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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헤일리 '인종'까지 들먹…대세론 트럼프 켕기나?

[월드리포트] 헤일리 '인종'까지 들먹…대세론 트럼프 켕기나?
대선풍향계로 불리는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가 끝났습니다. 전체 대의원 2,429명 가운데 불과 1.6%인 40명 밖에 걸리지 않은 대결이었지만, 첫 경선이었던 만큼 관심이 컸습니다. 압도적 우위가 예상됐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인 51%로 대세론을 굳혔습니다. 반면, '트럼프 대항마'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19.1%로, 21.2%를 얻은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게도 밀리며 3위에 그쳤습니다.

미 현지 언론들도 트럼프가 대선행 고속열차를 탔다며 사실상 트럼프 경선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헤일리 전 대사의 추격은 여기서 끝인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헤일리가 주목을 받은 건 아이오와 주가 아닌 중도층이 많은 뉴햄프셔 주였습니다. 또 뒤이어 있을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헤일리가 주지사를 2번이나 지낸 그녀의 정치적 기반으로 가장 눈여겨볼 곳이기도 합니다.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 '트럼프 40% vs 헤일리 40%'

니키 헤일리-도널드 트럼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15일 실시된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헤일리는 트럼프와 같은 40%의 지지를 얻은 걸로 조사됐습니다. 아이오와 주 2위 싸움에서 승리했던 헤일리를 꺾었던 디샌티스는 4%로 승부권 밖이었습니다. 반(反)트럼프 기치를 내걸고 나섰던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가 지난 10일 사퇴한 뒤 처음 실시된 조사였는데, 크리스티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헤일리에게 몰린 걸로 분석됐습니다.

대세론을 장악한 트럼프이지만 이런 추격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헤일리 개인과 그녀의 정책할 것 없이 공세를 폈는데, 이번에도 미국에선 (적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금기 시 되는 인종 문제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지난 밤 니키 '님라다(Nimrada)' 헤일리의 정신 나간 연설을 들은 사람이라면 그녀가 아이오와 프라이머리에서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원문에 <Nikki "Nimrada" Haley> 라며 "님다라"에 따옴표까지 친 걸로 나오는데, 그녀가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을 겨냥한 걸로 보입니다. CNN은 헤일리 전 대사의 결혼 전 이름은 '니마라타(Nimarata) 니키 란드하와'라며 트럼프가 그녀를 공격하면서 이름조차 잘못 적었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트럼프는 같은 글에서 아이오와 코커스도 아이오와 프라이머리라고 잘못 적었는데, 헤일리 이름 오기가 의도된 것인지, 그냥 무성의에서 나온 실수인지는 좀 불분명합니다.)

트럼프는 또 헤일리가 대통령 출마자격이 없다는 음모론 사이트의 글도 SNS 계정에 퍼날랐습니다. 미국 헌법 상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자여야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는데 헤일리의 경우 출생 당시 부모가 미국 시민이 아니어서 요건 자체를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출생한 헤일리는 미국의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부모 국적과 무관하게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오바마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이런 인종주의적 공격을 퍼부은 바 있습니다. 오바마의 가운데 이름이 '후세인'이라며 마치 이슬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 양 공격하는가 하면, 그가 미국 출생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헤일리를 향한 공격 역시, 그녀가 인도 출신, 그러니까 소수 이민자 가정 출신이란 걸 약점으로 노린 듯 보입니다.
 

헤일리, 트럼프 대세론 향한 도전 어디까지

니키 헤일리-도널드 트럼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민자가 만든 나라' 미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또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트럼프 역시 독일계 미국인입니다.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아버지는 영국에서 태어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자신의 경쟁자가 독일계 미국인이었다면 트럼프가 어떤 공격을 했을까요? 같은 백인이니 그냥 넘어갔을까요? 아니면 나치와 엮어서 공격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 사회에서 트럼프식 인종 공세가 벌어지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미국에 인종차별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적 영역, 특히나 정치 분야에서 인종 문제를 노골적으로 들고 나오는 건 금기 시 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이를 무기화하고 나아가 그의 지지자들이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방증일지 모릅니다.

오는 2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이번 여론조사 결과처럼 실제로 선전할 경우, 그녀의 정치적 기반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가 이번 공화당 경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트럼프의 대세론을 꺾긴 어렵다는 게 객관적 평가입니다. (제 생각도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한 번 바람을 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것이 또한 정치의 속성이고 보면 공화당 경선은 아직 지켜볼 만한 승부이기도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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