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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똥 묻은 개 VS 겨 묻은 개

[취재파일] 똥 묻은 개 VS 겨 묻은 개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여야의 공방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은 연말에 있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 강해 여야간 단순한 정책이나 노선의 갈등을 넘어 양대 정당의 사활을 건 싸움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대선을 코앞에 둔 선거인 만큼 양측은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직접 나서 진두지휘에 나섰다. 무기만 안들었지 명운을 건 한판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선제공격에 나선 쪽은 야당이었다. 지난해 말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을 시작으로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 등 잇따라 터진 각종 비리 사건을 들어 여당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벼랑 끝에 몰린 옛 한나라당은 당내 잠룡인 박근혜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세우고 당명까지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정권 심판론까지 겹치면서 좀처럼 수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 새누리, 한미 FTA로 승부수

새누리당이 공세로 돌아선 건 지난 13일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총대를 메고 민주통합당의 한미FTA 폐기주장을 문제삼고 나섰다. 박 위원장은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FTA를 추진한다고 해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당장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미FTA에 대해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강세지역인 영남의 농어촌 지역구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는데다 2,30대 청년층에서도 반대의견이 큰 한미FTA를 굳이 쟁점화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 여파 때문인지 박 위원장이 직접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후속 발언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 정권 심판론 VS 야당 심판론

주춤하는 듯 보였던 여당의 공세는 지난 2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다시 불붙었다. 이번에도 박근혜 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박 위원장은 지난 번 발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야당 심판론'을 제기했다.  박 위원장은 먼저 현재의 야당을 새누리당의 심판 주체로 보지 않는다며 야당의 정권 심판론을 일축했다.

또 자기 스스로 폐족(廢族)이라 부를 만큼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야당이 정권 심판을 말할 자격이 있냐며 한미FTA 등 과거 정권에서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에 대해 말 바꾸기를 한 야당이야말로 심판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7대 대선 당시 선거에서 패한 야당측이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 폐족이라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받아친 것이다.

한미FTA를 들고 나오긴 했지만 박 위원장은 한미FTA자체보다는 야당의 말 바꾸기에 초점을 맞췄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을 "주요 정책에도 말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야당의 약점을 공략하는 동시에 박 위원장 자신의 강점으로 꼽히는 '원칙과 소신', '신뢰성'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FTA의 민감한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해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 박근혜-한명숙, 영수 겨냥 난타전

여당의 한미 FTA 쟁점화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대응을 자제했던 야당은 발끈하고 나섰다. 야당은 박근혜 위원장을 직접 겨냥해 정수장학회 문제를 꺼내들었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려면 강제헌납받은 정수장학회부터 사회에 환원하라고 압박했다. 박 위원장측이 지난 2005년 이사장직을 그만 두면서 끝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대권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까지 나서 "장물을 남에게 맡겨놓으면 장물이 아니냐"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여당도 한명숙 대표를 향해 부부계좌에서 발견된 2억 4천만 원의 출처를 밝히라고 압박했다. 또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며 "민주통합당 지도부에는 노무현 정부 주요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데 과연 노무현 정부는 깨끗하고 능력이 있었냐"고 반박했다. 나아가 "부패 수사가 시작되자,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때 그 옆에 있던 분들이 부패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먼저 자신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 여야, 총선 난타전 점입가경

총선을 앞둔 선전전이 과열되면서 점차 여야간 공방을 넘어 이제는 상대당의 대표를 겨냥한 비방전으로 변질되고 있다. '폐족'에 '똥 묻은 개' 까지 나왔으니 오늘은 또 어떤 '단어'가 등장할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원색적인 단어가 대부분 여당 쪽에서 나오는 걸 보면 여당이 급하긴 급한 것 같다.)

정치권 스스로 서로 간의 공방전을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사이의 나무람에 비유하고 있는 실정이니 품격있는 선거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 눈높이'가 선거판에도 적용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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