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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명숙 사건이 남긴 교훈

[취재파일] 한명숙 사건이 남긴 교훈
재소자 2명이 한명숙 전 총리를 모해하려고 10년 전에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은 최종적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으니 대검 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다시 심의하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에 따라 논의 과정을 다시 거쳤지만 결론이 바뀌지 않았다. 대검 부장검사 회의에서도 불기소 의견이 10명, 기소 의견이 2명, 기권이 2명으로 무혐의 처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었다. 검찰은 재소자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재소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검사가 지시한 적도 없다고 결론을 냈다.

박범계 장관은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위증이 아니라는 결론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10년 전의 부적절한 수사 관행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대검 감찰부와 법무부 감찰관실에 한명숙 사건 수사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하게 합동감찰하라고 지시했다. 문제가 드러날 경우 징계할 수 있는 시효인 3년이 끝난 후에도 7년이 더 지난 사건이지만, 검찰 직접수사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한명숙 사건에 대한 합동감찰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하지 않기로 한 대검 부장회의의 결론이 회의 종료 직후 보도된 경위에 대해서도 감찰하라고 박 장관은 지시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왜 하필 '한명숙 사건'일까

검찰 직접수사와 관련된 부적절한 관행에 대해서 점검해보자는 명분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왜 하필 한명숙 사건이냐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사건은 징계시효가 한참 전에 지나버려서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징계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사건 당사자가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방식을 문제 삼은 경우는 한명숙 사건 이후에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 정부가 높이 평가하는 검찰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도 사건 당사자들은 검찰이 부적절한 수사 방식으로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과 기무사 사건 수사 과정에서는 세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서원 씨도 검찰이 딸 정유라 씨를 이용해 자신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확인하고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한명숙 사건에 대해 10년이 지난 후라도 감찰을 해야 한다면, 훨씬 더 최근에 벌어진 현 정부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선 감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수사를 받은 사람이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원세훈이 아니라 '우리 편' 한명숙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와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핵심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한명숙이 돈을 받았다는 판결을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 검찰의 불법적 수사 방식을 고발하려는 것뿐이라고 반론하는 사람도 있다. 검사들이 재소자들에게 위증을 교사한 불법이 드러났다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이전까지는 행사된 적이 단 한 번 밖에 없었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이 사건을 위해서만 두 번이나 발동됐고, 한 차례 결론이 난 이후에도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다시 심의하라고까지 지시했지만, 최종 결론은 위증이 아니었고 위증 교사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법무부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다. 검사가 불법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라졌고, 10년 전의 수사 관행이 부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콕 집어 합동감찰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한명숙' 사건이기 때문이다.
 

감찰 정보 공개한 임은정이 정보 유출 감찰?

대검 부장회의 결과가 보도된 경위를 감찰하라는 지시 역시 '내로남불'식 보복성 감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임은정 검사는 "대검 감찰부" 입장이라며 감찰 중인 내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차례나 올렸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이나 대검 대변인실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감찰 중인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대검 부장 회의 결과가 공개된 것이 문제라면 임은정 검사와 관련된 논란도 마땅히 감찰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임은정 검사는 감찰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감찰팀의 일원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은정 검사가 감찰에 참여할 것이라는 법무부 감찰관의 발표 이후 박범계 장관은 "문제 제기가 있다면 언론 유출 부분은 임 검사가 감찰하지 않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라고 한 발 빼기는 했다.) 게다가 한동수 감찰부장과 임은정 검사는 대검 부장회의에서 기소 의견을 주장하다가 압도적 다수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한명숙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실제로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이기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법무부는 한동수와 임은정의 '보복성 감찰'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까?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

한명숙 사건의 '레거시(legacy)'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둘러싸고 지난 10달 동안 벌어진 일은 대단히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움직일 수 없는 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이 있더라도,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과 가까운 정치 세력이 집권하면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은 인사 불이익은 물론이고 감찰과 기소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사례가 확립된 것이다. 가까스로 혐의에서 벗어나더라도 10년 전의 부적절한 관행을 이유로 다시 감찰을 받을 수 있다는 점까지도 확실히 보여줬다. 이번 사건이 검찰에 남긴 교훈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중에 정권을 잡을 가능성 있는 정치 세력에 속해 있는 거물 정치인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권력이 원하는 수사를 할 경우에는 논란이 불거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권력이 원하지 않는 수사를 할 경우에는 10년 후에라도 '잘못된 관행'에 대해 추궁당할 것이란 점이다. 두 가지 교훈을 더 많은 검사들이 깨우칠수록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 전체에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고름 같은 부패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한명숙 사건의 '레거시(legacy, 업적)'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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