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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로 털 뽑힌 산비둘기, 잔인해 '화면 탈색'

예전 이라크 전쟁땝니다. 그때는 국제부 막내여서 들어오는 외신 화면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요.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폭탄이 터져서 엉망이 된 현장 곳곳에 시신들이 널브러져있고, 사방은 온통 핏빛인 화면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 전쟁이란 이렇게 참혹한 것이구나, 누군가 지금 또 이렇게 죽어가고 있겠구나, 보는 저마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화면은 하나도 방송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래서 뉴스에는 대부분 머리에 붕대를 감은 남자, 팔에 깁스를 한 아이, 눈물 흘리는 여자, 이런 좀 충격이 적은 그림을 주로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청자들은 '다행히' 혐오감 없이 이라크 소식을 접할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전쟁의 실상과는 상당히 다른, 약간은 윤색된 이야기를 본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밀렵감시단이 찍은 화면을 보다가 이라크 전쟁 때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한 밀렵차 안에서 털이 몽창 뽑힌 산비둘기들이 발견됐습니다.

그런데 새들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살아있는 채로 털이 뽑혀있는게 발견된겁니다. 너무나 춥고, 아프고, 겁났을 새는 그저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머리카락만 생으로 뽑아도 그렇게 아픈데,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집에 가서 털을 뽑으면 처치곤란인데다 증거로 남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문제의 산비둘기는 총을 날개에 맞아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걸 잡아서 차창을 열고 달리면서 털을 손에 잡히는대로 뽑아 밖으로 버렸을거란 이야기였습니다. 살아있는 비둘기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을텐데도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 모습도 역시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온몸, 특히 앞가슴 쪽은 빨갛게 피가 묻어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화면은 회색으로 탈색됐습니다. 꼭 털이 있을 때의 잿빛과 비슷해서 핏기는 하나도 화면에 잡히지 않았죠.

시청자들은 부담없이 뉴스를 볼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 산비둘기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그런 짓을 더 이상 하도록 방치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엔 그대로 화면을 보내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 혐오감을 최대한 줄여서 내보낼 것인가, 뉴스는 나갔지만 저에겐 계속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피흘리는 산비둘기, 그 뒷이야기…"그래서 그 비둘기는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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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엔 원본 사진이 있으니까 보실 분들만 내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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