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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학교 VS 모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취재파일] 학교 VS 모텔,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쌍방이 있는데, 서로의 입장이 엇갈릴 때. 그런데 양쪽 입장이 다 근거가 있고 납득이 될 때. 그럴 때 기사를 쓰기 참 어렵습니다. 차라리 한쪽이 잘못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캐묻고 비판할 텐데, 상황이 그렇지 않으면 '왜 하필 하고 많은 기사 중에 내가 취재하는 게 이런 거야!'하고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3일 8시 뉴스에 보도된 '모텔 옆 대안학교 폐쇄 위기'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모텔은 또 모텔대로, 들어보면 다 그 사정이 이해가 갑니다.

학교는 지난 해 가을, 지금 자리에 들어선 대안학교입니다. 원래 학생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지난 해 통합 학사를 짓고 한곳에 모였습니다. 현재 초등과정부터 고등과정까지의 학생 68명이 재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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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은 어떨까요. 모텔 대표는 2010년 경매로 이곳을 매입하고 지난 해 봄부터 모텔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문을 열기 석달 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미 모텔이 있었고, 학교는 바로 길 건너에 모텔이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왔습니다.

모텔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으니, 학교는 모텔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모텔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생각해 보시죠. 손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바로 앞에 학교가 있으면 왠지 들어오기 좀 쑥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설사 들어왔다고 해도, 창문을 열면 학생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래도 불편합니다.

손님들이 싫어하니 모텔 입장에선 당연히 학교가 못마땅하겠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학교가 교육청에서 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시설이었습니다. 또, 학교 건물이 원래 학교 용도가 아니라 근린생활 시설로 준공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일단 학교가 규정을 어긴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 말고도 학교와 모텔 사이엔 갈등이 있었습니다. 모텔에서 설치한 배수관이 학교와 모텔 주변을 지나가는데, 학교는 모텔이 학교가 소유한 땅을 침범해 시설물을 놓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텔은 펄쩍 뜁니다. 학교측에서 배수관을 연결하고 사용하는 데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동의서까지 써 놓고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한다는 겁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보니 모텔측은 학교측을 상대로 민원을 냈습니다. 모텔 앞에 불법 학교시설이 있는데, 교육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니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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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즈음 교육청이 학교에 공문을 하나 보냈습니다.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육청은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의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하여 사실상 학교의 형태로 운영하는 시설의 폐쇄를 명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교육청은 만약 지금과 같은 상태로 '학교' 명칭을 계속 사용하면, 시설폐쇄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도 언급했습니다.

국내의 많은 대안학교가 미인가로 운영되는 상황, 그리고 미인가 시설이어도 실제로 행정 처분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문 상황에서 학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교육청이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서 대안학교가 갖는 의미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학교는 또 정식으로 학교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는데, 교육청이 인가할 수 있는지 평가도 안해보고 무작정 학교를 폐쇄하려 든다고 분노했습니다.

모텔이 민원을 낸 시점과 교육청이 공문을 보낸 시점이 워낙 비슷하게 맞물리다 보니 학교와 학부모들은 교육청이 모텔의 압력을 받고 시설폐쇄를 결정했다고 의심하게 됐습니다. 급기야 교육청과 모텔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교육청은 물론 절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민원과 공문 발송 시기가 비슷한 것은 우연일 뿐이고, 이 일은 모텔과 무관하게 어디까지나 법대로 진행한 내용이라고 해명합니다. 교육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행정기관으로서 역할과 책임 역시 중요하다는 거죠. 덧붙여서 학교에 정식으로 인가를 받으라고 몇 차례나 권고했는데, 학교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인 즉, 학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봤더니 내용이 불충분해서 반려했는데, 이후에 학교가 추가로 제출한 서류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육청은 학교가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고, 규정대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입니다.

듣고 보니 어떠십니까? 잘못한 쪽을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절차와 규정을 어긴 학교? 금전적 손실을 이유로 교육기관을 상대로 진정을 낸 모텔? 그것도 아니면 법의 논리로 학교를 처벌하겠다는 교육청?

학교가 모텔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방음벽을 설치하거나 양해를 구했다면, 모텔이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대안을 찾았다면, 교육청이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좀 더 매끄럽게 행정처리를 했다면 상황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학교 폐쇄는 결코 해결방안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모텔이 피해를 입어서도 안됩니다. 지금처럼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끝없이 입장 차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학교와 모텔, 교육청이 지혜를 모아서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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