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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국 정부는 기자 통화내역 조회 금지…공수처는 합법?

[취재파일] 미국 정부는 기자 통화내역 조회 금지…공수처는 합법?
지난 18일에 저는 공수처의 민간인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 팩트체크하는 취재파일을 썼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통신자료 조회, 다시 말해 수사기관이 통신사를 통해 수사대상과 통화한 번호를 이용하는 사람의 개인정보를 조회하는 행위는 오래된 수사관행을 답습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공수처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취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해당 기자의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받아본 것, 다시 말해 통화내역을 조회한 것은 언론인 사찰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으로 매우 중대한 문제다."

'관행'에만 "유감"…'통화내역 조회' 언급은 회피

공수처 민간인 통신자료 조회

그렇지만 공수처는 2021년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통신자료 조회 논란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수사대상과 통화한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수사 관행을 "답습"한 점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하며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을 뿐입니다. 관행이나 제도의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는 대목에 대해서만 유감을 밝히고, '언론인 사찰'이라는 더욱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셈입니다.

그렇다면 공수처 같은 수사기관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것이 정말 중대한 문제일까요? 수사기관의 통화내역 조회는 이른바 '통신영장'이라는 형식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뤄지는 행위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수사 방식 아닐까요? 기자 이외의 민간인들을 상대로도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인데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나 수사기관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언론인의 통신내역을 파악하는 것은 결국 비판적 기사의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일이 공공연하게 허용되면 언론사의 취재원 비닉권(취재원의 신원을 비공개해 보호할 수 있는 권리)은 무력화되고, 수사권을 가진 기관 또는 수사권을 가진 기관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권력자에 대한 비판 보도가 극도로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명분으로 수사권을 동원해 기자의 취재원을 색출하는 행위가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미국 정부는 취재 관련 통화내역 조회 전면 금지


흥미롭게도 얼마 전 미국에서도 수사기관이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파악한 일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대응한 방식, 그리고 뒤이은 정책 변화를 보면 공수처가 비판적 보도의 취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뒤진 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메릭 갈런드 미 법무장관

2021년 7월 19일 미국의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정책 메모(policy memo)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도 공개된 이 메모는 갈런드 장관이 전국의 연방검사(federal prosecutor)들에게 법무부의 새로운 정책을 통보하는 공문에 해당합니다. 제목은 "뉴스 미디어 구성원들로부터 기록 또는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강제적 절차를 이용하는 것에 관하여" (USE OF COMPULSORY PROCESS TO OBTAIN INFORMATION FROM, OR RECORDS OF, MEMBERS OF NEWS MEDIA)였습니다. 갈런드 장관은 이 공문을 통해 통화내역 등 언론인 관련 기록이나 정보를 연방검찰이 영장을 통해 확보하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뉴스 취재와 관련된 통화내역 조회를 전면 금지한 미국 법무부 장관 명의 공문


갈런드 장관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허가되지 않은 폭로 때문에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론인들이 취재원을 밝히도록 강요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역시 "국가적 이익(national interest)"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갈런드 장관은 "법무부는 취재 활동에 종사하는 뉴스 미디어 구성원들로부터 정보나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강제적인 법 절차를 이용하지 않겠다. (The Department of Justice will no longer use compulsory legal process for the purpose of obtaining information from or records of members of the news media acting within the scope of news-gathering activities.)"라고 선언했습니다.

연방검찰이 영장(subpoena)을 받아서 기자들의 휴대전화나 취재노트 등을 확보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통신사를 통해 기자들의 통화내역이나 이메일 내역, 모바일 메신저 이용 내역 등을 조회하는 행위까지 금지하겠다는 뜻입니다. 갈런드 장관은 기자가 내부자 거래 등 취재와 관련 없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있을 때는 강제 수사를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예외 범위를 밝히고 있지만, 동시에 "취재 과정에서 비밀 정보 등 정부 관련 정보를 확보했거나 이와 관련된 기사를 썼을 뿐인 언론인에 대해서는 정보나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적 절차 이용을 금지한다. (The prohibition does apply when a member of the news media has, in the course of newsgathering, only possessed or published government information, including classified information.)"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바이든 美 대통령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잘못된 일"


미국의 법무부는 왜 이런 정책을 발표한 것일까요? 트럼프 정부 때인 지난 2017년에 미국 연방검찰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조사를 이유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기자의 통화내역 등을 영장(subpoena)을 받아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폭로된 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22일 '바이든 행정부도 기자의 통화기록 등에 대한 조회를 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잘못된 겁니다. 정말,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겁니다. (Absolutely, positively — it's wrong. It's simply, simply wrong. I will not let that happen.)"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두달 뒤, 갈런드 법무부 장관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책을 공식 발표한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 동영상을 올린 CNN 기자 트위터


이 사례를 보면 미국에서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수사기관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조사를 이유로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영장을 받아서 몰래 조회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이 공개되자 - 전임 대통령 때 일이어서 그랬겠지만 - 대통령까지 나서서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일을 금지한다는 정책을 공문으로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조사를 이유로 비판적 기사를 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공수처의 행위는 미국에서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미국에서는 "국가적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며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지한 중대한 잘못으로 규정된 행위라고 평가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됐던 '기자 통화내역 조회'


표현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에서는 수사기관이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해 언론인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것을 중대한 일로 여길 수 있지만, 우리나라 수사기관에서는 관행적으로 있었던 일인데 공수처에 대해서만 언론사들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비판적 기사를 보도한 기자의 취재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수사기관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건이 간혹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언론인 통화내역 조회가 드러났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2003년에 대검 중수부가 현대와 SK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밀이 누설된다며 출입기자 여러 명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보도되자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습니다. 2013년 이명박 정부 때는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시사저널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 경찰이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역시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는 창원지검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장이 접수됐다며 취재원을 찾으려고 연합뉴스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진보 성향 단체로 분류되는 언론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협의회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검찰을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성윤 황제 조사 의혹 CCTV 보도'와 관련된 기자 가운데 최소한 2명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성윤 황제 조사 의혹 CCTV 보도'는 공수처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계기가 된 보도입니다. 아마 공수처가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기사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공수처가 바로 이 기사의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해서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겠다고 수사권(또는 내사 권한)을 동원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합법의 형식을 빌린 '언론인 사찰' 의혹

김진욱 공수처장

공수처는 내사 대상이 TV조선 기자가 아니라 'TV조선 기자에게 이성윤 CCTV 관련 정보를 넘겨준 것으로 의심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수원지검 검사'라며, 검사에 대한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내사를 위해 관련자인 기자의 통화내역을 통신영장을 받아서 조회한 행위는 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비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공무원이 아니라 비밀 정보를 보도한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미국 법무부 정책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분명하게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던 행위 말입니다.

공수처의 행위는 '신원을 알 수 없는 검사'에 대한 내사라는 형식을 빌어서 실질적으로는 언론인의 취재 경위를 조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공수처가 내사를 시작한 시점이라고 밝힌 지난 4월 이후 8달이나 지났는데도, 수원지검 수사팀의 유출 의혹과 관련된 아무런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공수처가 합법적 형식을 취하기 위해 근거로 제시했던 '첩보' 자체가 애초부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부풀린 것이었거나 심지어 조작된 것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애초부터 '첩보'에 신빙성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근거로 내사에 착수하고 비판 기사의 취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것이었다면, 외관상으로는 합법적 권한 행사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위법한 목적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행위, 즉, 직권남용 혐의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드러난 통화내역 조회 행위만으로도 공수처는 마땅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또, 공수처가 합법적 행위의 근거로 제시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수원지검 검사의 공무상 비밀 누설 의혹 첩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는지,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진 것이었는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통화내역 조회보다 방어하기 쉬운 통신사 가입자 정보 조회(통신자료 조회)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명하고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 재발방지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을 뿐입니다.

 

직권남용 혐의 고발…지금은 침묵하는 검찰

검찰/공수처

공수처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공수처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검찰이 잘못한 일은 공수처가, 공수처가 잘못한 일은 검찰이 수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공수처를 출범시킨 현 정부에서 임명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장악하고 있는 검찰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공수처의 비위 의혹에 대해 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TV조선 기자와 관련된 공수처의 내사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고발장이 지난 6월 안양지청에 접수됐지만, 안양지청은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은 언제나 변할 가능성이 있고, 상황 변화에 따라서는 법무부나 검찰이 공수처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수처 도입 당시 공수처 찬성론자들이 주장했던 '견제와 균형' 원리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럴 경우 공수처의 기자 통화내역 조회 사건이 우선적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혹이 점점 번져나가고 있는 지금, 공수처가 계속 침묵을 지킨다면 말입니다.

저는 공수처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부터, 검찰과 공수처가 각자의 수사권을 동원해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는 것은 두 수사기관 모두를 정치적 변화에 취약하게 만드는 잘못된 설계라고 비판했습니다. 정치적 상황이 공수처에 유리할 때는 공수처가 일방적으로 검찰을 수사하고, 상황이 검찰에 호의적일 때는 검찰이 공수처를 제압하듯이 수사하는 식으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정말로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수처가 늦기 전에 이번 의혹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기를 바랍니다.



- 참고 자료 -

언론인 통화내역 조회를 금지한 메릭 갈런드 미국 법무부 장관의 정책 메모 원문 링크
▶https://www.justice.gov/ag/page/file/1413001/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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