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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진이 고래를 죽였다?

튀르키예 인근 키프로스 해변에 떠밀려 온 고래들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의 휴양지 아르가카 해변에서 최근 며칠 사이 민부리고래 7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지난 9일과 10일 이틀 동안 해변으로 떠밀려 온 고래는 13마리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7마리가 생명을 잃은 것이다.

키프로스 아르가카 해변 고래

지난 10일 키프로스 아르가카 해변에서 고래 4마리가 좌초됐다. 이 가운데 1마리는 죽은 채 발견됐다.

키프로스에서 죽은 고래들은 모두 민부리고래이다. 이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지 않는 종이기에 이번 고래 죽음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렇기에 그 원인이 무엇일지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된 가능성은 '지진'이다. 최근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지역이 키프로스와 바다로 맞닿아 있으며, 직선거리로는 약 4백km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죽은 민부리고래들은 해저 1,000m 대의 수심이 깊은 곳에서 활동하는 개체들이다. 해저에서 먹이를 찾고 천적 범고래를 피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음파를 사용하는데, 지진으로 발생한 소음과 진동이 고래들의 음파 사용을 방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키프로스 수산해양부 담당자는 현지 방송과 인터뷰에서 "고래들은 음파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반향 정위 시스템'을 활용하므로 바다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영향을 받는다"며 "자연 발생 지진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추정하였다.

제주대 해양과학과 김병엽 교수는 SBS와 인터뷰에서 '고래 죽음과 지진'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였다. 김 교수는 "죽은 고래가 발견된 곳이 진원지와 수백 km 떨어진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수중에서는 소음과 진동이 대기 중에서보다 5배 멀리, 5배 빨리 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민부리고래의 경우 수심 깊은 곳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연안 가까이서 사는 돌고래보다 수중 진동과 소음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김 교수는 아직 지진이 고래의 생활이나 생명에 주는 영향을 정확히 밝힌 연구 결과는 없기 때문에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립수산과학원 최석관 고래연구센터장도 "해양 포유류는 소음과 진동에 매우 민감하므로, 키프로스 고래의 죽음이 지진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단정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직 고래의 생존이 지진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일본에서는 지난 2011년 진도 9에 달하는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고래 등 해양 생물에 미친 영향이 보고된 바 없다.

오히려 반대로 고래가 지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는 있다. 지난해 7월 영국왕립학회 '오픈사이언스' 학술지에 실린 오리건 주립대 돈 발로 교수팀은 '고래가 진화 과정에 익숙해진 지진보다는 인공적인 소음과 진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지난 2016년 상반기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 사이 해역에서 수중 청음 장치를 설치해 대왕고래가 지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사한 결과이다. 조사 기간 동안 해당 장소에서는 규모 3~4.5 사이 지진이 모두 32차례 발생했지만, 대왕고래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는 소리를 내는 등 생존 활동을 이어갔다.

인공 소음이 고래 활동에 더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2019년 '실험생물학저널'에 게재된 연구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역에 사는 대왕고래들에게 군사용 음향 탐지기 소음을 들려줬더니 조사 대상 고래 절반 이상이 잠수 깊이를 바꿨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도피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흑해 인근에서 700마리가 넘는 고래가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됐는데, 그 가해자로 지목된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흑해 인근은 대표적인 고래 서식지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면과 수중에서 발생하는 각종 폭발과 폭발음이 고래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래들이 폭발음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었거나, 이를 피해 이동하다가 좌초됐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인위적 소음은 자연 발생 소음보다 더 강력하다. 미국 해양대기관리청은 해양 포유류에게 위해를 미치는 소음도를 160데시벨로 규정했는데, 2016년 뉴질랜드 카이코우라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 때 소음도는 124데시벨로에 불과했다.

지진이 고래 죽음의 원인이라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키프로스 당국은 일단 민부리고래 부검을 실시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고래의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전쟁 같은 인위적 재해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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