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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울산 정전 뒤엔 25년 넘은 노후 장비…5곳 더 있다

[취재파일] 울산 정전 뒤엔 25년 넘은 노후 장비…5곳 더 있다
▲ 울산시 남구와 울주군 일대에서 발생한 정전으로 공업탑 일대 신호등이 꺼져 차들이 서행하는 모습 

지난 6일 울산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정전이 발생한 시간은 오후 3시 37분이었습니다. 도로 신호등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습니다. 마트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고, 식당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정전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정전이 발생한 지 1시간 뒤인 4시 30분쯤 정전 지역의 48%에 전력이 공급됐지만, 5시 25분이 되어서야 모든 전력 공급이 정상화됐습니다. 한국전력에 접수된 피해는 수백 건에 이릅니다.

정전 사고가 난 지역은 울산 남구 옥동·무거동·신정동 등 주택 밀집 지역으로 157개 단지가 피해를 봤습니다. 정전이 발생한 가구는 15만 5,000여 세대로 집계됐습니다. 상가, 병원, 일부 공장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정전은 지난 2017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한 20여만 세대 정전 이후 6년 만에 가장 피해가 큰 정전 사고로 기록됐습니다.
 

한전 "노후 장비 절연 파괴 추정…깊이 사과"

울산 대규모 정전에 한전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한국전력은 정전 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7일 새벽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울산 남구 일원에 전력을 공급하는 옥동변전소의 설비 이상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한전에 따르면, 옥동변전소에는 28년간 사용한 개폐장치가 있는데, 정전 당시 이 개폐장치를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전력을 공급하는 2개 모선 중 1개 모선의 전기를 끊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모선은 변전소에서 개폐장치를 거쳐 외선에 전류를 분배하는, 단면적이 큰 간선을 말합니다.

다만, 정전은 해당 작업 구역이 아닌 다른 쪽 모선의 개폐장치 이상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고 한전은 밝혔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고장 원인은 개폐장치 내부의 절연 파괴로 추정되며, 상세한 고장 원인은 추가적으로 면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전은 덧붙였습니다. 한전은 "대규모 정전으로 국민들께 심대한 불편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내·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긴급 고장 조사반을 가동해 향후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체 주기 25년…25년 넘은 장비 5곳 더 있어"

6일 오후 울산시 남구와 울주군 일대에서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옥동변전소로 소방대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옥동변전소로 소방대원들이 들어가는 모습

문제가 된 개폐장치의 교체 주기는 25년입니다. 울산 옥동변전소의 경우 25년이 넘어 교체를 하다 이번에 사고가 났다는 게 한전의 설명입니다. 문제는 25년이 넘은, 교체 주기가 지난 노후된 개폐장치가 전국에 5곳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한전은 7일 "25년이 넘은 장비가 울산을 포함해 전국에 6곳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울산과 같은 대규모 정전 사고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정전 사고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18년 506건이던 정전 건수는 2019년 641건, 2020년 649건, 2021년 735건, 지난해 933건으로 증가했습니다. 4년 새 정전 건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입니다. 지난달 14일에도 경기도 수원, 용인, 화성, 평택 등 수도권 남부 지역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멈춰 서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고 역시 평택에 있는 변전소의 개폐장치 이상이 원인으로 조사됐습니다. 앞서 2021년 11월 경기도 여주에서도 변전소 노후 개폐장치 고장으로 5만여 세대가 정전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전, 경영난에 투자 미뤄" vs "정상적 투자"

한전의 노후 장비 교체가 얼마나 빨리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한전의 누적 적자는 2021년 이후에만 45조 원에 달하고,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한전의 부채는 204조 원이 넘습니다. 전력 수요가 늘면서 송·변전 설비는 해마다 증가하지만, 설비 투자비는 10년 동안 2조 원대를 맴돌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한전은 25조 원대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일부 전력 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 3,000억 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일각에선 한전이 지난 정부 때 설비 투자를 뒷전으로 미뤄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한전이 태앙광·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에 해마다 수조 원을 썼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정상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정전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설비 투자를 미루면 오히려 그 비용보다 정전 등으로 발생하는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며 "다른 예산을 뒤로 미루더라도 보수와 정비에 먼저 자금을 배정해 겨울철 전력 성수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면 수년 안에 대규모 정전이 빈발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한전에 적자가 쌓여 투자를 못하는 만큼 답은 전기요금 현실화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기요금 인상이 근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대규모 정전 피해 배상 가능할까

6일 오후 울산 남구 지역 일대에 정전이 발생하면서 신호등도 멈췄다. 경찰관이 수신호로 차량 통행을 제어하고 있다. (사진=울산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 정전으로 신호등이 멈춰 서면서 경찰관이 수신호로 차량 통행을 제어하는 모습

이번에 정전 피해를 본 울산 시민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한전의 전기 공급 약관에 따르면, 정전 시간이 1시간 이내인 경우엔 전기요금의 3배를, 1시간 초과 2시간 이내인 경우엔 5배를, 2시간 초과인 경우엔 10배를 배상해야 합니다. 지난 2017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한 20여만 세대 정전 때는 한전이 8억여 원을 배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배상은 한전의 과실이 입증됐을 때에 한해서만 이뤄집니다. 설비 고장에 따른 피해가 나더라도 납품받은 부품의 불량으로 정전이 일어나는 등 한전의 '직접 책임'이 아니면 배상 의무가 없습니다. 한전은 정확한 원인 규명이 우선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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