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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 범띠해…한국문화 속 호랑이는?

절대 권위와 힘의 상징, 산신으로 추앙

삼척동자가 좋아하는 곶감이 무서워 줄행랑을 쳤다니 호랑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이런 호랑이는 이 빠진 호랑이나 발톱 빠진 호랑이, 함정에 빠진 호랑이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문화에서 곶감만 없으면, 이과 발톱을 제대로 갖추면, 호랑이만 한 절대 권위와 힘을 갖춘 동물도 없다. 가히 넘버 원, 백수의 제왕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이기도 하면서, 복을 가져다주는 영물이기도 했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 범띠해를 앞두고 호랑이가 한국문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절대 권력으로서의 호랑이는 한국문화 곳곳을 장식한다. 가장 대표적인 보기가 산신도(山神圖)다. 산신도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소나무 아래 기암괴석에 앉은 도인 모습의 산신을 그리는데, 그 옆에는 반드시 호랑이를 배치한다.

이런 점에서 호랑이는 산신의 시자(侍者)라고 할 수 있지만, 때로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과 동격이 되어 추앙을 받기도 하고, 마을로 내려와서는 동제당에서 그 주신(主神)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1788~?)은 그의 방대한 백과전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이르기를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신)이라 해서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나아가 은산별신제에서는 상당에다가 호랑이를 산신과 함께 신격으로 받들어 모신다.

신격으로서의 호랑이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호랑이를 제사해 신으로 섬긴다"(祭虎以爲神)는 동예(東濊)에서 이미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호랑이는 신이기 때문에 악귀를 쫓는 주력(呪力)을 갖춘 것으로 믿었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해 일반 민가에서 호랑이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이고 나쁜 귀신의 침입을 막고자 기원한 것이 호랑이가 장착한 그런 권능을 잘 말해준다 하겠다. 

그렇기에 호랑이는 요즘까지도 부적에서 가장 애용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무덤 앞에 호랑이를 본뜬 석조물을 세우는 까닭도 근본이 이와 통한다 할 것이다. 죽은 자가 영원히 사는 집인 무덤을 지키는 힘을 호랑이가 가졌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력(神力)은 호랑이가 수난을 겪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초기, 특히 태종·세종·문종·단종 시대만 보면, 호랑이 머리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15번이나 보인다. 물을 관장하는 신은 용이니,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두 동물이 싸울 때는 비가 온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호랑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절대 권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희화화해서 역이용할 줄도 알았다. 호자(虎子)라고 하는 휴대용 남성 소변기가 대표적이다. 왜 하고많은 소변기 모양 중에서도 호랑이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여 호랑이가 남성성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호랑이가 오줌통, 그것도 남성용 오줌통의 디자인에 활용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호랑이 꿈은 길몽 중의 길몽이었다. 호랑이는 명예와 권세, 승리를 상징이었으므로, 이를 꿈에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명예와 권세, 승리를 안겨준다고 믿었다. 호랑이를 태몽으로 꾸면, 장차 그 아이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도 맥락을 같이한다.

한국문화와 함께 한 호랑이기에 육당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의 첫 번째가 호랑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마스코트는 호랑이를 활용한 '호돌이'였다.

자생 호랑이는 비록 멸종해 버렸지만, 범띠 새해에는 모두가 호랑이 꿈을 기대해 본다.

(도움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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