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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 있는가

북한 신형 ICBM인 화성-17형 발사
▲ 북한 신형 ICBM인 화성-17형 발사

2017년 11월 이후 ICBM급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왔던 북한이 다시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달은 김일성 생일 110주년 등 갖가지 북한의 기념일들이 몰려있는 만큼, 대규모 열병식과 추가 도발이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시점에 통일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대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라는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북한 이미지는 더욱 나빠지고 있고, 지금 당장 통일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격변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학자들이 역사적 격변을 연구하면서 전조가 있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다시 살펴보니 그런 징후가 있었다는 것이지 사전에 격변을 예측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역사의 전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항상 만일의 사태에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라는 코너로 1년 반 가까이 써 온 글들은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통일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더라도 갑자기 닥쳐올 수 있는 통일에 대해 우리는 준비돼 있는지 사전에 점검해보자는 차원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통일에 이르는 절차적 과정인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그리고 통일 이후 대두될 수 있는 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이 코너를 마치고자 합니다.
'통일의 절차적 과정' 글 싣는 순서
①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⓵
②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조약과 통일헌법 ⓶
③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수도 ⓵
④ 통일의 절차적 과정 – 통일수도 ⓶

통일조약이란


남북이 통일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통일조약이라고 불리는 합의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통일조약은 통일합의서라고도 불리는데 통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룰 것인지 합의하는 문서입니다.

통일조약과는 별도로 통일헌법이 있습니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통일헌법은 통일국가의 기본 틀을 규정해 놓은 통일국가의 중심뼈대입니다. 현실적으로 통일헌법은 통일조약에서 마련된 통일 방향에 따라 구체적인 조항이 정해지게 됩니다.

통일조약과 통일헌법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했지만 통일조약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헌법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인 만큼 비교적 이해가 쉽지만, 통일조약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통일조약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통일조약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통일조약

독일 통일조약 체결

독일에서는 1990년 10월 3일 통일에 앞서 같은 해 7월 6일부터 8월 30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통일협상이 진행됐습니다. 통일조약(통일합의서)을 만들기 위한 회담이 동베를린과 본을 오가며 이뤄진 것입니다. 통일조약 회담에는 서독에서 내무장관을 수석대표로 50명이 동독에서 정무차관을 수석대표로 50명이 참가했으며 8월 31일 서명이 이뤄졌습니다.

독일의 통일조약은 전문(前文)과 9장 45조의 본문, 의정서와 특별규정으로 구성돼 있는데, 주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제1조에는 동독 5개 주가 서독 기본법(헌법) 제23조에 따라 1990년 10월 3일 자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편입된다고 돼 있습니다. 제2조에서는 독일의 수도를 베를린으로 정했으며, 의회와 행정부의 소재지 문제는 독일통일이 이뤄진 뒤에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제3조에서는 서독 기본법(헌법)이 통일과 함께 동독 지역에서도 효력을 발생하도록 했습니다.

이 밖에 세금 등 재정 문제와, 동독 법률과 동독이 체결한 조약의 효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동독 판결의 효력 여부와 동독 정치범들의 복권 문제, 공공재산과 부채 처리 문제, 연금 지급 등 사회보장과 관련된 문제, 동독에서 취득한 자격증 인정 문제 등 광범위한 내용이 통일조약에 들어가 있습니다.

통일조약 협상과정에서는 통일독일의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지, 소련 점령 기간 몰수된 동독 지역 재산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동서독 간 규정이 다른 낙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주요 쟁점이었는데, 통일조약 회담의 서독 수석대표였던 쇼이블레 내무장관은 "동독과의 협상보다 소속 정당인 기민당이나 야당, 이익집단을 이해시키는 서독 안의 협의 과정이 더 어려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남북한의 경우에도 통일협상을 하게 되면 통일국가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할지, 국기는 '태극기'로 할 것인지 등을 놓고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협상이란 것이 한쪽의 의견만을 관철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국호나 국기, 수도 변경을 논의하는 데 대한 국내의 반발도 상당할 것인 만큼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통일조약


지금부터는 남북한 통일조약에 들어가야 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통일 일정표 : 통일을 이룩할 구체적인 날짜와, 통일조약에서 합의되는 조치들이 언제까지 이행돼야 하는 것인지 일정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 통일방법 : 독일처럼 북한 정부의 해산과 북한의 소멸을 선언하고 남한에 흡수 통합되는 방식의 통일을 선택할지 다른 방식을 택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 통일국가의 국호, 국기, 국가(國歌), 수도 : 통일국가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할지, 국기는 태극기로 할지, 국가(國歌)는 남한의 애국가를 사용할지, 수도는 서울로 할지 등을 결정해야 합니다. 합의가 어려울 경우 통일조약 체결이 지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일국가의 의회가 결정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통일헌법 마련 방안 : 새로운 통일헌법을 제정할지 대한민국의 헌법을 개정할지, 통일헌법 제정이나 개정의 절차는 어떤 식으로 할지, 제헌의회는 어떻게 구성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제헌의회 구성을 위해 북한 지역에서 선거가 필요하다면 북한 지역 선거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치를지에 대한 일정표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 통일국가의 정부 형태 : 통일한국의 정부가 대통령중심제를 택할 것인지 의원내각제를 택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 통일의회 구성방안 : 의회는 단원제로 할 것인지 양원제로 할 것인지, 양원제를 채택한다면 상·하원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 통일과정에서의 과도 조치 : 통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남북한 지역을 한시 분리하고 북한 지역을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이와 관련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 통일과정에서 법률 적용 문제 : 통일헌법 제정 이후 남북한 법률 통합이 완성될 때까지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남북한 지역에 어떤 법률을 적용할 것인지도 결정돼야 합니다. 쉽게 말해 법률 통합 때까지 북한 지역에 기존 북한법을 그대로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 북한 행정행위와 사법행위의 효력 : 기존의 북한 행정행위와 사법행위의 효력을 계속 인정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 경제통합의 대원칙 : 통일한국이 사유재산제를 인정하고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경제통합의 대원칙이 명시돼야 합니다. 화폐도 남한 원화를 북한 지역까지 사용할 것인지 새로운 화폐를 만들 것인지 화폐 통합의 시기와 남북한 화폐의 교환 비율 등을 논의해야 하나, 경제통합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면 구체적인 경제 관련 합의는 별도 기구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공산정권 수립 시 몰수된 재산 처리에 대해서도 반환이냐 보상이냐 또는 이미 재산권이 효력을 상실한 것으로 볼 것이냐 등의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 대외관계 조정 : 남북한이 각각 외국과 체결한 조약이나 채권 채무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돼야 합니다.
■ 통일한국군 통합의 원칙 : 1국가 1군대 원칙이 명시돼야 합니다. 남한군을 중심으로 군을 재편하되 북한군도 희망자는 최대한 복무 기회를 주도록 한다는 원칙을 명시해 통일과 이후 과정에서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합니다.
■ 북한 경찰(사회안전원), 북한 공무원 등 처리 방안 : 북한 경찰, 공무원 조직 등을 그대로 존속시킬 것인지, 아예 해체시켜 남한 조직에 편입시킬 것인지 등에 대한 원칙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남한 조직에 편입시킬 경우 북한 인원들에 대한 재임용 원칙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 과거청산 : 기존 북한체제에서 저질러진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문제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남북한의 안정적 통일을 우선시할 경우 포괄적인 원칙 정도만 규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정치적 피해구제 : 기존 북한 정권에서 입은 정치적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으로 구체적으로는 사면복권과 금전 보상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통일조약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약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한 절차적 요건을 기재하고 필요에 따라 부속합의서를 체결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통일조약의 발효


독일의 통일조약은 1990년 9월 20일 서독 연방 하원과 동독 인민의회에서 모두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비준됐습니다. 남북한 통일조약도 남북한의 의회에서 비준하는 절차를 밟으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통일조약이 실질적으로 헌법적 사항을 규정하는 부분이 많은 만큼 헌법적 효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에 준하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의회 비준 정도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통일조약에 대한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일면 타당한 말이지만, 통일조약 말고도 통일헌법 제정 과정에서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나 통일헌법 확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만큼, 절차적 정당성에 큰 하자가 없다면 정치적 절차를 간소화해 통일로 가는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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