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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파일] 리듬체조 국가대표 울린 체조협회 한심 행정

리듬체조 국가대표 유망주의 국제대회 출전을 결과적으로 포기하게 만든 대한체조협회(회장: 한성희)의 행정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대한체조협회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선수의 상황도 배려하지 않아 사태를 더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권종오 취파용

올해 20살인 김주원 선수(세종대학교)는 지난해 8월 국가대표에 선발됐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대한체조협회는 대표팀 훈련 계획을 선수에게 통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가대표 선수가 확정되면 향후 구체적인 훈련 일정과 대회 출전 일정 등을 선수에게 알려줘야 하는데도 세종대학교 측은 "대한체조협회로부터 사전에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냥 허송세월만 할 수 없었던 김주원은 지난해 11월 전지훈련을 위해 혼자 벨라루스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러시아 리듬체조를 이끌었던 다리아 콘다코바 코치의 지도 아래 기량을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벨라루스 전지훈련 비용은 김주원과 세종대학교가 분담했습니다. 대한체조협회 돈은 1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김주원이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지난해 12월 28일 대한체조협회는 2022년 1월 12일부터 28일까지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입촌 훈련을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쉽게 말해 빨리 귀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주원 선수는 이 통보를 받고 난감해졌습니다. 기량 점검과 실전 경험을 위해 2022년 2월 18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모스크바 2022'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벨라루스에서 모스크바까지는 항공기로 1시간 남짓이면 이동이 가능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문제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각종 경비도 절감됩니다.

반면 한국으로 귀국할 경우 격리 기간을 거쳐야 하고 진천 선수촌에서 처음 보는 신임 코치와 얼마 훈련을 하지 못한 뒤에 다시 러시아로 떠나야 합니다. 막대한 비용도 선수와 학교가 모두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종대학교는 대한체조협회에 재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체조협회는 "김주원의 국제대회 출전은 승인할 테니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입촌은 반드시 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이후 세종대학교가 격리 문제와 촉박한 일정 등 여러 상황을 이유로 벨라루스에서 바로 모스크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체조협회는 끝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체조협회의 입촌 요구에 불응할 경우 국가대표에서 제외되거나 선발전 출전 제한 등의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권종오 취파용

결국 벨라루스에서 훈련하고 있던 김주원은 지난 1월 21일 터키를 거쳐 귀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10일 동안 자가 격리까지 했습니다. 모스크바 국제대회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습니다. 대회에 나가려면 2월 9일에는 출국해야 하는데 일정으로 보나 컨디션으로 보나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입촌 훈련도 코로나19 확산 이유로 또 늦춰졌습니다. 애초 대한체조협회가 통보했던 1월 12일이 아니라 1개월이나 흐른 2월 14일부터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오미크론 대유행을 고려해 입촌 훈련을 '없었던 일'로 하고 각 종목이 알아서 선수촌 밖에서 자율적으로 훈련하라고 방침을 변경했습니다.

김주원 선수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비용은 비용대로 들었고, 훈련은 훈련대로 못했고, 국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모스크바 대회도 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대한체조협회가 그토록 강조했던 충북 진천선수촌 입촌 훈련도 언제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까운 시간만 흘러간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이유에 대해 대한체조협회는 이렇게 해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대표 선발전이 끝난 뒤에 바로 전임 코치를 뽑아야 했는데 적임자가 마땅치 않아 무산됐다.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른 지난해 12월에 신임 코치가 결정됐다. 그래서 훈련 계획을 미리 짜거나 통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매년 1월이면 입촌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김주원 선수와 세종대학교가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고 본다. 또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전임 코치가 해당 선수의 몸 상태와 컨디션을 직접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선수를 입촌 훈련에서 제외해주면 다른 선수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대한체조협회의 해명은 한마디로 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임 지도자를 제때 뽑지 못한 것은 체조협회의 책임이지 선수의 책임이 아닙니다. 설사 제때 뽑지 못했다 하더라도 선수들에게 향후 훈련이나 입촌 계획을 미리 구체적으로 알려줬다면 이번 사태를 막았을 겁니다.

7살 때 리듬체조를 시작한 김주원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최종 성화주자로 뽑힐 만큼 유망주로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이 대회에서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대한체조협회의 존재 이유는 가능성이 보이는 꿈나무를 지원하고 대형 선수로 키우는 것입니다. '제2의 손연재'를 하루빨리 발굴해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대한체조협회가 유망주의 국제대회 출전 꿈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란 게 체조계 안팎의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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