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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태원 참사, 수사할 수 있는 곳은 경찰뿐?

[취재파일] 이태원 참사, 수사할 수 있는 곳은 경찰뿐?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이 접수한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참사 책임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가능성을 언급한 신고가 접수됐고, 참사 직전까지 9번이나 "압사" 가능성이 언급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이 참사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견 가능성'은 형사적 책임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 적용될 가능성 있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예견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 의무를 태만히 해서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경우 적용되는데, 업무상 요구되는 주의 의무에 대해 판단할 때 주요하게 보는 기준이 예견 가능성입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그만큼 더 큰 주의 의무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이 "압사" 발생 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성립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상황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대응 방안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현장 실무자보다, 사전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대규모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지휘권자의 책임이 더욱 무거울 것입니다.
 

수사 대상이 된 경찰이 수사 전담…'독립 수사' 보장?

국가수사본부로 교체

문제는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된 수사를 오로지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핼러윈 축제 관리에 대한 경찰 내부 매뉴얼이나 지침이 있었는지, 과거 경찰이 취했던 조치와 이번에 취한 조치가 비슷했는지, 신고 접수와 대응 방안에 대한 보고는 어느 선까지 이뤄졌는지, 주의 의무를 태만히 한 일이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실무자에게 전가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경찰 지휘부가 감당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고 1차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오로지 경찰에 부여된 상황입니다.

경찰 역시 이런 점을 의식해 어제(11월 1일) 독립적 수사를 할 수 있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상급자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하고 결과에 대해서만 보고하는 수사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립적' 특별수사본부라고 해도 실무자급이 아닌 경찰 고위 간부들의 책임 여부를 분명하게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혹의 시선이 뒤따릅니다. 검찰도 과거 내부 비리 의혹이 있을 때 상급자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임검사라는 수사 기구를 여러 차례 설치해 운영했지만, 수사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에는 실패한 적이 더 많았습니다.
 

이태원 참사 수사 - 공수처 '불가능', 검찰은 '가능'

공수처, 검찰

그렇다면 검찰이나 공수처가 이번 사건을 수사할 수는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수처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검찰은 일부 범위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공수처 수사는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공수처는 경무관급 이상 경찰 고위 간부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뇌물이나 직권남용 등 일부 범죄로 범위가 제한됩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에 대해서는 경찰 고위 간부들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 간부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한다고 해도 공수처는 각하하거나 고발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어떨까요? 검찰 역시 '대형 참사'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개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2021년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가 축소됐을 때만 해도 이른바 6대 범죄에 속하는 대형 참사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 권한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2년 6월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더욱 축소하는 이른바 '검수완박'이 시행되면서 대형 참사 관련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 권한은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1차적으로 수사한 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사건을 송치했을 때 보완 수사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활용할 수 있는 예외적 규정이 있습니다. "경찰 공무원이 범한 범죄"에 대해서는 검사가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입니다. (검찰청법 4조 1항 1호의 나) 검사의 범죄는 경찰이나 공수처가 수사하고, 경찰이나 공수처의 범죄는 검사가 수사하도록 하자는 상호 견제의 원리에 따라 도입된 장치입니다. 이 조항에 근거해 검사는 경찰 공무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만큼은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이태원 참사' 수사에 나설까? 예상되는 변수들

검찰

결론적으로 검찰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공무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찰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민은 경찰이 아닌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검찰이 정말로 이 사건 수사에 뛰어들지는 의문입니다.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경찰 관련 의혹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검찰은 대형 참사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개시권이 없습니다. 경찰 공무원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수사 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해서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부실 의혹, 참사 발생 전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요청을 묵살했다는 의혹, 사고 발생 지점 인근 건축물 불법 증축 의혹, 군중 속에서 주변 사람을 고의적으로 밀쳐서 사고를 촉발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은 수사를 개시할 수 없습니다. 경찰만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경찰은 경찰 공무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개시를 사실상 차단할 수 있는 실무적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범죄 혐의는 경찰이나 공수처가, 공수처나 경찰의 범죄 혐의는 검찰이 수사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법률을 개정했지만, 동시에 경찰 공무원에 대한 검사의 수사 개시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조항 역시 마련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 수사에 나설 경우, 경찰이 이미 영장을 신청한 상황이라면 검사가 사건을 넘기라고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 조항입니다. (형사소송법 197조의 4)

이 조항은 경찰 공무원의 범죄 혐의에 대한 검사의 수사에도 적용됩니다. 만약 경찰이 경찰 공무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해 영장까지 신청한 상황이라면, 검사는 같은 범죄 혐의에 대해서 수사를 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공무원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경찰이 영장을 신청한 이후에는 검사가 별도로 수사를 개시할 수 없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 수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공무원의 혐의에 대해 경찰이 이미 영장을 신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경찰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하는 일의 정치적 의미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검찰과 경찰은 서로에 대해 주저함이 없이 수사하기 마련입니다. 경찰의 범죄에 대해서는 검찰이, 검찰의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하는 것이 더욱 공정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수사가 정권 책임론과 연결될 경우 검찰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해경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검찰은 구조에 실패한 해경 관계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었습니다. 해경 관계자들의 형사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구조 실패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이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만약 경찰 관계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검찰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반대로 경찰의 형사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검찰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비판받게 될 것입니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오염되지 않은 진실의 발견

이태원역 1번 출구 안내봉에 매달려 있는 국화꽃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검수완박'에 따른 제도적 제약과 정치적 부담 등을 감안할 때 검찰이 이번 사건 수사에 자발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경찰이 이번 사건 수사를 전담하는 상황 역시 부적절하다는 비판 역시 타당합니다. 검찰, 경찰, 감사원이 모두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합동 수사 및 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특별검사 도입 방안 등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을 택하든 정파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형 참사에 대한 수사와 조사 과정에 정파적 이해관계가 개입할 경우,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 이후에도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만이 도출될 뿐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는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터진 직후 정치적으로 이용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던 것도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진실 자체가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오염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진실의 발견 없는 책임 공방은 증오와 갈등의 확산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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