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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통일의 절차적 과정을 살펴보는 두 번째 순서, 오늘은 통일헌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안정식 취파용
통일국가가 출범하기 위해서는 통일헌법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국가는 법치주의에 기반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에도 1948년 7월 17일 헌법이 공포되고 이러한 헌법을 바탕으로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정치권력이 헌법에 기초해야 한다는 법치주의가 적용됐습니다.

그런데 통일한국에서 통일헌법을 마련하는 작업은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보다 다소 복잡하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새 헌법 만들 필요 없었던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의 경우 통일과정에서 통일헌법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독이 미래의 통일에 대비해 기본법(헌법)에 두 가지 조항을 마련해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독 기본법 제23조는 "다른 독일 주가 독일 연방공화국에 가입하면 가입한 주에도 기본법이 효력을 발효한다"고 규정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독일 연방공화국은 서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필요 없이 동독의 주들이 서독에 편입하는 것만으로 통일이 달성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서독 기본법 제146조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도 있었습니다. "이 기본법은 독일 민족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제정된 헌법이 발효하는 날에 효력을 잃는다." 이 조항에 따르면 동독과 서독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제헌의회가 새로운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방식을 취할 경우 통일헌법 제정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할 때 통일은 좀 더 늦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 3월 동독 최초로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의 쟁점은 이 두 가지 방안 중에 어떤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독 기민당은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빠른 통일을, 동독 사민당은 서독 기본법 제146조에 따른 점진적인 통일을 주장했습니다. 총선 결과는 기민당 측의 승리였고, 독일 통일은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새로운 헌법의 제정 없이 이뤄졌습니다.
 

새 헌법 제정 필요한 남북한

안정식 기자 취재파일 대문사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북한의 경우에는 남한 헌법에 서독 기본법 제23조와 같은 규정이 없기 때문에 통일헌법을 새로 제정해야 합니다. 남북한 의회가 통일헌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일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의회정치가 몇 십 년째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시기의 의회가 통일헌법 제정 작업에 나서면 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의회 역할을 하고 있는 최고인민회의는 거수기에 불과한 기구이고 북한 주민들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와 통일헌법 제정을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헌법을 제정할 시기에 북한 지역에서 최고인민회의가 폐지되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의사를 대변할 의회가 구성돼있다면 그 의회와 통일헌법 제정에 나서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의회를 북한 지역에 새로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북한 지역에서 실시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선거에 대한 개념이 전파되어야 하고, 선거 후보자들을 배출할 민주적 정당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북한 내에 자유의 바람이 들어가 민주적 정당이 마련될 정도의 토대가 형성돼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 내에서 정당을 결성해 총선을 치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자칫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돼 통일로 가는 길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남한 헌법 확대적용도 검토해야


통일로의 방향이 정해진다면 통일로 가는 시간은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통일로 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헌의회 구성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임시조치로 남한 헌법을 북한 지역까지 확대적용해 통일을 이룬 뒤, 통일정부가 시간을 가지고 북한 지역 총선과 새로운 통일헌법을 마련하는 작업에 나서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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