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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카르텔 보조금 폐지한 돈, 수해 복구 지원금 투입 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발언 검증

[취재파일] 카르텔 보조금 폐지한 돈, 수해 복구 지원금 투입 가능할까?
극한 호우가 남긴 상처가 깊습니다. 빠르면서도 따뜻하고 또 넉넉한 피해 복구가 절실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18일 국무회의에서 피해 보전에 한시라도 빨리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피해 대책을 언급하면서 "이권,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해서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국민 혈세가 부정하게 새나가는 거 막고, 그 돈으로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자는 취지로 읽힙니다.

그런데 보조금 폐지를 콕 집어서 수해 복구에 신속히 투입하자는 나름 구체적인 대책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만큼 이게 법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언론이 검증해야 하는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보조금을 수해 복구비로 투입? "현행법 상 불가능"

폭우 수해 현장

보조금을 포함한 올해 모든 예산은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일자리안정사업지원기금'처럼 공공기관에 지급하는 보조금도 있고, '마을목수사업'처럼 민간 보조금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보조금 수령 주체들이 그 돈을 허투루 쓴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빠르게는 지급 정지를 한다든지, 다음 년도부터 보조금을 완전 폐지한다든지 등의 행정부나 국회가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이 보조금은 남았으니까 다른 부처 필요한 곳에 지원해야지'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국회의 예산 심의·의결권을 무시하는 월권이자, 국가재정법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보조금과 수해 복구 비용은 전혀 성격이 다른 예산이라 '전용'이라고도 할 수 없다"며 "현행법 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좀 더 쉽게 풀어볼까요. 예를 들겠습니다. 보건복지부 예산 중에 저소득층 지원 항목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노인과 장애인 지원 예산이 각각 편성돼 있습니다. 만약 장애인보다 노인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담당자는 장애인 지원 예산을 '전용'해서 노인 지원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예산이 같은 프로그램(저소득층 지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부처 별로 편성된 보조금은 수해 복구 예산과는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예산입니다. 이걸 빼내서 저기에 채우거나, 이걸 줄여서 저걸 늘리는 유연성을 절대 발휘할 수 없는 예산 항목들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국가재정법 89조 2항은 '정부는 국회에서 추경안이 확정되기 전에 이를 미리 배정하거나 집행할 수 없다'며 예외 조항조차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해서 수해 복구에 재정 지원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사실이 될 수 없는 발언입니다.

전혀 방법 없나? "추경해서 국회 심의 거쳐야"

집중호우 피해 과수농가 방문한 추경호 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연합뉴스)

그렇다면 그 발언이 '사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요?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조금이 폐지된다면 그 돈이 남을 테니까) 행정부가 감액 추가경정예산(감액 추경)을 편성한 뒤 국회에 제출해 심의·의결을 기다리는 방법이 딱 하나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추경을 해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는 지금까지 '추경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권 카르텔 보조금을 폐지해서 수해 복구 지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추경'뿐인데, 그걸 안 하겠다는 얘기는 대통령의 발언 역시 실현될 가능성이 0%라는 말이 됩니다.

추 부총리는 19일 수해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로부터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보조금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타당성이 없는 보조금은 줄여나가자는 취지로 카르텔 이야기를 한 건데, 재원은 이런 데도 쓸 수 있고, 재난 대응도 쓸 수 있습니다. 일반론적인 것(말씀)이죠."

국민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콕 집어 얘기한 대책을 '일반론적인 이야기'라며 수습해야 하는 참모들의 난감함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한양대학교 하준경 경제학 교수는 "대통령이 대책을 특정해서 얘기했을 때는 어디에서 나올 돈이 얼마 있는데 그걸로 도와드리겠다는 뜻으로 국민은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하지만 어떤 맥락인지 잘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추경해도 '신속히' 지원은 불가

국회, 4차 추경 통과

간신히 찾은 단 하나의 방법, 추경을 한다 해도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한 돈으로 수해 복구에 투입하는 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재해 지원금은 지금 당장 지원해도 모자를 판국인데 신속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권 카르텔 보조금 분명히 폐지하고 나아가 환수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떤 보조금이 이권 카르텔인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습니다. 그걸 찾아내야 '나쁜 보조금'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걸 찾아내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정한 용처의 예산을 다시 돌리는 데에는 시간이 들고 그 과정에서 절차상 어려움이 있다"며 "복구 지원은 즉각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찾아냈다고 칩시다. 그래서 정부가 그만큼 추경안을 편성해서 국회에 보냈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 추경안, 제대로 통과될 수 있을까요? 정치권은 '수해를 정쟁화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수해의 정쟁화는 누가 시작한 걸까요?

지금은 국가가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여당, 야당 갈라져서 속 터지게 싸울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번 수해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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