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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조치수역에 등장한 중국 구조물…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잠정조치수역에 등장한 중국 구조물…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인가
지난 3월 14일 오전 9시 55분 해수부 어업지도선 무궁화호가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서 수상한 시설물을 발견했다. HIGH ISLAND Ⅶ이라고 적힌 시설물. 석유 시추용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시설물로, 중국 측이 설치한 것이었다. 시설물이 발견된 위치는 서해 2광구에서 살짝 벗어난 곳으로, 잠정조치수역에서 중국 측에 붙은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2광구는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자원탐사를 설정한 총 8개의 광구 가운데 한 곳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이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한중 잠정조치수역

한중 잠정조치수역은 한국의 바다도, 중국의 바다도 아닌 곳이다.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중첩된 수역이다. 확실한 경계선을 긋지 못한 상태로 현재 양국 사이에서는 2015년 이후 경계선 획정 협상이 진행 중이다. 누구의 바다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는 할 수 없다. 그 행위의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건 지난 2001년 한중 어업협정으로 정해두었다. 협정에 따르면, 잠정조치수역에서는 항행, 어업은 가능하다. 그 외의 행위는 제한된다. 특히 바다 아래 땅, 즉 대륙붕을 건들이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자원탐사, 발굴 등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한중 양국 사이의 약속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규정이기도 하다.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이른바 분쟁 수역에서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인 자원탐사 행위, 석유 시추 활동이 있을 경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판례도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국제해양법재판소의 2004년 가이아나-수리남 사건과 2014년 가나-코트디부아르 사건,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제사법재판소의 1976년 그리스-터키 사건 모두 "분쟁 수역에서의 일반적인 관할권 행사는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경계가 불분명한 구역이기 때문에 분쟁도 잦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지난 2005년 서해 군산 앞바다 쪽, 2광구 지역 내에서 석유 시추 시도를 했었다. 이후 우리 측의 석유 시추 시도는 없었고, 2008년 중국의 시도가 있었다. 그로부터 14년 뒤, 잠잠했던 중국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중국의 시설물을 발견한 뒤로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3주가 지나서야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논의 주체도 처음에는 해양수산부였지만, 이후 외교부와 청와대로 격상하였다. 4월 5일에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즉 NSC 실무회의에 이 문제가 안건으로 올라 논의가 이뤄졌다. 그만큼 사안을 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SBS는 중국 측의 시설물 설치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단독 취재해 보도하였다. 당시 취재를 하면서 접촉한 전문가들은 중국 측의 행위를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작은 시도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건, 이런 행위는 점증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제때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후에는 더 큰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 당시 우리 정부의 이렇다 할 대응은 없었다.
 
정부가 이 사안을 3주 동안 지켜보기만 했던 이유, 즉각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우선, 중국 측 시설물이 설치된 위치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설물이 발견된 곳이 중국 측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는 잠정조치수역에 가상의 중간선을 그었을 때, 그보다 중국 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이다. 외교부 측은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법 제5조를 근거로 들었다. 중간선 바깥쪽 수역에서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중국 측에 가까운 곳이니 우리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시설물이 설치된 구역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하지만, 2005년 서해 2광구에서 석유 시추 시설을 했던 국내 기업은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석유 시추 기술과 인력이 풍부한 중국 측에서 이 작업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집한 자료에 근거해 중국 측이 석유 시추 시설물을 설치한 거라는 것이다. 당시 이 구역에서 석유 채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수치를 얻었고, 이 정보를 중국 측이 그대로 가져가 이번에 행동에 나섰을 것이란 추측이다. HIGH ISLAND Ⅶ이 설치된 지역이 2005년 우리가 시도했던 지역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는 걸 그 이유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시설물이 이동식 시설물이기 때문에 일시적일 수 있다고도 했다. 대륙붕을 뚫는 직접적인 시추 행위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SBS 보도가 나간 이후에야 외교부는 중국대사관 측에 사실 확인 요청을 보냈다고 밝혔다. 중국대사관 측에 확인해보니 "담당 과장이 해당 사실을 알려왔지만, 대사관 차원에서 파악한 바 없어 입장표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SBS의 질의에 "파악한 바 없다"며 "양국은 해양 경계 협상을 진행 중이며, 해양 업무 대화 협력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중국이 이렇게 나오자 우리 정부는 해양수산부와 외교부는 이 시설이 영구적인 것인지, 실제 시추행위가 이뤄지고 있는지, 사실관계 추가 파악에 나섰다. 중국 측과도 계속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 과정이 진행되던 지난달 말, 중국 측이 이 시설물의 존재에 대한 확인을 해주었다. "석유 시추 구조물이 아니라 어업에서 쓰는 양식 관련 부대시설"이라는 설명이었다. 외교부는 중국 측의 이 설명을 접수하고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사실상 '항의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혔다.
최근 중국이 설치한 석유 시추 시설물과 유사한 형태의 구조물

복수의 전문가들에게 확인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시설물 자체의 용도는 '시추시설이 맞다'고 했다. 다만 시추 용도로 제작이 되었더라도 수명을 다한 경우 다른 용도로 개조는 가능하다. 따라서 중국 측의 설명대로, 더 이상 시추용으로 쓸 수 없는 시설을 어업용으로 용도 변경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양식용 부대시설은 잠정조치수역에 들어와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사실상 양식용 시설도 잠정조치수역에는 들어오면 안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잠정조치수역에 외부에서 시설물이 들어왔다는 게 첫 번째 문제, 두 번째로는 양식시설이라고 하면 사료를 뿌려야 하는데 사료가 해양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 한 번 외부 시설물이 들어왔다면 앞으로도 다른 시설물을 얼마든지 설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양식용 시설물이라고 하더라도 중국 측에 향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계 미확정 수역에서 한쪽 국가의 시설물이 들고 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경계선 획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매년 1~2차례 한중 해양경계획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큰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바다의 국경선을 정하는 것이므로, 한번 그으면 돌이킬 수 없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아무 문제 없이 우리가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주장하면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시설물을 설치하고, 자원을 탐사하고, 발굴하는 행위들이 다 '알박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14년 이후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석유 시추 시설물 외에도 해양과학 조사용 부표를 계속 설치해오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설치된 중국 측 부표만도 5개나 된다. 야금야금 권리를 행사할 명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다른 수역에서도 비슷한 행위를 해오고 있다. 베트남과 분쟁 수역인 남중국해에 계속해서 석유 시추 시설을 설치하고 있어서 양국이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우리 측의 중국에 대한 대응은 확실히 미온적이다. 잠정조치수역에서 상황관리를 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대응 수위가 낮거나, 대응이 늦어질수록 중국 측은 우리나라가 용인한 걸로 오해할 수 있다. 경계선 획정에서 "우리 시설물에 대해 너네는 그동안 아무 말 안 하지 않았냐. 그러니 우리 것이다"라고 중국이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내어주는 일이다. 일부 전문가는 강력한 항의에서 더 나아가 확실한 재방 방지 약속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 정부의 대응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정부 교체기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한반도 위기 속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 사안은 분명히 한중 양국의 큰 현안으로 떠오를 텐데 어떤 대응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이 교훈만큼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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