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씨 내외가 친구인 13대 대통령 노태우 씨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등 떠밀리듯 백담사 귀양살이에 나선 것은 1988년 11월 23일입니다.
당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연희동 자택을 떠나 은둔 길에 올랐던 전 씨 내외는 그날 오후 2시 30분 백담사에 도착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정식으로 출가해 민족혼이 깃든 고찰인 백담사는 전 씨 내외의 은둔지로 알려지면서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당시 전 씨 내외가 백담사에 처음 도착한 모습을 지켜봤던 한 주민은 "연희동을 떠나 숨 가쁘게 달려온 베이지색 그랜저 승용차가 전 씨 내외를 절 앞 냇가의 빈터에 내려놓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일주문에 들어섰다"고 회상했습니다.
전 씨 내외가 건넜던 10여 m 길이의 외나무다리는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화강암을 이용해 길이 80m, 폭 3m의 '수심교'가 건설됐습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뜻의 수심교는 전 씨가 작명한 것으로, 전 씨는 화선지에 다리 이름을 써 교각 머리에 새겨 넣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전 씨 내외의 백담사 은둔 생활은 1990년 12월 30일 연희동 자택으로 복귀할 때까지 2년 1개월간 이어졌습니다.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약 7㎞, 왕복 14㎞ 거리입니다.
전 씨 내외는 이 짧은 거리를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정확하게 769일간 귀향 생활을 한 셈입니다.
특히 전 씨는 백담사 은거 기간 중인 1990년 11월 4일 23명이 사망한 인제 군축교 버스 추락사고를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백담사에서의 전 씨 내외 흔적과 인연인 2019년 12월 지워졌습니다.
이른바 2019년 전 씨의 골프장 나들이에 이어 '12·12 호화 오찬'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자 인제 백담사가 30여 년간 보존해온 전 씨의 물건 등을 철거한 것입니다.
백담사 화엄실에는 전 씨 내외가 쓴 물건들이 30년간 보존되다가 철거됐습니다.
보존됐던 물품은 의류, 목욕용품, 거울, 이불. 화장대, 촛대, 세숫대야 등입니다.
지병을 앓아 오던 전 씨는 오늘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습니다.
한편 전 씨와 노 씨는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 동창으로서 학창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으며, 1979년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뒤 차례로 대통령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노 씨 재임 당시 이른바 '5공 청산' 과정에서 전 씨가 백담사에서 귀양살이하게 되면서 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양측 모두 내란죄 등의 혐의로 나란히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