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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12세 초등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보며

◉ 윤간이 무죄? 쇄도하는 비난여론

지난 주말, 트위터와 인터넷 게시판이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22살 청년 3명이 채팅으로 만난 12세 소녀와 돌아가며 성관계를 갖고도 무죄가 선고된 사건 때문에 말이죠. 대부분의 글은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라며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탄과 개탄, 비난과 조소가 봇물을 이뤘지요. 아주 드물게는 법원 판결에 문제가 없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긴 하지만, 법으로 처벌받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주장이더군요. (헤럴드경제 기자의 글)

이 분은 오히려 무식한 기자들이 받아쓴 기사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맞습니다. 시간에 쫒기는 기자의 무식함도 인정하고, 그것이 끼치는 해악 역시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행위가 처벌받을 정도가 아니라는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기자분과 같은 경찰서를 출입한 적이 있습니다. 성실하고 취재도 잘하는 분이지요. 개인적 비방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건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혼란스러우셨을 분들이 계실 겁니다. 도대체 이번 사건은 뭐가 문제일까요? 누구를 어떻게 지적하고, 뭘 나무라야 하는 걸까요? 내용을 한 번 찬찬히 풀어보겠습니다. (글이 좀 깁니다. 양해 바랍니다)

◉ <당연히 무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무죄>

판결로 내려지는 무죄에는 2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죄가 되지 않는 경우>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지요. 전자는 말 그대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은 경우이고요, 후자는 유죄의 심증은 가지만 이를 인정할만한 명백한 물증이 없는 경우입니다. 우리 헌법은 모든 사람을 '무죄라고 가정하고' 재판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 무죄를 선고해야만 합니다. 이를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판결문에 적힌 판결 내용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니까 이 판결은 12세 초등생을 성폭행한 사실이 없다거나, 이들의 행위가 죄가 아니어서 <당연히 무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유죄의 심증은 가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죄>를 선고한다는 거죠. 즉, 법원이 가해자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법원도 유죄의 심증은 가졌다는 말이죠.

◉ 검찰의 법적용, 문제 없나?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특수준강간 입니다. 특수(2명이상 합동해서) 준강간(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인 여성을 성폭행). 성폭력특별법상 유죄가 인정될 경우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집니다. 지난주 인터넷에서는 법적용이 제대로 된 것인가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습니다. 과연 검찰의 법적용에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문제가 없습니다.

일부 언론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을 적용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앞서 헤럴드경제 기자가 지적한 내용이 맞습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이 적용되려면 미필적으로라도 고의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사실을 알았다거나, 최소한 '얘 미성년자 아니야?'하고 의심을 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여자아이들 스스로가 16살이라고 남자들을 속였고, 일행 중 한 명이 18살이었던 상황을 보면 고의성 입증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법이 적용되느냐 마느냐가 아니었지요. "적어도 이 사실을 놓고 심리를 벌였어야 하는 것 아니냐" 거지요. 한 마디로 <성의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논쟁은 <삽질>입니다. 불필요한 논쟁이란 말입니다. 왜냐고요? 사건 당사자들은 1회 공판 이후 서로 합의를 했거든요. 대법원 확인결과,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친고죄여서(물론 조두순 사건으로 지금은 바뀌었습니다만)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습니다. 합의가 이뤄졌으니 법적용 자체가 불가능 한 거죠. 보도 직후 검찰이 억울해 하면서 <법적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 것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 문제는 <법적용> 아닌 <엉성한 재판 준비>

문제는 법적용이 아닙니다. 재판 준비죠. 검찰이 특수준강간을 적용한 게 잘못이 아니라, 이 공소사실을 명확히 입증해 내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이를 따지기 위해서는 우선 판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봐야합니다. (http://bit.ly/e0sYjY, 첨부파일 다운로드)

혐의가 특수준강간이므로 재판의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1) 가해자들이 서로 합동해서 한 일인가(특수),

2)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였는가(준강간).

일단 합동 부분은 대법원 판례상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재판부도 이 부분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본인들은 공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부분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판사들 대부분도 그렇게 판단하시더군요. 대법원 판례를 한 번 보시죠.

[대법원 판례 2004.8.20 / 2004도2870]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의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형법 제297조의 죄를 범함으로써 특수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주관적 요건으로서의 공모와 객관적 요건으로서의 실행행위의 분담이 있어야 하고, 그 실행행위는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협동관계에 있다고 볼 정도에 이르면 된다.]

피해자가 남자들 일부와는 원해서 한 것이어서 검찰이 나중에 특수 부분을 뺐다는 말은 잘못된 내용입니다. 검찰은 혐의를 준강간으로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의 오보였습니다. 검찰의 항소 혐의는 여전히 특수준강간 입니다.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2편] 보러가기

☞ 초등생이 윤간을 원했다고? [3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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