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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성민'…곡절 많은 황금의 92학번

'아! 조성민'…곡절 많은 황금의 92학번
조성민이 6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한국 야구의 황금 세대로 일컬어진 대학 92학번 선수들의 곡절 많은 인생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73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 불혹에 접어든 92학번 선수들은 아마추어 야구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이들로 프로에서도 스타로서의 기질을 뽐내며 이름값을 했다.

한·미·일에서 현역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말 은퇴한 박찬호를 필두로 조성민, 박재홍(전 SK), 임선동(전 현대 유니콘스), 차명주(전 한화), 김종국(KIA 코치), 홍원기(넥센 코치), 손혁(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이 92학번의 주축이다.

대학 대신 프로로 직행한 염종석(롯데 코치), 박종호(LG 코치), 정민철(한화 코치) 등도 동기생이다.

정민철은 이들보다 한 살 많지만 대전고 진학 때 1년을 쉬어 동급생으로 졸업했다.

면면이 화려했던 만큼 이들의 인생 이야기도 다양하다.

92학번 선수 중 현역에서 뛰는 선수는 송지만(넥센)과 박재홍뿐이다.

대부분 프로에서 지도자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고 일부는 야구계를 아예 떠났다.

나란히 프로 18년차를 맞은 송지만과 박재홍은 기록의 사나이다.

송지만은 통산 홈런 309개·1천22타점을, 박재홍은 300홈런·267도루·1천81타점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세월을 비켜가지 못해 송지만은 지난해보다 1억7천만원 삭감된 연봉 8천만원에 재계약했고, 박재홍은 SK의 코치 제의를 거부하고 다른 팀 물색에 나섰다.

1992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슬라이더 종결자' 염종석은 통산 93승(133패), 평균자책점 3.76을 남기고 2008년 말 은퇴했다.

차명주는 2001년부터 두산과 한화에서 5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를 올리며 왼손 계투로 이름을 날리다가 2007년 현역 생활을 접었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든 정민철은 161승128패,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하고 2010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스위치히터 박종호는 2003~2004년 39경기 연속 안타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미국에서 아시아 투수 통산 최다승(124승)을 남긴 박찬호는 일본과 한국에서 2년간 6승을 보태 130승을 올리고 92학번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을 마감했다.

야구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도 있으나 좌절을 겪어 일찍 날개가 꺾인 이들도 적지 않다.

아마추어 시절 조성민, 손경수와 함께 '빅 3' 투수로 꼽힌 임선동이 대표적이다.

일본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하는 바람에 1차 지명 구단인 LG 트윈스와 법정 소송을 벌인 우완 임선동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18승을 거둬 정민태·김수경과 공동 다승왕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 등으로 52승(36패)만 남기고 2007년 은퇴했다.

고려대 졸업과 함께 일본프로야구의 심장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조성민은 한국과 일본에서 14승14패10세이브를 기록했다.

인기 탤런트 고(故) 최진실 씨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렸으나 이후 파경, 최씨의 사망으로 불행을 겪었고 지도자로서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날 세상을 등졌다.

OB 베어스(현 두산)의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홍익대를 택한 경기고 에이스 손경수는 생활고로 1993년 홍대 자퇴 후 OB에 입단했다.

하지만 몸 관리 실패로 프로에서 꽃 피우지 못하고 1995년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신일고 재학 당시 초고교급 타자로 명성을 날린 설종진도 불운한 선수다.

중앙대 입학 후 야구장 제초작업이 끝난 뒤 이를 소각하다 양다리에 화상을 입고 병상에 누웠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에 입단해 재기를 노렸으나 이식한 피부가 말썽을 일으켜 2001년 은퇴했다.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현재 넥센 2군 매니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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