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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릴 수 있던 아기인데"…'음주 수술'해도 정상 근무

"얘는 태어나도 가망 없겠는데?"

지난해 10월 9일 아침 8시 40분 쌍둥이를 임신한 A 씨가 산부인과에 갔다. 제왕절개 예정일까지 2주 남았지만 양수가 터져 급하게 병원을 찾은 것이다. 한글날 휴일이라 주치의는 없었다. 병원을 지키던 당직의는 "진통이 없으니 기다려보자"고 했는데 "자연분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 씨와 남편은 주치의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정기 검진 당시 자연분만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던 데다 병원에서 주치의가 당일에 올 수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9시 14분,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밤 9시쯤 첫째 아들의 태동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당직의가 달려왔다. 초음파를 해보더니 심장이 멎은 상태라고 했다. 당직의는 "얘는 태어나도 가망 없겠는데?"라고 했다. A 씨는 그대로 실신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치의가 밤 10시쯤 병원에 와 수술했다. 산모와 둘째 딸은 괜찮았지만 첫째는 이미 숨진 뒤였다.

아이의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병원에 달려왔다. 자연분만도 가능하다고 안내할 정도로 건강했던 태아가 사산했다는 소식에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주치의에 따져 물었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주치의가 얼굴은 빨갛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술을 마신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 실제 음주 상태였다. 휴일이라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술까지 마셨는데 태아의 심정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음주 상태로 환자 몸에 칼을 댄 것이다.

음주 중 수술

술 마셨는데도 '주치의 책임 분만' 고집

가족들은 A 씨가 병원에 온 아침 8시 40분부터 태아의 심정지가 확인된 밤 9시 14분까지 왜 당직의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실제 가족들은 "수술이 끝난 뒤 당직의에게 낮에 수술했으면 두 아이 모두 살릴 수 있지 않았겠냐고 물었더니 그랬을 것 같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병원장 역시 "당직의가 수술을 했으면 기회가 있었을 텐데…"라며 "거꾸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당연히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와 진료기록부, 태동기록지 등을 분석한 결과도 그랬다. 이 전문의는 "기록상 출산 당일 심정지 전까지 태아에 이상 소견은 없어 보이지만 쌍둥이인 데다 37주 이전에 양수가 터져 병원에 왔기 때문에 의사 열에 아홉은 낮에 수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산모는 고혈압 증세에 체중도 과해 고위험 산모로 분류됐는데 사산한 태아가 주 수에 비해 성장이 더디단 소견도 받은 적이 있어 가족들은 대학병원에도 출산이 가능한지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주치의가 올 수 있다던 시간에 왔거나 아예 처음부터 당직의가 낮에 제왕절개 수술을 했거나 정 여의치 않아 산모를 대학병원에 옮겼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던 아기였다는 뜻이다. 병원 측은 '주치의 책임 분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병원 의료진은 출산 직후 가족과의 면담 자리에서 "저희가 자부심을 갖고 노력하려는 것 중의 하나가 주치의 분만"이라며 "그냥 당직의에 맡기는 게 아니라 첫 달부터 열 달까지 계속 주치의가 분만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주치의는 "그날 새벽부터 지방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 무척 피곤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심지어 제왕절개 수술실에는 주치의는 물론 당직의도 함께 들어갔다. 새벽부터 피곤했다면 아예 당직의에게 판단을 맡겼거나 적어도 수술실에서라도 술 마신 걸 감안해 당직의에 수술을 맡기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주치의 책임 분만을 무리하게 고집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10일 병원에서 음주 측정 받는 주치의

 술 마셨는데도…"수술은 잘 됐다"

취재진은 주치의와 당직의가 아직도 병원에서 근무하는지 물었다. 정상 근무 중이라고 했다. 사실 제왕절개 수술 직후에도 병원은 '음주 수술'의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가족과의 면담 내용을 보면 병원 관계자들은 "수술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법적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에 정해진 범위 내면 사실은 허용이 되는 것"이라며 음주 수술을 음주운전에 빗대 말하기도 했다. 새벽 1시쯤 주치의의 음주 측정 결과가 음주운전 처벌 기준 미만인 혈중알코올농도 0.01%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위드마크 공식을 통해 그가 수술한 시점에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했는데 0.038%였다. 음주운전으로 따져도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물론 음주운전과 음주 수술을 같은 잣대에 두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가족들은 "음주 수술해도 계속 의사 생활 할 수 있냐"고도 물었다. 병원은 "그건 병원이 정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 말이 맞다. 현행 의료법은 음주 수술에 대한 직접 처벌 규정이 없다. 의료법 66조에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 1년의 범위에서 면허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규정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2015년에도 술을 마시고 3살배기 아이의 턱을 꿰맨 의사가 적발됐는데 한 달 자격정지 처분이 전부였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음주 의료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두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됐다.

음주 중 수술 의사 청원

"사망에 준하는 보상 제시"…"잘못된 관행 개선돼야"

경찰은 병원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낮 시간대 병원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자문을 구해 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음주 수술과 관련해서도 의료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병원은 "유족들이 어떤 위로나 사과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그런 만큼 보상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산모의 뱃속에서 태아가 사산할 경우보다 수술 과정이나 출산 이후 아기가 사망한 경우 손해배상금이 훨씬 큰데 이 사건의 경우 비록 사산했지만 사망에 준하는 보상금을 유족에게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기사가 방송되기 전 A 씨와 남편은 "저희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관행들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상을 통해 합의가 되든 소송까지 이어져 의료진의 과실을 따지든 이번 사건 같은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환자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주치의 책임 분만을 강조하는 병원은 여전히 많다.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사가 24시간 내내, 휴일까지 개인 생활 없이 대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치의 책임 분만을 고집하더라도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음주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흔히 음주운전은 살인에 비유된다. 그럼 음주 수술은 의료인의 품위 손상에 빗대는 게 맞을까, 살인에 비유하는 게 적절할까. 답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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