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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수도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통일의 절차적 과정을 살펴보는 세 번째 순서, 오늘은 통일 이후 대두될 수 있는 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통일의 절차적 과정' 글 싣는 순서
<1>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①
<2>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②
<3>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수도
<4>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수도 ②

우리에게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상식과 같은 개념입니다. 세종시로 행정기능이 상당 부분 분산돼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는 여전히 서울이며 국가의 기능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수도 서울은 유지되는 것일까요?

서울 광화문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한 위주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상정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통일국가의 형태는 남북 간 합의에 의해 정해져야 하기 때문에 한쪽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국호, 태극기,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 수도 서울 이 모든 것들이 남북 간 협의의 대상이 되게 됩니다. 남한 위주의 통일을 상정한다면 남한의 것들이 상당 부분 통용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남한 방식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행정기능 분산되면 비효율

통일국가의 수도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 지를 논의하기 전에, 지금과 같이 서울과 세종시로 행정기능이 이원화된 상태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현재 외교안보부처를 제외한 상당수의 부처들이 세종시로 내려갔지만, 세종시 소재 부처의 중·고위직 간부 상당수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광화문 청사에 스마트워크 센터가 마련돼 있어 굳이 세종시에 내려가지 않아도 업무지시나 처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서울 사무실 출근을 선호하는 것은 거주지가 여전히 서울이나 근교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회와 청와대가 서울에 있어 서울에서 볼 일들이 많아서이기도 합니다. IT 기술의 발달로 화상회의 등 비대면 업무가 많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중요한 회의나 업무를 비대면으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 측에 상세한 설명을 하거나 설득을 해야 할 때는 직접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세종시 청사에는 팀장이나 고위간부 없는 날이 많고 서울과 세종시를 왔다갔다 해야 하는 시간적 낭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는 행정상의 비효율입니다.

통일이 되면 여기에 평양이라는 허브가 하나 더 추가돼야 합니다. 평양이 북한의 수도였던 만큼 통일한국의 수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부 행정기능을 분산 배치해야만 북한 주민들의 박탈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평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우하는 것은 통일한국의 화합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평양

이렇게 되면 통일한국의 행정기능은 평양-서울-세종시의 3원 체제로 분산되게 됩니다. 서울과 세종의 2원 체제에서도 행정상의 비효율이 드러나고 있는데, 평양까지 3원 체제가 되게 되면 비효율의 정도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아무리 화상회의를 활성화한다 하더라도 대면접촉이 필요한 경우가 많을 텐데, 평양-서울(200km) 서울-세종(140km) 거리를 왔다갔다하며 일을 진행한다면 길에 뿌리는 시간과 경비가 엄청날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통일 이후 수도 이전은 행정기능 효율화 차원에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통일수도가 갖는 의미

이제 통일 이후 수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수도는 한 국가의 상징적 거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데, 과거의 사례를 보면 새로운 국가 건설과 함께 각국은 새로운 수도를 선정함으로써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려 했습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개경(개성)에 도읍지를 정했고 조선은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긴 것이 좋은 예입니다. 통일신라의 경우 삼국통일 이후에도 경주를 그대로 도읍지로 활용했는데, 이는 고구려와 백제까지 합한 새로운 국가가 출범했다기보다는 신라의 영역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복속시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남북 통일시 서울이나 평양이 통일수도가 된다면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흡수됐다는 의미를 강하게 갖게 됩니다. 통일수도로 남한 주민들은 서울을 북한 주민들은 평양을 선호할텐데, 두 곳 중의 하나로 수도가 결정된다면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북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통일수도는 서울도 평양도 아닌 제3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래서 제기됩니다. 또, 새로운 수도의 선정은 구한말부터 시작된 국권침탈과 분단의 과거역사에서 벗어나 통일 이후 한민족이 새로운 시대를 개막한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도 평양도 아닌 제3의 장소는 어느 곳이어야 할까요.

한반도가 남한 위주의 체제로 통일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상대적 약자인 북한에 대한 양보와 배려 차원에서 북한 지역 도시로 통일수도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통일수도 결정에서 최우선 고려사항은 남북한의 화합이 되어야 하는데, 남한이 통일수도를 북한 지역에 양보하는 것은 남북통합의 중요한 조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통일수도를 북한 지역에 정하게 되면 통일정부가 북한 지역 개발과 남북 간 격차 해소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물론 통일수도는 이러한 점 외에도 통일한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상징 혹은 계승할 수 있는 곳이라는 차원에서도 사고되어야 합니다.

베를린으로 수도 결정한 통일독일

독일은 서독 위주의 흡수통일이 이뤄졌지만 통일 이후 수도는 서독의 수도였던 본이 아니라 동독의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정했습니다. (분단 당시 베를린은 동독 관할 하의 동베를린과 서독 관할 하의 서베를린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동베를린이 동독의 수도였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통일수도로 동독은 베를린을 서독은 본을 주장했지만, 1991년 연방의회에서 338 대 320이라는 근소한 표차로 베를린이 통일수도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338 대 320이라는 아슬아슬한 표차에서 보듯 통일수도를 정하기 위한 독일 내의 논쟁은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서독의 인구가 동독의 인구보다 3배 이상 많아 연방의회에서의 의석 수도 서독 출신이 훨씬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동독이 바랐던 베를린이 통일수도로 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시 독일 집권당이었던 기민당의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민당의 원내총무였던 쇼블레이는 "통일독일의 화합을 위해서는 동독 주민의 마음을 껴안아야 하고, 서독이 일정 수준 양보해야 한다"고 의원들을 설득했다고 합니다.

쇼블레이는 "분단의 극복은 분배와 양보의 의사를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상 서독으로 흡수통합되는 동독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수도 이전을 통해서라도 일부 다독이려 한 것입니다. 베를린으로의 수도 이전은 통일독일 정부가 구동독 지역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고, 통일 이후 동서독 간 정치적 통합에 기여했습니다. 물론 베를린으로의 수도 이전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수도를 본에 잔류시켰을 경우 국민통합에서 더 큰 문제점이 야기되었을 것이라는데 대해 이견이 크지는 않습니다.

수도를 베를린으로 이전하는 대신 본에는 연방도시라는 특별지위가 부여됐고, 연방행정기능의 일부가 유지됐습니다. 정부 부처가 모두 빠져나갈 경우 본 지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서울도 평양도 아닌 제3의 장소로 통일수도를 이전한다면 어느 곳이 유력한 후보지가 될 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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