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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이 자초한, 이미 실패한 도쿄올림픽

[취재파일] 일본이 자초한, 이미 실패한 도쿄올림픽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드디어 오늘(23일) 막을 올립니다. 근대 올림픽 125년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올림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는 없는 게 참 많습니다. 먼저 관중이 없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해외 관중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개막을 앞두고 일본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자 일본 관중도 받지 않기로 해 사상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이 됐습니다.

일본으로 오겠다는 손님도 없습니다. 개회식에 참석하는 외국 국가원수로는 바로 다음 대회인 2024 파리올림픽을 치르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심지어 이번 도쿄올림픽 유치에 앞장섰던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개회식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일본 국민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은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올림픽 개최국이 이처럼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올림픽 개최에 부정적입니다. 오죽하면 IOC 파트너인 도요타 자동차 회사마저 올림픽 광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올림픽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현상입니다.

도쿄올림픽을 홍보하는 선전물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올림픽 개최국 도로 곳곳에는 올림픽을 널리 알리는 플래카드를 비롯해 각종 홍보물로 가득 차 대회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도쿄올림픽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눈에 띄는 선전물이 없습니다.

도쿄올림픽 행사 차량

선수들과 전 세계 취재진이 탑승하는 버스를 봐도 전면에 2020 도쿄올림픽이란 작은 스티커 하나가 붙어 있을 뿐 차량 옆면에는 도쿄올림픽을 알리는 그 어떤 표지도 없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급히 조달된 일부 차량에는 랩핑이 없었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처럼 랩핑된 차량을 찾기가 정말 힘들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각국 선수단은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를 준수한 뒤 일본에 들어왔는데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수촌 내 이른바 '화제의 가구'인 골판지 침대입니다. 지난 21일 뉴질랜드 대표팀 공식 SNS에 올라온 영상에는 조정 선수인 숀 커크햄이 침대 모서리에 털썩 앉자 골판지로 된 프레임이 찌그러지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골판지 침대가 약 2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데다 재활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이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일부 선수들은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사카 사격장의 내부와 외부

저는 지난 19일 사격황제 진종오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 사이타마현 아사카 사격장에 갔습니다. 사격장은 컨테이너로 만든 간이 건물이었는데도 내부 온도가 무려 36도나 됐습니다. 냉방 시설이 없는 것도 아닌데도 비용 절감 때문인지, 아니면 냉방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아무튼 냉방 기능이 작동되지 않아 한증막을 방불케 했고 진종오 선수는 연신 땀을 닦고 부채질을 해야 했습니다.

올림픽 준비를 제대로 끝까지 해내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전 총리 출신인 모리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여성이 많으면 회의가 길어진다"는 실언으로 지난 2월 사퇴해, '강제키스' 논란의 장본인인 하시모토 세이코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다음 달인 3월에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 총괄책임을 맡았던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여성 연예인의 외모 모욕 논란으로 또 물러났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9일 학창 시절 장애인을 괴롭혔다는 논란에 휩싸인 뮤지션 오야마다 게이고가 개회식 음악감독직을 내놓은 데 이어 개막을 하루 앞둔 어제(22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을 희화화하는 과거 동영상으로 논란이 된 도쿄올림픽 개회식 연출 담당자 고바야시 겐타로도 해임됐습니다. 고바야시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 개·폐막식 제작·연출팀에서 '쇼 디렉터'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과거 콩트에서 "유태인 대량 참살 놀이 하자"라고 대사를 하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확산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또 이번 올림픽은 가장 불편한 올림픽으로 불립니다. 모든 선수단과 취재진은 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면서 일본 코로나19 방역대책 스마트폰 앱 '오차'(OCHA) 애플리케이션에 건강 상태를 기재해야 합니다. 선수들은 대회 기간 외출을 할 수 없습니다. 취재진은 14일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이 기간 호텔 밖 외출은 15분으로 제한됩니다.

게다가 섭씨 35도가 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어 이번 올림픽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립니다. 모두에게 짜증이 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1주일 정도 이번 올림픽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이런 올림픽 왜 해야 하지?" 일부 도쿄올림픽 조직위 직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을 보면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올림픽'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대확산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처음으로 1년 연기됐습니다. 1년이란 시간이 더 주어졌지만 일본은 그 아까운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곳곳에서 우왕좌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망언 제조기'로 유명한 아소 다로 부총리가 지난해 했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올림픽은 40년마다 저주가 되풀이됐다."

그의 예언은 불길하게 적중돼 가고 있습니다. 지구촌 축제가 되기는커녕 썰렁하기만 한 도쿄올림픽은 이미 실패한 올림픽이 되고 말았습니다. 방역 실패와 준비 부족을 드러낸 개최국 일본이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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