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국방 · 통일 · 외교의 말 바꾸기…'정부 불신' 퇴행하나

국방부에 이어 통일부, 외교부가 지난 정권에서 했던 일을 부정하는 발표를 했습니다. 2~3년 전 공식, 반(半)공식 브리핑에서 정부의 외교안보 스피커들이 공표했던 말이 모두 거짓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가 지금 하는 말은 진실일까요? 만약 5년 후 정권이 교체되면 또 말 바꾸기를 할지 모릅니다. 2~3년 전 진실이 오늘 거짓이 됐듯, 오늘 진실은 5년 후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거짓은 5년 후 진실로 복권될 테지요.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게 됐습니다. 정부의 불신입니다. 폐해가 작지 않습니다.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공무원들은 정권에 따라 거짓과 진실이 자리바꿈하는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시민을 위해 복무하는 공직의 의미와 무게를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부의 핑계는 "안보실의 요구로…"

 
북한 어민 북송은 잘못이라고 발표하는 통일부 조중훈 대변인
 
통일부 조중훈 대변인은 지난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탈북 어민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으로 넘겼을 경우에 받게 될 여러 가지 피해를 생각한다면 탈북 어민의 북송은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2019년 11월 통일부는 '선원들이 보호를 요청하는 취지를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했다'는 내용을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북 어민 북송은 잘못이고, 당시 통일부는 어민들의 귀순 의사를 확인해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래본들 통일부도 강제 북송을 '강 건너 불구경'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선원 추방 결정이 이뤄진 직후 통일부가 국가안보실로부터 언론브리핑 요구를 받았고, 이후에 브리핑을 진행했다"며 안보실 핑계를 댔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이 두려워 권력이 시키는 대로 부역했다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통일부는 현존 권력도 무서울 터. "탈북 어민 북송은 잘못"이라는 11일 브리핑도 권력 눈치보기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핑계 못 대는 국방부와 외교부

 
2020년 1월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 실무그룹은 강제 북송 과정에서 북한 어민들의 인권에 대해 어떤 고려가 있었는지 우리 정부에 질의했습니다. 한달 뒤 정부는 "선원들이 나중에 귀순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남측 군 당국에 나포될 당시 경고 사격에 도주하고 한 명은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답변했습니다.

2년 반이 지난 어제(15일) 외교부는 "문재인 정부의 답변이 보편적 국제 인권 규범의 기준에 비춰볼 때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답변서 작성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점을 대외관계 주관 부처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둘러댔습니다. 엄정해야 할 정부 기관이 옳지 않음에 눈 감았다는데 이유는 밝히지 않고 유감 한마디로 퉁쳤습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최종수사결과 발표를 마친 뒤 머리를 숙인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과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
 
국방부와 해경은 지난달 16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자진 월북 추정' 결론이 '월북 증거 없음'으로 둔갑했습니다.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은 "피살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께 혼선을 드린 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 숙였습니다. 외교부와 더불어, 번복의 이유는 설명 않고 무작정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전 정부 안보실의 요구라고 핑계 댄 통일부만 상대적으로 솔직하면서도 구차해졌습니다.
 

정치적 중립의 어려움

 
공무원의 가까운 상관은 정권입니다. 정권은 집권 기간 잠시 열려있는 기회의 창을 백분 활용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왜곡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눈앞 권력이 내놓는 당근과 채찍에 휘둘려 부역의 유혹에 빠집니다.

공무원에게 멀지만 궁극적인 상관은 시민입니다. 공무원의 시민에 대한 충성은 정치적 중립으로 실현됩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정치적 목적을 좇는 정권의 왜곡된 행동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권력에서 말미암은 이익과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에도 방기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는 안보를 책임지는 기관입니다. 안보는 정치 중립의 가치입니다. 이들 3개 기관은 공직 본연의 정치 중립에 안보적 정치 중립도 지켜야 합니다. 다른 기관보다 정치 중립의 의무가 막중합니다. 그런데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가 신구 권력의 정치 바람에 갈대처럼 중심 못 잡고 오락가락입니다. 3개 기관 위에 시민은 없고 정권만 보입니다.

앞으로 국방부와 통일부, 외교부의 발표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되겠습니다. 수고롭지만 권력 정치에 기대서 내뱉는 거짓말은 아닌지 냉정하게 검증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여반장(如反掌)인 시대, 시민보다 정권이 우선인 시대, 정부 불신의 시대로의 퇴행이 우려됩니다. 정치가 바로 서면 만사가 해결될 테지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