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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5·18 특별법에선 삭제한 '왜곡' 언론중재법은 '문제없다'?

언론중재법 관련 발언하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언론중재법을 어제(23일)도 적극 방어했습니다. 허위보도 건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현행 제도에선 손해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무책임한 기사로 기업이 망하고 개인의 삶과 명예가 짓밟혀도 수수방관한다면 같은 잘못이 반복될 거라며 언론중재법, 즉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보로 심각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대한 구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일견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송 대표의 주장은 핵심이 빠져 있습니다. 허술한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 없이 법안의 명분만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국회 본회의가 내일(25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민주당 당대표가 언론중재법 과연 제대로 만든 법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5.18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비방하는 경우 형사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518 특별법, 왜곡, 국회, 민주당

당시 특별법 원안 문구에는

제8조(5·18민주화운동 부인·비방·왜곡·날조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금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핵심 조항은 '부인 비방 왜곡 날조'라는 문구입니다. 그런데 법사위 소위를 거치면서 이 문구는 사라졌습니다.

문구 수정을 논의했던 2020년 12월 7일(월)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봤습니다.

전문위원 허병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인 비방 왜곡 행위의 처벌과 관련해서는 표현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침해가 크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개정안 문안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서 저희가 수정의견을 마련했습니다."

수정안에는
제8조(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금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원안에 들어있던 부인 비방 왜곡 날조라는 문구가 삭제됐고 징역 각각 7년에서 5년 이하로 벌금이 7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이하로 수정됐습니다.

수정안을 놓고 당시 법사위 소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지난번에 문제 제기된 부분들을 다 감안해서 수정의견이 특별한 문제 없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8조 조항 수정안에 대해 김인겸 법원행정처차장은 "원안보다는 전문위원 수정의견이 상당히 정리가 잘 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허위사실 유포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구성요건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요. ~ 왜곡할 목적으로라는 초과 주관적 요소를 넣으면 이것이 해석 적용 과정에서 굉장히 이것 때문에 다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이용구 법무부 차관도 "법원 의견을 받아 가지고 법무부도 의견을 보태서 법무부와 법원이 합의한 재수정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라며 수정안에 힘을 실었습니다.

백혜련 소위원장은 "그러니까 왜곡할 목적이라는 부분을 빼느냐 안 빼느냐의 문제인데 제가 봐도 법원 의견이 더 나을 거 같은 게 사실 항상 재판을 하다 보면 목적을 가지고 다투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또 범위가 오히려 협소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이 목적은 빼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왜곡이라는 문구가 주관적이라는 점을 소위 위원들도 어느 정도 공감한 거라고 판단됩니다.

언론중재법 수정

그런데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언론중재법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지나치게 모호한 조항들이 곳곳에 명시돼 있습니다.

핵심 독소조항으로 지적받는 30조 2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30조 2의 ① 법원은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고 규정합니다.

주요 언론조차도 다루진 않았지만 법조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문구는 '조작보도'라는 부분입니다.

허위라는 개념은 팩트가 맞다 틀리다 정도로 비교적 명확하게 책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작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조작에 대한 개념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정치인들의 발언의 일부를 보도했다고 예를 들어보죠. 정치인의 발언은 아시다시피 A라는 한 가지 현안에 대해서만 발언하지 않습니다. 백브리핑에서도 A부터 Z까지 수많은 현안에 대해 발언합니다. 그런데 언론사는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A라는 현안에 국한해 최대한 취지를 반영해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정치인이 자신은 B를 애기하려던 건데 언론사가 A부분만 발췌해서 발언의 취지를 심대하게 왜곡 조작했다고 주장한다면요? 언론중재법상 언론사의 통상적인 이런 행위는 '조작'보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언론사의 편집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신문, 보도, 언론, 기자 (사진=픽사베이)

일각에서는 법은 최소한이다. 법원과 사회적 상식에 맡기자는 얘기를 합니다. 틀린 말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상식과 양심은 법원 선고가 확정되는 시점을 전제로 하는 얘기입니다. 언론중재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부터 언론보도를 둘러싼 고소고발이 밀려들 수 있습니다. 배상여부를 떠나서 언론사 기자들이 소송전에 시달리느라 취재 보도 행위가 심대하게 위축될 거라는 건 자명한 얘기입니다.

중과실 추정을 명시한 구체적인 문구도 조목조목 따져 보겠습니다.

<1.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보복'은 객관적 문구입니까? 혹 반복적인 후속보도를 보복이라고 원고가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 언론은 중과실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4.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기사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조작과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만 5·18 특별법에서 언급했듯 왜곡이란 단어 역시 객관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법안이 모호하다는 건 긍정적인 표현을 쓰자면 해석의 여지, 재량권이 많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해석의 재량권이 넓다는 게 과연 좋은 법인지 송영길 대표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특히 징벌배상은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형사처벌에 준하는 징벌적 배상을 하라는 겁니다. 이를 인정하는 법적 구성요건은 형사처벌 규정에 상응하는 정도의 명확성의 원칙을 갖추어야 하는 거죠. 근본적으로 잘못된 겁니다.

반복된 얘기일 수 있습니다만 언론 출판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보다 우월하다고 보지는 않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더라도 엄격한 요건 하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명확한 요건에 따라 고의 중과실을 추정하라고 조항을 명시해놓은 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됩니다.

언론중재법이 설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헌법소원이 잇따를 겁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안의 위헌성 여부를 먼저 판단하기 전에 법안 심의 과정의 절차상 적절성도 따질 겁니다. 언론중재법은 어떻게 통과됐습니까? 과연 국민의 대의기관에서 여야가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거친 법인지 절차상 하자는 없는지 의문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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