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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출신 사외이사, 대기업 불법 눈감아주나

판검사 출신 사외이사, 대기업 불법 눈감아주나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고있는 판검사 출신 고위인사들이 대주주와 경영진 감시보다 로비에 활용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기업의 부정이나 불법을 가려주는 방패막이 역할이 이들의 주임무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화려한 경력을 무기 삼아 여러 회사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며 수억 원의 연봉까지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주주와 사외이사의 유착을 막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려면 사외이사 진입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기업에 검찰총장·고법원장 출신 넘쳐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와 임원 중 법조인 출신은 76명이다.

이중 차관급 이상의 법조계 최고위직에 있었던 인사들은 19명에 달한다.

법무부 장관(1명), 검찰총장(3명), 헌법재판소 재판관(2명), 서울고법원장(4명), 법무부 차관(3명), 법제처장(2명), 지법원장(1명), 고등검사장(3명) 출신들이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대거 포진하고 있다.

송정호 전 법무부장관은 고려아연,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외이사를 각각 맡고 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하나금융지주의 이사회 의장(사외이사),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이다. 주선회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CJ제일제당과 웅진코웨이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검사장과 법원장급 인사는 모두 12명이다. 윤동민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이면서 현재 삼성전자와 두산엔진의 사외이사를 겸임 중이다.

조승식 전 대검 형사부장은 호남석유,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은 GS, 석호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삼성테크윈의 사외이사를 각각 맡고 있다.

대기업은 판검사 출신의 법조인을 집행 임원으로도 대거 영입했다. 김상균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삼성전자 준법경영실장)와 윤진원 전 서울지검 형사6부장(SK 윤리경영부문장) 등 7명은 대기업 고위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부장급 이하 법조인 출신 26명은 사외이사나 법무관련 부서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대자동차 임영철 사외이사는 서울고법 판사 출신으로 공정거래 위원회 심판관리관과 정책국장을 지냈다.

◇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 '로비용' 우려

대기업에 이처럼 많은 판·검사 출신 임원과 사외이사가 있어도 대주주와 경영진의 횡령, 배임 등 각종 사건·사고는 막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위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는 감시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로비용'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최근 SK그룹 총수일가의 선물투자 의혹 사건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담합 사건은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 자금 600억원을 횡령ㆍ전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8년부터 계열사 돈에 손댄 것으로 돼 있지만 아무런 견제가 없었다. 현재 SK그룹에는 사외이사들 외에도 검사와 판사 출신 임원 7명이 일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도 지난해 12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 회사자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회사 5명의 사외이사 중 2명은 검찰 고위직 출신이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 담합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삼성전자에는 검사장급 출신의 사외이사가 있고 서울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준법경영실장(사장)도 있다. 준법경영실과 법무실에는 판·검사 출신의 임원이 적지 않다.

기업들이 준법감시 업무 담당 임원이나 사외이사로 법조인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회사의 중요 결정사항에 대한 깊은 법률적 검토를 통해 위법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들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혹시 있을지 모를 각종 사건ㆍ사고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두는 성격이 짙다.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법조계에서 검사장ㆍ법원장 등의 경력은 그 자체만으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법조 출신 사외이사들이 독립성,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다 보니 회사의 중요 업무를 결정하는 회의에서도 사실상 '찬성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도 문제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로 볼 수 있다. 기업 한 곳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데 2~3개를 맡아서 한다는 것은 단순 로비 역할이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 "진입조건 강화하고 주주도 책임감 느껴야"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법조 출신의 사외이사를 영입해 로비의 창구로 이용하는 것을 막으려면 사외이사 진입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들이 대주주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법조계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해 대주주를 비호할 가능성을 선임 단계에서부터 차단하자는 것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소장은 "선임하려는 사외이사가 법조인이라면 기업은 해당 인물 또는 그가 소속된 로펌과의 계약관계 일체를 공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의 수임관계를 공개해야 그 법조인이 사외이사로서의 독립성이 있는지를 주주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의 김한기 팀장은 "사외이사 선임이 주주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금융당국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주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지지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지만 상법이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해서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자정 노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당국이 사외이사 관련 제도 개선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외이사 선임 문제는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인만큼 소액주주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선임 절차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들이 별다른 반대 없이 선임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주주들의 무관심과 무대응이라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정윤모 연구원은 "전자 주주총회 제도 등 주주의 권리행사를 도와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사외이사 선임에도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며 "사외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옹호하고 회사 전체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인물인지는 주주들이 예민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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