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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숙소 200m 옆 임시정부 청사 가지 않은 한덕수 총리

[취재파일] 숙소 200m 옆 임시정부 청사 가지 않은 한덕수 총리
"독립과 자유 대한의 기틀을 세우는데 평생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헌신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임시정부는 광복의 그날까지 불굴의 항전을 통해 독립 투쟁의 중심으로서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상징이 돼 왔다. (임시정부는) 지금처럼 자유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굳건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4주년 기념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 기념사 내용입니다.

이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9월 23일 한덕수 총리는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제19회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중국 항저우를 방문했습니다. 항저우 도착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을 비롯해 많은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23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만났고 다음 날인 24일에는 오전에 아시안게임 선수촌을 방문해 대한민국 선수단과 조찬을 함께 하며 격려했고 에딜 바이살로프 키르기스스탄 부총리, 카이 랄라 샤나나 구스마웅 동티모르 총리와도 면담했습니다.

이날 낮 12시부터는 대한체육회가 주최한 '한국의 날'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한 뒤 오찬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고 이어 항저우의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근대5종 남자부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선수단 단복 차림으로 태극기를 들고 응원전까지 펼쳤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박 2일 동안 소화한 각종 일정은 나름대로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숙소 근처에 있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찾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한덕수 총리가 항저우에 머무르는 동안 숙박했던 곳은 항저우의 최대 관광 명소인 시후(서호)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었습니다.

항저우 그랜드 하얏트 호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유적지 기념관)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m에 불과합니다. 자동차로 갈 경우에는 1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사실상 바로 옆에 있는 것입니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사진=연합뉴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 임시정부 청사를 상하이에서 항저우(항주)로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항저우에서도 여러 곳을 전전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후가 바라다 보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 유적지 기념관'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월 기념사에서 분명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지금처럼 자유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굳건한 뿌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선열들이 소망하셨던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대한 국민이 임시정부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중국에 흩어져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대한민국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장소임에 분명하지만 한덕수 총리는 자신이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찾지 않고 귀국했습니다. 숙소 옆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다는 점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중국 방문에는 국무총리실 직원은 물론 외교부 차관 등 많은 수행원이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1박 2일 동안 일정이 너무 많아 가지 못했다는 변명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한체육회가 주관한 '한국의 날' 행사에 참석한 시간은 약 1시간 반입니다. 근대 5종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쓴 시간도 2시간이 넘습니다. 숙소 옆의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최근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현 정부가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번에 걸어서도 몇 분 안 되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면 이런 우려를 일부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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