로 현역 프로팀 사령탑 가운데 삼성 김동광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이충희 감독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취임 기자회견장에서 이충희 감독은 부쩍 설레고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길게 느껴뎠던 야인 시절 해설을 하며 농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며 예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자신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센터 김주성과 귀화혼혈 선수 이승준이 버티고 있는데다 포워드 윤호영도 내년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등 동부의 선수층은 이충희 감독이 지금까지 맡아왔던 LG와 오리온스보다 화려한 것이 사실입니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뒤숭숭했던 지난 시즌을 제외하고는 동부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왔습니다. 그래서 이충희 감독은 동부 구단이나 팬들이 상위권 성적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임 첫 해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충희 감독과 동부 선수단은 오는 6일 상견례와 함께 새 시즌을 위한 훈련에 돌입합니다. 최악의 시즌을 보낸 동부가 아픔을 딛고 다시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이충희 감독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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