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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밀 유출 비리'를 대하는 방사청의 자세…과거는 묻지 않는다?

[취재파일] '기밀 유출 비리'를 대하는 방사청의 자세…과거는 묻지 않는다?
대표이사가 주도해 6년 동안 10여 건의 군사기밀을 빼돌려 수차례 누설하고, 기밀 유출 장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방산업체가 있습니다. 취득한 기밀을 활용해 사업도 따냈고, 방사청에 비리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청렴서약서를 허다하게 냈습니다. 이 업체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정부가 별다른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6개월간 정부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면 합당한 제재일까요?

과도한 제재도 금물이지만 솜방망이 제재는 방산 비리를 부추기는 격이라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총기 전문 업체 A사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기밀 유출 비리를 저질렀지만 정부 사업 공고가 없어 한산한 6개월 동안만 사업 참여 제한의 제재를 받자 "기밀 유출 비리에도 업체는 건재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이 업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솜방망이 제재가 방산 비리를 부추긴 사례로 인식된 것입니다. 법 잘 지키며 공정 경쟁하는 대부분 방산업체들은 허탈할 노릇입니다.

A사는 무엇을 했고, 어떤 제재를 받았나


방산 전시회에 전시된 국산 총기를 다뤄보는 육군 간부

A사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육군 장교 B씨로부터 지속적으로 총기류 관련 군사기밀을 빼냈습니다. 차기 경기관총 체계사업 합동참모회의 결과,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 신형 7.62mm 기관총 사업 계획, 개인전투체계 중기전환, 12.7mm 저격용 소총 사업 계획,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전력소요서, 특전부대 무기체계, 개인전투체계 전력소요서 등 10여 가지입니다.

A사는 2018년 2월 B씨에게 채용을 약속했고, 그해 12월 B씨를 채용했습니다. 일종의 뇌물 제공의 약속과 이행입니다. A사의 대표이사는 2020년 4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기밀을 임직원들에게 전파했습니다. 기밀 유출에 이은 누설죄도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A사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 업체로 선정됐습니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A사 임직원 3명과 장교 출신 B씨는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문제는 A사에 대한 제재입니다. 오는 연말까지 6개월간 부정당 제재가 전부입니다. 정부 사업 참여가 제한되는 제재인데 연말까지 총기류 관련 정부 사업이 없습니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부정당 제재를 부과해도 업체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죄질이 안 좋은 A사를 이런 식으로 제재하면 비리는 재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사청의 제재 셈법


방사청은 최대한의 제재를 부과했다는 입장입니다. "행정심판원에서 제재를 6개월로 줄였지만 방사청은 애초에 부정당 제재 최대 기간인 1년을 부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당 제재 1년이 최대였는지부터가 논란입니다.

2017년 6월 개정된 방위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2급 또는 3급으로 지정된 비밀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이 있는 경우 5년간 부정당업자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못해도 부정당 제재를 2년 또는 3년간 부과할 수 있습니다. 2017년 6월 시행규칙 개정 이후 기밀 유출 등의 범죄가 있으면 최대 5년, 적어도 2~3년의 부정당 제재를 때려야 하는 것입니다.

A사의 경우 2017년 6월 이후에도 기밀 유출, 누설, 뇌물 공여 약속 등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방사청은 개정된 시행규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에 방사청은 "2020년 3월 기밀의 탐지와 수집의 행위 주체는 대표이사나 임원이 아니다", "2020년 4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기밀의 누설은 청렴서약서 제출 이전에 발생한 행위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방산 전시회에 전시된 국산 총기류들

과거는 묻지 않는 방사청…미래에도 위반은 있다


방사청의 제재 셈법은 "사원의 범죄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와 "청렴서약서 작성 이후의 일만 제재한다"입니다. 해당 사원은 임원은 아니어도 연구소장의 중책을 맡은 인물입니다. 연구소장이 기밀 수집 직전 대표이사와 기밀 관련 통화를 한 정황, 기밀 수집 당일 대표이사가 기밀을 건넨 B씨를 만나 돈을 건넨 정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구소장의 단독 범행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비리 안 저지른다"는 청렴서약서를 작성한 후의 범죄만 따진다는 방사청 주장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청렴서약서 쓴 뒤 기밀 훔친 행위는 책임을 묻지만, 청렴서약서 쓰기 전에 기밀 훔친 것은 무방하다는 부조리한 논리입니다. 기밀 유출 방산비리범들에게 나라 곳간의 열쇠를 내주는 격입니다.

"청렴서약서는 미래의 일만 제약한다"는 방사청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인정해도 A사와 방사청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2018년 A사가 장교 B씨에게 취업을 약속한 뒤 실제로 채용한 사실이 결정적입니다. 취업 약속과 채용은 "관계 공무원에게 직·간접적으로 금품이나 향응 등의 뇌물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거나 제공하지 아니 한다"는 청렴서약서 제2항의 위반 소지가 큽니다. 그리고 A사는 최대 5년 제재의 시행규칙 개정 이후 B씨에게 취업 약속하기 이전까지 2가지 사업에 청렴서약서를 제출했습니다.

"청렴서약서를 쓴 이후 취업 약속과 채용으로 제2항을 위반한 것이니 최대 5년 제재의 시행규칙으로 단죄할 수 있다"는 군과 업계의 지적이 많습니다. 청렴서약서 위반은 방산업체 지정 취소까지 갈 수 있는 중대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지정 취소는커녕 개정 시행규칙에 의해 강화된 제재에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국회가 눈여겨보는 사건인데 방사청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A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곧 작지 않은 사달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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