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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틀리지 않은 판결이라고 옳은 것은 아니다 관련 이미지

◉ 남자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럼 이 경우 술과 섹스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판결문을 봅시다.(첨부파일 다운로드) 사건 당일 새벽, 회사원, 군인, 대학생 등인 22살의 청년 4명은(1명은 21살) PC방에서 채팅 프로그램 버디버디를 통해 여자아이들 3명을 만났습니다.(2명은 12살, 1명은 18살) 공소사실을 잘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피고인 3명은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를 이용하여 허위 주민등록번호를 발급받아 인터넷 싸이트 버디버디의 '수원에서 노실분 19세까지만'이라는 제목의 채팅방에서 19세로 가장하여 채팅을 하던 중..."

주민등록 생성기로 주민번호를 만들었습니다. 본인의 아이디가 아니고요. 다른 사람인 척 채팅을 한 거지요. 그냥 모여서 놀 생각이었다고 보기엔 뭔가 미심쩍지요? 그리고는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여관으로 갔습니다. 술을 잔뜩 사가지고요. 그리고는 왕게임과 이미지 게임을 합니다. 대부분 해 보셨겠지만, 한 명 찍어놓고 술 먹이기에 왕게임과 이미지 게임이 얼마나 편하던가요? 뿐만 아니라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여관에서 소주와 맥주를 준비해 놓고 피해자 일행과 일명 '왕게임', '이미지게임' 등을 하며 게임에 걸린 사람에게는 벌칙으로 소주와 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반씩 섞어 만든 일명 '폭탄주'를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소주 반 컵짜리 폭탄주가 일반적인가요? 이런 양으로 폭탄주를 5잔 만들면 소주 1병은 족히 더 들어갑니다. 술을 자주 마셔야만 하는, 33살 성인 남성인 제가 마셔도 짧은 시간에 이만큼 마시면 버티기가 쉽지 않습니다. 12살짜리 여자아이면 오죽하겠습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피해자 진술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던 중 친구 OOO가 게임 벌칙에 걸려 △△△과 함께 방에서 나갔고..."

남자 중 한 명은 벌칙으로 여자아이들 2명을 방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이 벌칙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윤간은 여자아이들 2명이 나간 직후 이뤄졌습니다. 이렇듯 그저 판결문에 적시된 공소사실 내용만으로 미루어 봐도 이 상황이 성관계 따로, 술 따로 였다고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관계를 위해 술을 먹였다고 봐야겠지요. 저만 그런가요?

◉ 솔로몬의 판결? 2심에서 해결 하세요?

앞서 살펴본 대로 <특수준강간>과 <위계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죄>는 형량 차이도 크고, 다투어야 하는 쟁점도 완전히 다릅니다. 공소장을 변경할 경우 상황이 꽤나 복잡해지겠지요. 물론 저는 재판부가 귀찮다거나, 남자 피고인들에게 유리하게 해주려고 공소장 내용을 변경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수준강간의 <증거가 모자라서> 무죄를 내린 재판부의 판단이 현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쾌한 재판으로 친모를 찾아낸 솔로몬의 판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책임은 검찰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삽질을 하고 있거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공소장 내용을 변경해야 할 책임은 재판부에도 있습니다. 어느 여성이 윤간을 원할까요? 아주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거나, 성관계 경험이 풍부한 성인 여성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제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아이가 본인이 좋아서 윤간을 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가요? 섹스 도중 신음소리 좀 내고, 친구들에게 도와달라는 말 안했으니 당연히 윤간을 원한 것인가요? 초등학생 1명을 상대로 남자 셋이 돌아가며 섹스를 했는데, 도덕적으로 그저 좀 비난받고 말면 되는 건가요?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판결문 내용, 분명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지요.

◉ 누구를 위한 법인가?

간단하게 생각해 봅시다. 강간죄(준강간죄)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요? 강간죄의 목적, 어려운 말로 강간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입니다. 쉽게 말해 '여성 본인이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과만 섹스 하도록' 보호해 주자는 거지요. 폭행이나 위협 때문에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다면(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면) 그 경우는 <강간>이 되고요, 폭행이나 위협은 없었지만 술이나 약물 등으로 심신을 상실하거나, 항거가 불능한 상태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다면 이는 <준강간>이 됩니다. 이번 판결로 12세 소녀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지켜졌나요?

어느 여성 법조인이 제게 그러시더군요.

"길게 설명할 필요 있어? 세상 어느 여자도 윤간을 허락하지는 않아."

조금 무례한 말이 되겠습니다만, 만약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판검사 분들의 자녀나 부인, 본인들의 모친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이런 식의 판결이 나왔을까요? 사건의 담당 검사가 여성이고(현재 육아 휴직 중) 재판부 3명 중 1명이 여성이니, 물론 저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인격이나 의도를 폄훼하진 않겠습니다.

피해자의 행실이 되바라졌을 수도 있고, 속된 말로 '까졌을' 수도 있지요. 중간에 합의를 했으니 피해자나 피해자 친구들이 별로 처벌의사를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껏 학교를 다닌 시간보다, 앞으로 학교 다니며 배워야 할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소녀에게 이 판결은 좋은 판결이었을까요? 밤늦게 채팅 사이트를 넘나들며 선을 넘나드는 청소년들에게 이 판결은 어떤 가르침을 줬나요? 어른들이 조금만 더 성의를 보일 수는 없었을까요? 제가 대단히 어렵고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고 있는 건가요?

판사들로부터 들어보니, 생각보다 이런 일이 많다고 하더군요. 중학생들이 채팅으로 만나 섹스를 하고와서는 "원했다, 원하지 않았다"를 두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는 거지요. 그래서 저의 이런 비판이 실무를 다루는 판사들에게는 별로 공감을 못 얻을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군요.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재판을 한 법원이 일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가해자들의 행실에 분개해 수사를 열심히 했던 검찰 역시 억울할 수 있을 테고요.

이 지경이 되도록 아이들을 내 몬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그냥 내 일 아니고, 내 가족일 아니니 상관없는 건가요? 12살 소녀의 윤간을 두고 이렇게 한참동안 법리를 따져가며 검찰과 법원의 잘못을 저울질 하고 있자니, 꼭 위암으로 신음하는 환자 배에 빨간약을 쳐 바르고 있는 것 같아서 찝찝함과 서글픔에 가슴 한편이 참 헛헛합니다. (끝)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1편] 보러가기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2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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