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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한동훈이 쏘아 올린 '중국인 투표권 문제'

사실은 문재인 정부도 공감했다?

서초동 NPC


지난달 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2022년 12월 1일 기자들을 만나서 "상호주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에 대해서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민의를 왜곡할 수 있다는 상식적인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외국인 투표권이 뜨거운 이유… '중국 문제'이기 때문

이에 관한 여론이 뜨거운 것은 '중국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주권을 획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 국적자들은 지방선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방선거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 12만 6,668명 중 78.9%인 약 10만 명(9만 9,969명)이 중국인이다. [2022년 3월 기준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 지난 2020년에 이 문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중국인 투표권 박탈'이라는 청원이 올라오는 형태로 공론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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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국인 문제'가 뜨거운 이유가 또 있다. 지난 정부 지지자와 현 정부 지지자 사이에 극명하게 입장이 갈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국적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박탈해 달라는 2020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강정수 / 당시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2020년 4월, 청와대 국민청원 유튜브 채널)]
"지역주민으로서 지역사회의 기초적인 정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구현하려는 취지입니다. 뉴질랜드나 헝가리 등도 영주권자에 대한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은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선거권뿐 아니라 피선거권까지 부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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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중국인 투표권' 문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고, 한동훈 장관으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는 '중국인 투표권' 문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 문제가 지난 정부 지지층과 현 정부 지지층 사이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동훈이 내놓은 해결책에 문재인 정부도 공감?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동훈 장관이 언급한 것과 똑같은 해결책을 공식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줄 때 불거지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는 외국인이 투표를 하는 경우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도 지난달 1일 "(우리나라) 영주권을 일단 따면 한국에서 생활하지 않고 자국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더라도 우리 지방선거에 투표권을 가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영주권의 유지 요건에 한국 의무 거주 기간을 도입하는 방안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한동훈 장관이 했던 말의 요지는 이러하다.
1)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상호주의에 맞지 않다.

2) 일부 국가에서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외국인이 영주권을 획득한 이후 실제로 자기 나라에서 일정 기간 거주했는지를 따지는 절차가 있다. 따라서, 실제로 그 나라에 상당 기간 거주했거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외국인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3) 그런데 우리나라는 영주권을 일단 획득하면 의무 거주 기간을 채워야 하는 요건이 없기 때문에, 영주군 획득 후 3년만 지나면 우리나라에 실제로 거주하는지와 관계없이 지방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4) 따라서 법무부는 (외국인 투표권 문제 해결 등을 위해서) 우리나라 영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주권 획득 후 일정 기간을 의무적으로 국내에 거주해야 하는 요건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에도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이 해결책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동일한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2019년 4월 17일에 발표한 "법무부, 영주권 제도 개선 추진- 제도 시행 17주년, 국내 거주기간 요건 도입 검토 -"라는 보도자료에서 외국인 영주권자들에 대해 국내 의무 거주기간 요건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2019년 4월 법무부 보도자료당시 법무부는 "현행 제도상 영주권 취득 후 사실상 해외에 거주하면서 지방선거 직전 귀국하여 제한 없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라며 "선진 외국처럼 영주권자가 자격 유지를 위해 국내에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결국, 외국인 영주권자가 실제로 국내에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지방선거 투표권을 행사하는 문제점에 대해 2019년의 문재인 정부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지금 윤석열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것과 같은 해결책을 추진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2019년에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 행사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가 왜 2020년에는 중국인 투표권 발탁 청원에 대해 반대의 뜻을 밝혔던 것일까?

'비거주 외국인 투표' 개선에 의견 일치했던 두 정부

정확히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2020년 4월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나라 영주권을 가진 중국 국적자들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상호주의에 입각해 아예 박탈하자는 청원이었다. 외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 중 실제로 우리나라에 거주하지 않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중국인 투표권 박탈' 청원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과 우리나라에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외국 국적 영주권자들의 투표권을 없애려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직접적으로 모순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동훈 장관이 우선적으로 언급한 해결책 역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외국인 영주권자들에 대한 의무 거주 기간 요건 부여'라는 점이다. 물론 한동훈 장관이 언급한 '상호주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실제로 거주하는 외국 국적 영주권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정된다고 해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외국인 투표권 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인들인데, 실제로 중국에서는 외국 국적 영주권자들에게도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상호주의 위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이 외국인 투표권 행사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문제로 제시하고, 제도 개선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제인 '실제로 우리나라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 국적 영주권자들이 투표를 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파적 이슈의 정파화…이익 얻는 사람들은 누구?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공적인 이슈를 진영 사이 대립 구도에 집어넣은 후 정치적 공방을 펼치는 게임의 일부로 소비하는 경향이 대단히 강해졌다. 진영 갈등이 선명해질수록 노출 빈도가 올라가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미디어 환경의 탓도 크다.

차분히 따져보면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정책적 이슈까지도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그리고 서로 상대방을 때릴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지에 따라서, 불필요하게 정치화해서 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인 투표권 문제 역시 윤석열 정부는 중국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고,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 가깝게 지내려고 한다는 구도 속에서, 한동훈 장관의 주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반대했었다는 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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