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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준강간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 "<심신상실>도 <항거불능>도 아니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 이유는 <특수>가 아닌 <준강간> 부분입니다. 준강간이 되지 않는 이유는 뭐였을까요? 심신상실로도 항거불능으로도 보기 힘들어서입니다. 재판부는 근거로 5가지를 들었습니다.

1) 구체적 행동, 상황, 경위를 상세히 기억하고 있다 (심신상실 ×)
2) 성관계 직후 혼자 옷을 입고 나와 돌아다녔다 (심신상실 ×)
3) 성관계 도중 들어온 친구에게 도움 청하지 않았다 (항거불능 ×)
4) 피해자 친구들도 만취상태는 아니라고 진술했다 (심신상실 ×)
5) 성관계 재촉하고, 신음소리 내며 좋아했다 (항거불능 ×)

둘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준강간이지만,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피해자 친구들의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피해자의 반대되는 진술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심신상실과 항거불능 상태를 상당히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법원은 왜 이리 엄격하게 해석한 걸까요? 이렇게까지 엄격한 게 과연 맞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맞습니다. 현재 대법원 판례는 준강간의 경우 심신미약과 항거불능 상태를 상당히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특별법으로 형량이 무겁게 적용되는 특수준강간을 완곡하게 해석할 경우, 도리어 법이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자세히 설명하기 복잡합니다만, 이미 다른 법조항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재판부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 입증 책임은 '검찰'에

그럼 채팅으로 여자아이들 불러서, 여관에서 술 잔뜩 먹이고 여러 명이 돌아가며 성관계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그냥 듣기에도 뭔가 이상하시죠? 일단 1차적인 책임은 검찰에 있습니다. 혐의를 제대로 입증해 내지 못했으니까요. 특수준강간 혐의를 입증하는데 좀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재판을 직접 보지 않았으니 각 사람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 어떤 것들이 증거로 제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판결문 내용만 가지고 몇 가지 좀 따져 봅시다.

판결문을 잘 보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피해자 친구의 진술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 일행 중 18살 여학생은 사건 직후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 "피해자는 확실히 술에 많이 취했고 혼자서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법정에서는 진술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 "피해자가 말도 잘하고 술에 취해 보이지 않았다"

진술 내용이 완전히 다르지요? 둘 중 하나는 거짓말 입니다. 뭐가 진짜일까요? 글쎄요. 피해자의 다른 친구나 피해자 본인은 "많이 취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재판 도중 피해자와 가해자 측이 합의를 했으니, 이 점으로 미루어 추측하는 수밖에요.

재판에 어떤 증거가 제출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여관 CCTV나, 여관 주인, 여관 종업원의 진술 등 피해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증거는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판결문에 이런 내용이 기술되지 않은 점을 보면요. 이렇게 물증이 없는 경우라면 남는 것은 진술 뿐 입니다.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따라서 검찰은 가해자들의 주장과, 달라진 피해자 친구들의 진술을 탄핵할 만한(뒤집을만한) 논리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상당히 정교하게 말이죠.

피해자는 평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주량이 얼마인지, 알코올 분해효소는 있는지, 통상 12세 여자가 만취 상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남자들이 그 날 술은 얼마나 사가지고 갔었는지 등을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처음 만난 남자 3명과 성관계를 가졌을지>를 따져 물었어야 합니다.(이게 왜 중요한지는 조금 뒤에 기술하겠습니다) 본인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가진 이후 나타나는 징후는 무엇인지, 성관계 이후 피해자의 행동 특성이 어떠했는지 등도 정리했어야 할 테고요.

보도 이후 일부 검사 분들은 "상식적으로 이 정도면 당연히 유죄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성폭행 사건에 대해 내려지는 법원의 고답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따지더군요. 글쎄요. 그 정도의 말은 일반인들이 하는 얘기 아닐까요? 법조인이 할 이야기는 아니지요.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검찰의 몫이니까요. 때문에 입증을 못한 검찰에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겁해 보이는 법원의 판단

그럼 검찰만 문제인가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재판부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법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기계적으로 흠 잡을 곳 없는 판결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판결이 좋은 판결이었다고는 얘기 못하겠습니다.

심신상실, 항거불능에 대한 법원 판단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검찰은 몰랐을 수 있습니다. 아니, 다소 헐렁하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누가봐도 명백하다'고 여겼을 수 있지요. 하지만 법원은 어떻습니까? 아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재판이 진행되면 진행 될수록, 이대로 가면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재판부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이렇게 심증만 있고 입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 재판부는 공소장 내용을 변경하도록 검찰에 요구했어야 합니다.

5년 이상 무기징역 이하인 <특수준강간>의 적용이 어렵다면 5년 이하인 <위계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죄>를 적용하도록 말이지요.(형법 제 302조 :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사소송법은 이런 경우 법관이 공소사실 변경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2항 : 법원은 심리의 경과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의 추가 또는 변경을 요구하여야 한다)

<맞지만> <얄미운> 판결

형법 302조 내용을 보십시다. <미성년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위계>란 성관계에 대한 오인, 착각, 부지를 말합니다.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면, '속여서 섹스한다'는 말 입니다. 치료를 해 주겠다고 속이거나, 정신지체 아동에게 재밌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성관계를 한 경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위계 역시 법적용은 무척이나 까다롭습니다. <성관계 자체>나 <성관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있는 행위>에 대해 오인, 착각, 부지하도록 한 경우만 해당되지요. 실례로 지체장애 여성에게 소개팅을 해 주겠다며 여관에 데려간 뒤 남자 2명이서 차례로 성관계를 가졌지만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성관계와 소개팅이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대법원 판례 2001.12.24 2001도5074)

그럼 이 경우는 어떻습니까? 법이 적용되려면 <술>과 <섹스>가 하나의 행위로 인정되어야만 합니다. 섹스를 위해서 술이 과정이었다고 해석되어야 하는 거죠. 그럼 당연히 가해자들은 "그냥 술 마시고 놀려고 모인 거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 보니 흥이 나서 섹스를 했던 것 뿐"이라고 주장하겠지요. 그럼 검찰은 술과 섹스가 하나의 행위라는 논리를 또 만들어 내야 하고요. "처음부터 섹스를 하려고 술을 먹인 거다(술은 단지 미끼였다)"라는 점이 인정되도록 말이죠.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1편] 보러가기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3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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