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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6년간 총기류 기밀 무더기 탈취…단 6개월 제재가 전부

[취재파일] 6년간 총기류 기밀 무더기 탈취…단 6개월 제재가 전부
작년 3월 언론 보도로 우리 군 총기류 관련 대형 기밀유출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총기 전문업체 A사의 대표이사를 포함해 임직원 4명이 한 예비역 장교로부터 6년 동안 총기류 기밀을 빼낸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건입니다. 대표이사가 주도해 장기간 지속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관련 사업도 차지한, 유례를 찾기 힘든 방산비리입니다. 보도 이후 1년 반 이상 흘렀고, A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과 제재가 확정됐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헛헛합니다.

지난 1월 A사의 대표 등 임직원 3명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에 앞서 작년 10월 A사에 기밀을 넘겨준 예비역 장교 B씨도 징역 4년형이 확정됐습니다. 국가의 군사기밀을 빼돌려 사적 이익을 추구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반면 A사가 받는 제재는 소소합니다. 오는 12월까지 단 6개월 부정당업체로 지정된 것이 전부입니다. 부정당제재 기간인 6개월간 정부 사업에 참여 안 하면 그만입니다. 올 하반기 정부의 총기 사업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것도 없습니다. 말이 제재이지 A사가 받는 불이익은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식으론 방산비리 근절 못합니다. A사 사건처럼 몇 달 솜방망이 제재 후 다시 평화라면 비리는 계속 터질 것입니다. 기밀유출 같은 악질적 방산비리는 몸서리 칠 정도의 제재가 따라붙어야 사라집니다. 그런 수단들이 없지도 않습니다. 방사청이 방산비리 근절을 위해 해당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 의문입니다.
 

기밀 수집해 불법거래하고 뇌물 약속하고…A사가 저지른 일들

방산 전시회에 전시된 국산 총기류들

다른 기밀유출 사건과 차별되는 A사 사건의 특징은 대표이사가 대부분의 기밀유출을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부단하게 빼돌렸고 사업도 따냈다는 것입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범죄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사는 그해 8월 차기 경기관총 체계사업 군사기밀이 포함된 합동참모회의 결과 보고를, 11월엔 2017~2021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와 합동참모회의 결과 보고, 신형 7.62mm 기관총 사업 계획 등을 각각 B씨로부터 탐지 및 수집했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8월 A사는 방산업체로 지정됐습니다. 방사청은 방산비리 업체를 걸러내기는커녕 공식적으로 방산시장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10월엔 개인전투체계 중기전환과 12.7mm 저격용 소총 등의 방사청 군사기밀을, 12월엔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전력소요서를 B씨로부터 각각 탐지 및 수집했습니다.

방산 전시회에 전시된 국산 총기를 다뤄보는 육군 간부

비리는 계속됩니다. 2017년 2월엔 특전부대 무기체계, 12.7mm 저격용 소총, 개인전투체계 등의 군사기밀을 B씨로부터 탐지 및 수집했습니다. 2018년은 그동안 기밀을 빼낸 예비역 장교를 챙겨주는 해입니다. 2월 A사 대표는 기밀유출 장교 B씨의 채용을 지시하고 장교에게 금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12월 A사는 그를 채용했습니다.

기밀유출 범죄는 2019년 한해 쉽니다. 그해 A사는 부단하게 군 사업에 도전합니다. 앞서 빼낸 기밀들이 폭넓게 활용됐을 것입니다. 매 사업에 비리를 저지르지 않겠다며 제출한 청렴서약서는 사실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청렴서약서 위반은 방산업체 지정 취소의 처벌을 할 수 있는 중대 하자입니다.

A사는 2020년 3월 개인전투체계 전력소요서를 빼냅니다.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사업과 관련된 기밀입니다. 그리고 4월 해당 기밀들은 A사 임직원들에게 전파, 즉 누설됐습니다. A사는 결국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 업체로 선정됐습니다.
 

방사청, 압수수색 받으며 계약체결

방사청

안보지원사령부는 2020년 A사 기밀유출 사건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7월 A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증거를 모은 뒤 9~10월쯤 방사청 해당 사업팀도 압수수색했습니다. 이 정도 수사가 진행됐으니 방사청은 대형 사달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A사 대표이사의 소환조사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방사청은 10월 A사와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조차 "압수수색 당하면서 계약을 강행한 것은 좀 의아하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A사의 비리 수사는 2020년 하반기부터 방산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A사는 아랑곳 않고 K2C1 소총 양산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와중에 2021년 언론 보도로 사건이 대중에 공개되자 방사청은 차일피일 미루다 뒤늦게 K2C1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보도가 없었다면 A사가 K2C1 사업도 따냈을지 모릅니다. A사가 기밀 빼돌려 사업을 따낸 것이 분명한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체계개발은 계약이 취소됐습니다.
 

타당한 처벌 수준은? 실제 처벌은?

방산 전시회를 방문한 외국군 장교들이 국산 총기들을 살펴보고 있다.

2017년 6월 개정된 방위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2급 또는 3급으로 지정된 비밀의 제공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이 있는 경우 5년간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못해도 부정당제재를 2년 또는 3년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또 방위사업법은 방산업체의 대표 및 임원이 청렴서약서의 내용을 위반했을 때 방산업체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A사는 6년 동안 지속적으로 2급, 3급의 기밀을 빼냈습니다. 같은 기간 10여 차례 사업에 참가하며 대표이사 명의의 청렴서약서를 제출했고 A사는 전혀 청렴하지 못했습니다. 청렴서약서 위반 사례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정당제재 5년과 방산업체 지정 취소에 해당될 소지가 작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방사청은 A사에 부정당제재 단 1년만 내렸습니다. 그나마 방사청이 허술하게 부과하는 바람에 제재는 행정심판위원회에서 6개월로 반토막 났습니다. 방사청은 "최대한의 제재를 했다"는 입장입니다. 2017년 6월 이전 법으로는 최대한의 제재일지 몰라도 2017년 6월 이후 법의 기준으로 보면 솜방망이입니다. 결정적으로 A사의 범죄는 2017년 6월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방사청이 엄정하게 사건을 들여다봤는지 의문입니다.

A사의 6개월 부정당제재는 연말이면 끝납니다. 공교롭게도 A사 부정당제재 종료에 맞춰 A사의 기밀유출로 원점으로 돌아간 특수작전용 기관단총 사업이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참여할 테지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습니다. 국회든 감사원이든 A사에 대한 방사청의 처분 과정과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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