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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경협에 대거 재가입…전경련 위상 회복할까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어제(16일) 정기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지난해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꿔 새 출발한 뒤 열린 첫 정기총회입니다. 한경협은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한 경제 단체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7년 후인 1968년 전경련으로 명칭을 바꿔 55년간 사용하다 지난해 다시 한경협이란 이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름을 바꾼 데에는 '초심을 되새기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경협 정기총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류진 회장

20개 기업, 한경협 회원사 가입…14곳은 '재가입'

한경협은 16일 정기총회에 앞서 이사회를 열고 20개사에 대한 회원 가입을 승인했습니다. 새 회원사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고려제강, 동성케미컬, 동아일렉콤, 롯데벤처스, 매일유업, 삼구아이앤씨, 삼표시멘트, 아모레퍼시픽,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LIG, 웅진, 위메이드, 케이이씨, KG모빌리티, 포스코홀딩스, 한국생산성본부, 한미사이언스, 한미약품, 휠라홀딩스(가나다 순)입니다. 이 가운데 에코프로, 위메이드, 케이지모빌리티 등 6개사를 제외한 포스코홀딩스 등 14개사는 과거 전경련의 회원사였다가 탈퇴한 뒤 이번에 재가입한 곳들입니다. 이로써 한경협 회원사는 427개로 늘었습니다. 특히 위메이드는 게임 기업으로, 한경협에 게임 기업이 합류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경협 측은 "20개사가 한꺼번에 회원으로 가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경협의 회원 유치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한경협이 공들였던 네이버, 카카오, 하이브 등 주요 IT 기업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이번에 가입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야당이 한경협에 비판적인 점 등을 고려해 시기상조라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경협은 앞으로도 신규 회원사 모집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한경협 류진 회장은 정기총회에서 "회원사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회원사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해 회원 서비스 기능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1961년 13개사로 시작한 한경협은 전경련 시절인 2016년 회원사가 619개까지 증가했습니다. 국내 최대 민간 경제 단체로, '재계의 맏형'이란 위상이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위상은 급추락했습니다.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통로로 지목됐고, 후폭풍이 거세지자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엔 '패싱'에 가까운 수준으로 소외됐습니다.

한경협은 지난해 9월 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이름을 바꿨다

'우산' 역할 기대…4대 그룹 재가입에 위상 높아져


한경협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입니다. 4대 그룹이 지난해 재가입한 데 이어 신규 회원사가 속속 늘면서 한경협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경협에 가입하면 회비를 내야 합니다. 회비는 기업의 자산이나 매출 규모에 따라 결정됩니다. 기업들이 회비를 내면서까지 한경협에 가입하는 이유는 뭘까요.

먼저, 한경협의 '우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 전경련은 개별 기업들을 대신해 정부에 각종 규제와 관련한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정부가 환경이나 토지, 수출 규제 등 개별 기업의 민원을 들어주면 특혜로 비칠 수 있지만, 전경련이 재계의 입장으로 '묶어서' 요구하면 이런 특혜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윈윈' 구조였습니다. 개별 기업에 일일이 요청하지 않아도 전경련을 통하면 일자리 창출이나 수출 실적 개선이 가능했습니다. 일례로, 전경련이 30대 그룹에 신규 채용 인력을 10%만 더 늘려 달라고 하면, 그 해 청년 고용 통계가 쑥 올라갔다고 합니다. 또, 이른바 수출 밀어내기로 이듬해 1월에 수출할 물량을 12월에 미리 통관하면 그 해 수출 실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경련은 정부의 경제 정책 파트너였습니다.

지난해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도 기업들의 한경협 가입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됐습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치권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던 다른 기업들이 대장 격인 4대 그룹의 전경련 가입 이후 눈치를 덜 보게 된 것입니다. 4대 그룹의 가입으로 한경협의 위상이 다시 높아진 것도 한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류진 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경협 출범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4대 그룹이 들어와서 한경협이 살아났다. 이것이 아니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의 재가입 배경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을 꼽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비해 기업들에, 전경련에 우호적이라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는데, 김병준 직무대행은 앞서 대통령선거 윤석열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이런 인사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으로 왔으니, 기업들은 전경련에 재가입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경협의 혁신 노력이 기업들에 가입 유인책이 됐을 수 있습니다. 앞서 한경협은 정경유착을 차단하겠다며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선 불필요한 정경유착 논란을 피해 한경협에 가입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진 셈입니다.

정경유착 '오래된 고리' 끊어낼 수 있을까

1961년 한경협 출범 당시 회의 장면

한경협이 실제 정경유착을 차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한경협은 태생부터 정경유착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196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부정축재처리법을 만들어 기업인들을 구속한 뒤 석방 조건 중 하나로 내걸었던 게 '단체를 만들어 협력할 것'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이 조건을 받아들여 조직한 단체가 바로 한경협입니다. 이후 일해재단 자금 모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지원, 세풍 사건, 차떼기 사건 등에서 전경련은 기업들 자금 모집 통로가 됐습니다. 외연이 확대되고 위상이 높아질수록 정경유착의 유혹은 커질 수 있습니다. 윤리경영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독립적인 운영과 결정이 보장돼야 합니다.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 탈바꿈하려면 회원사들의 이해와 협조가 선행돼야 합니다. 한경협을 이끌고 있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취임사에서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경협이 '새로운' 재계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사진=한경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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