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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치력과 술수 사이…공천 관점은?

[취재파일] 정치력과 술수 사이…공천 관점은?

'뿌리 깊은 나무'가 종방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12월 한 달동안 일이 많았던 탓에 얼마 전에야 못봤던 부분을 마저 챙겨볼 수 있었다. 노회한 정치가들의 두뇌싸움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드라마 중간 중간 벌어지는 장면들이 요즘 정치권의 모습과 딱 맞아 떨어져 무릎을 '탁' 치곤 할 때가 적지 않다.

'뿌나' 23화에서 세종이 밀본을 움직이기 위해 우의정(右議政)에게 미끼를 던진 뒤 나오는 대사도 그랬다.



이 대사대로라만 세종은 좋게 말해 '정치력', 나쁘게 말해 '술수'를 쓰는 이신적을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협상에 활용한다. '뿌나'에서 이신적은 세종 스스로 "탐욕도 많고 여의치 않으면 사술이라도 쓰는 자"라고 말할 만큼 청백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리(汚吏)까지는 아니더라도 탐관(貪官)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그를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을 보고 중용한다.

    
 

◈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일… '배제' 아닌 '통제'

요즘 정치판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우의정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라면 당연히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청문회 기사를 쓸 때마다 통상 업무 능력과 자질, 도덕성을 검증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청문회장에 앉아 있다보면 도덕성을 갖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생활부터 가족관계까지 업무 능력과는 무관한 것들로 설전이 벌어진다. 물론 고위 공직자에게 도덕성은 필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가? 이 질문에 대한 세종의 답은 이렇다.



왕, 즉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흠결 없는 사람들로 흠결 없이 일하는 게 아니라 흠결 있더라도 각자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 의도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란 말이다. 솔직히 흠결 없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지만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에게 능력까지 갖추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성공한 지도자는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도 했지만 주어진 인재들을 적절히 활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세종의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황희 정승은 당시 잣대대로라면 정승 자리는 커녕 목숨 부지도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황희는 대부분의 신료가 양녕대군의 폐세자(廢世子)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폐장입유(廢長立幼)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 결국 귀양까지 갔던 인물이다. 왕조에서 괘씸죄 대상 중에 이보다 더 한 게 없다. 하지만 세종은 즉위 후 황희를 불러들였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조치였다.

우리나라 뿐이 아니다. 당 태종 이세민은 '현무문의 변'을 통해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아버지인 고종까지 밀어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만큼 냉혹한 권력자였지만, 동시에 적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용인술의 대가였다. 이세민은 형 이건성을 도와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위징이 붙잡히자 "어찌하여 우리 형제를 이간시킨 것인가?"라고 질책했다. 하지만 위징은 "태자가 진작 제 말을 들었다면 이번 화(禍)로 죽임을 당하진 않았을 것입니다"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보통의 군주였다면 목을 날렸겠으나 이세민은 오히려 위징이 강직하다 하여 즉위 후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았고 이후 재상으로 중용했다.

결국 성공한 정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재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그가 가진 재주가 무엇이며 어떤 일에 적합한지까지 판단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이게 부족해서', '저 사람은 저게 부족해서'하는 식으로 사람을 쳐내기보다 '이 사람은 이게 뛰어나서', '저 사람은 저게 뛰어나서'라는 식으로 각자의 특장점을 최대한 끌어내 치국(治國)에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가 갖고 있는 단점은 '통제'하면 그만이다. '배제'는 '통제'할 능력이 없을 때 쓰는 수단이다.
  
 



◈ 공천작업… '배제' 아닌 '선택'이어야

이번 주부터 여야 모두 본격적인 공천작업에 들어간다. 벌써부터 몇 % 물갈이니 뭐니하며 흉흉한 이야기가 나돈다. 공천 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다. 현재 우리 정치권에서 말하는 공천작업의 키워드는 '배제'(排除)다. '누굴 자를 것이냐'다. 일 잘하는 사람을 고르는 데가 아니라 있는 사람 자르는 데 힘을 다 쓰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불과 4년 전에 인재라고 모셔왔던 사람들이다.

물론 4년 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능력 부족으로 판명된 사람은 물러나주는 게 맞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퇴출이라도 시키는 게 맞다. 하지만 성난 민심 달랜다고 인신공양 하듯이 머릿수 정해놓고 자르는 건 옳지 않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고 거기에 따라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인적쇄신'이란 이름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덧난 민심을 피해가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특히 공천작업을 정적 제거에 활용하려 한다면 스스로 지도자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권을 잡을 권력자가 아니라 정권을 맡길 지도자다. 지도자가 배제에 집착한다면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다. 공천 또한 흠결을 근거로 '더 나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근거로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 작업이 돼야 한다. 능력을 보고 뽑아야 그 능력과 장점에 맞게 일을 맡길 수 있다.

이제부터 시작될 공천작업이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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