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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최진영·조성민…비운의 가족사

최진실·최진영·조성민…비운의 가족사
2008년 10월2일 톱스타 최진실 자살.

향년 40세.

2010년 3월29일 탤런트 최진영 자살.

향년 39세.

2013년 1월6일 전 야구스타 조성민 자살.

향년 40세.

최진실에 이어 남동생 최진영,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전남편 조성민까지 모두 세상을 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 어려운 비극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최진실-진영 남매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이겨내고 각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와 인기 스타가 된 성공스토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다.

그러나 누나 최진실이 폭력이 점철된 떠들썩한 이혼과 그에 따른 우울증으로 2008년 10월2일 자살한 데 이어, 약 1년 반 만에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 남매의 성공신화는 슬프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진실은 스무살이던 1988년 한 CF에서 유명 여배우 대신 수영장에 뛰어드는 대역 연기를 펼치는 등 단역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대히트를 친 가전 CF 이후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고, 이후 20년 큰 사랑을 받으며 연예계의 정상에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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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면서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따랐다.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최진영도 귀여운 외모로 어필하며 1990년대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최진실은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며 동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최진영 역시 누나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제일 앞에 서서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 남매는 연예계에서 '용감한 최씨 남매'로 불렸다.

특히 최진영이 배우로서 지지부진하다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 데뷔를 했을 때는 최진실이 동생의 재기를 기원하며 종횡무진 홍보활동을 펼친 사실이 유명하다.

최진영은 당시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남매의 성공 신화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최진실이 2004년 9월 조성민과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최진영이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최진실은 정점에 있던 2000년 12월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않았고,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되는 사건까지 불거진 후 둘은 이혼했다.

둘을 슬하에 환희와 준희 남매를 낳았다.

이후 모든 연예활동을 접는 등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던 최진실은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하는데, 그 뒤에는 그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최진영이 있었다.

2008년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아줌마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최진실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영이가 아빠처럼 조카들을 너무 잘 봐줘 고맙고, 그런 진영이가 집안을 지키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진실은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자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최진영은 자택에서 목 맨 채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누나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줬다.

최진영은 이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줬다.

그러더니 끝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누나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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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 뒤 이번에는 조성민이 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민은 탁월한 재능에도 굴곡 많은 인생 탓에 꽃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194㎝의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속구를 앞세운 그는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계약금 1억5천만엔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재능을 만개하는 듯했다.

그러나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재기에 실패해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화제 속에 맺어진 최진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폭행, 외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한화에 깜짝 입단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는 듯했던 그는 2011년 두산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조성민까지 떠나면서 최진실-조성민의 자녀 환희와 준희는 부모를 모두 잃게 됐다.

환희와 준희는 그간 외할머니 정옥숙 씨가 양육해왔다.

최진실의 사망 후 조성민이 두 자녀의 양육권, 친권을 놓고 유족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2008년 12월8일 외할머니인 정씨에게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권 등 모든 권리를 넘겼다.

엄마에 이어 함께 살던 외삼촌의 죽음은 두 아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주변의 보살핌 속에 이를 극복하고 지난해 9월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패밀리 합창단'에 출연해 엄마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둘은 엄마의 생일이 12월24일이라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골랐다며 노래를 들려줬고, 최진실을 향해 "좋은 재능과 외모를 줘서 감사하다"며 "하늘에서 행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 애틋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엄마, 외삼촌에 이어 아빠마저 세상을 뜨면서 이들 남매는 또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마주하게 됐다.

외할머니 정씨 역시 아들, 딸에 이어 사위까지 잃으면서 다시 큰 고통을 안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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