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공항 들어온다니 '새 건물' 우후죽순…주민은 몸살

- 가덕도 신공항 후보지 대항마을 '신축 붐', 보상 노린 듯

화강윤 취파용 가덕도 신공항

인구가 500명도 안 되던 작은 어촌 대항마을, 이곳에 올 초부터 건축 붐이 일었습니다. 먼지와 소음이 끊이질 않았고, 주민들이 자그맣게 농사를 짓던 비탈의 땅들은 순식간에 집과 상가로 변모해갔습니다. 모두 동남권 신공항이 특별법을 통해 가덕도로 방향을 틀게 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동남권 신공항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동남권 신공항은 지난 수십 년 간 입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지난 정부에 김해 신공항 확장이 결정돼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던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중심으로 신공항을 재검토하자는 논의가 커지더니, 지난 3월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까지 통과되며 가덕도로 굳어졌습니다. 입지에 대한 사전 타당성 검사가 수행되기도 전에 입지가 법안명에 이미 들어가 있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법안입니다.

화강윤 취파용 cg
화강윤취파용 CG
▲ 2020년 부산시 제안 신공항 건립 구상

지난해 부산시에서 제안한 신공항 건립 구상은 이렇습니다. 대항마을을 통째로 가로지르며 주변의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고 짓는 방안입니다. 이 방안이 점점 뚜렷한 모습을 갖춰갈수록, 없어지게 될 마을에 새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계획대로 공항이 추진된다면 모두 부서질 수밖에 없는 집인데도 말입니다.

부산 강서구청에서 올해 가덕도 동에 허가한 신축 공사 건수는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벌써 110건입니다. 지난해는 41건, 재작년에는 15건에 불과했습니다. 올해가 다섯 달이나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폭증했습니다.

화강윤 취재파일용 표

신공항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있었던 가덕도의 땅은 이미 해묵은 투기판이었습니다. 가덕도의 사유지 259만7300여 평 중 가덕도에 사는 사람이 가진 땅은 55만 평, 21% 수준에 불과합니다. 올 초부터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필지들도 대부분 '외지인' 땅이다 보니, 원래부터 섬에 살던 주민들은 이번 건축 붐을 보상을 노린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돈 벌을라고 하는 거 아이가! 신공항이 들어온다니까 딱지(보상) 받으려고 하는 행사거든." (대항마을 주민)

염천에 찾아간 대항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했습니다. 취재 차량이 돌아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길은 좁고 가파른 경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사이 곳곳에 갓 지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새집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립식 단층 건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넓은 필지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 있는 집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건물은 지금도 곳곳에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도 집을 많이 지어 올리니 주민들은 먼지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생활 불편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불안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사가 많은 산비탈 마을인 데다, 태풍을 그대로 맞이해야 하는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지반들이 다 자갈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다 사라호 태풍 때 무너져서 (새로) 지은 집들입니다. (요새 새로 지은 집들은) 전부 다 조립식 아입디까? 보상용이지. 만약에 공항 안 들어오면 그 집 팔아먹기라도 하겠습니까. 아무도 사러 안 오지." (대항마을 주민)

이렇게 집만 지어놓고 사람이 살기는 할까? 새집처럼 보이는 집들을 다녀봤지만 아무래도 최근에 지은 집이다 보니 빈집이 많았습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임차인을 찾고 있거나 몇 달 째 준공이 나지 않고 있는 집도 있다고 하고요. 입주한 것처럼 보이는 새집도 대부분 사람이 없었지만, 평일 낮시간이니 빈집이라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많은 집들이 위장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토지 수용과 보상 과정에서 실거주를 꼼꼼히 검증하는 추세를 이들도 모르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안 살죠. 일부러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수도를 틀어 놓거든요. 계량기 돌아가라고. 밤에 시간 되면 불도 딱 켜고, 센서를 달아서. 사람이 안 살아도 전기세 나가야 하고, 수도 요금 내야 한다는 건 다 아니까." (대항마을 주민)

이런 집들, 왜 계속 짓게 놔두는 걸까? 지자체도 사정은 있습니다. 실제 공항 계획이 확정돼 토지를 나라가 수용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데, 건축·개발 제한 같은 행위 제한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활주로의 방향이나 위치는 물론이고 활주로를 몇 개나 만들지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건축 허가를 제한하는 거는 국민 사유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기에 맞춰서 적절하게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까 지금 당장 못 하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길근, 부산 강서구청 건축과장)

그들이 보상을 노린 투기꾼이든, 공항에는 관심이 없고 정말로 대항마을의 자연과 풍경을 사랑해서 새로 집을 지었든 간에 차이는 없습니다. 공항이 지어진다면 이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고, 그냥 산보다는 논밭이, 논밭보다는 건물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가덕도 반대 화강윤 취파용

원주민들이 더 속을 태우는 건, 살지도 않을 집을 짓고 주민등록만 옮길 사람들 때문에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자신들의 뜻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항마을 주민들은 지난 6월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을을 통째로 활주로로 바꾸려는 계획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살아온 집과 터전, 일터를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이 들어와서 보상 몇 푼 받는다고 해서, 바다밖에 모르고 살던 사람인데 육지 가서 뭘 하겠습니까? 이 좋은 자리 놔두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 놔두고 어딜 가겠어요?" (대항마을 주민)

"바다만 보고 사는 사람은 어디 가서 살겠노. 몬 산다 우리는. 나가라 카면 죽는다 나는." (대항마을 주민)

화강윤 기자 주민 인터뷰

이런 상황에서 보상금을 노린 '가짜 주민'이 늘어난다면, 기존 주민들의 목소리가 왜곡될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항마을의 주민등록상 주민은 올해 들어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8월 411명, 올해 1월만 해도 438명이었는데 8월이 된 지금은 543명입니다. 갑자기 주민이 25% 가까이 늘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매일 만나는 주민들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상을 바라고 주민등록을 옮긴 주민이 있다면 "대항마을 주민들은 신공항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게 됩니다.

"오직 경제적인 이유로 오히려 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분들이 생긴다면 이 마을은 분명히 엄청난 분열에 휩싸이게 될 거라고 봅니다. 보상은 기준에 따라서 할 것이기 때문에 외지인이냐 원주민이냐 차이는 없을 것이고. 상대적인 피해는 결국에는 보상이나 이런 걸 염두에 두지 않으셨던 원주민들이 보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손상우 신공항반대 시민행동)

화강윤 취파용 전망대 사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최근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둘러보고 갔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대항마을 전망대에 올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동남권 신공항 추진이 중요하다"며 말을 보탰습니다. 대망마을 허섭 통장은 "정치인들이 와도 그냥 스쳐만 지나가지, 사진만 찍고. 주민들한테 와서 주민들 애로사항 들어보고 한 사람이 없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국민의 대표라면, 개발할 땅을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마을에 사는 그 땅의 국민들 이야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