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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외압 vs 수사단 항명' 가릴 스모킹건…"녹취 있다" [취재파일]

'국방부 외압 vs 수사단 항명' 가릴 스모킹건…"녹취 있다" [취재파일]
▲ 해병대 징계위 출석을 위해 해병대 사령부에 들어서는 박정훈 대령

해병대 고 채 상병 순직 사고 조사 결과를 뒤집기 위한 국방부의 부당한 압력 행사인가, 국방부의 정당한 지시를 불이행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항명인가. 영관 장교 1인이 국방부에 맞서는, 21세기 한국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최대 충돌 지점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대령의 휴대전화 통화입니다. 통화에서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합당한 발언을 했다면 박 대령의 항명이고, 그 반대이면 국방부의 외압입니다.

박정훈 대령은 지난 11일 국방부 검찰단 앞 기자회견에서 "해병대 1사단장 혐의를 삭제하라"는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전화 통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마치 녹취록을 암기해서 말하는 것처럼 구체적이었습니다. 또 박 대령 측 법률대리인은 그제(17일) 박 대령과 유 법무관리관의 통화 내용을 정리한 문건을 공개했습니다. 역시 구체적이었는데, 뜻밖에도 박 대령 측은 "녹취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SBS 취재를 종합하면 박 대령과 유 법무관리관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음성 파일은 있습니다. 박 대령의 휴대전화는 통화 녹음 기능이 없는 아이폰입니다. 하지만 지난 1일 오후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통화할 때 박 대령은 아이폰의 스피커를 켰습니다. 옆에는 박 대령의 동료 2명이 있었습니다. 해병대 최고의 군사 경찰들입니다. 결정적 대화를 팔짱 끼고 듣고만 있었을까요? 박 대령의 아이폰으로 녹음하지 않았으니 박 대령 소유의 녹취가 없을 뿐, 녹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일 오후 4시 7분의 통화

박정훈 대령은 채 상병 사고 조사 결과를 놓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5차례 통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통화에서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대대장 이하에만 혐의를 적용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박 대령의 주장입니다. 즉, 사단장의 혐의는 빼라는 부당한 지시입니다.

주목할 통화는 지난 1일 오후 4시 7분에 이뤄졌습니다. 박정훈 대령 측 법률대리인이 공개한 '수사단장과 법무관리관 통화의 중요 국면' 문건에 따르면 박 대령은 아이폰의 스피커를 켠 뒤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했습니다. 통화하는 사무실에는 해병대 수사단의 박 모 중령과 최 모 준위가 함께 있었습니다.

지난 10일 국회를 방문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왼쪽)과 신범철 국방차관

같은 문건에 따르면 박 대령은 유 법무관리관에게 "유가족들에게 이미 설명했는데 이제 와서 법무관리관이 말한 대로 사단장 등 혐의자를 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나", "장관에게도 그런 내용을 대면 보고했고, 결재본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놀라서 "결재본이 있는지 몰랐다", "차관과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실제로 위와 같이 말했다면 박 대령은 국방부의 위법적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이라 항명 혐의를 벗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수의 국방부와 군 관계자들은 SBS에 "박 대령이 녹음한 음성 파일은 없지만, 옆에 있던 군사 경찰 간부가 녹음한 음성 파일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인사는 "수사단은 절박했고, 박 대령과 박 중령, 최 준위는 오랜 경력의 군사 경찰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스피커폰을 사용한 목적은 1차적으로 결정적 대화 증거의 확보이고, 부차적으로 수사 동료들과의 상황 공유"라고 말했습니다.
 

스모킹건 어떻게 작동하나

통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녹음한 음성 파일은 법적 증거 효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녹취가 아닙니다. 법적 능력과 무관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스모킹건'의 자격이 있습니다. 공개의 파장은 대단할 것입니다.

그래서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국방부 검찰단도 녹취의 존재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 같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방부 검찰단에 불려간 해병대 수사단의 한 간부가 군 검사로부터 '녹취가 있느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의 초조함이 엿보입니다.

장관 서명 뒤 조사 결과 수정과 이첩 보류라는 국방부의 이해 못 할 지시와 여러 증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 그리고 이런저런 증거들만으로 항명인지 외압인지 가릴 수 있다면 녹취의 역할은 미미할지도 모릅니다. 녹취가 공개될지도 미지수입니다. 녹취를 갖고 있는 해병대 간부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녹취가 공개되든 사장되든 국방부는 녹취한 해병대 간부를 건들면 안 될 것입니다. 유족에게 보고하고 승인받은 조사 결과의 수정과 이첩 보류 지시 앞에서 그들은 절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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