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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적(利敵)'이라는 낙인…'조국 교수'는 '조국 수석'에게 뭐라고 할까?

[취재파일] '이적(利敵)'이라는 낙인…'조국 교수'는 '조국 수석'에게 뭐라고 할까?
-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 볼테르 (p. 100)

- '사상의 자유'의 원칙은 우리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의 원칙을 뜻한다" - 홈스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p. 76)

- 민주주의 사회라면 마땅히 "당신의 사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질문은 상대방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현대사에서 "당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은 실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으며, '빨갱이'라는 낙인은 "다른 모든 사회적 지위를 압도하는 주(主)지위를 구성"해왔다. …… 분단과 독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반공주의 회로"가 작동하면서 모든 시민이 체제에 순응하도록 강요당했던 것이다. (p. 82)

-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용공'과 '반공'의 이분법으로 재단되고, 모든 비판적·이탈적 문제제기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따라서 언제나 말조심해야 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p. 83)

- 표현의 자유는 우호적으로 수용되거나 모욕적이지 않은 또는 무관심한 문제로 간주되는 정보와 사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또는 일부 주민에게 모욕과 충격을 주거나 교란시키는 정보와 사상에도 적용된다. …… 이는 다원주의, 관용 및 관대함의 요청이며, 이것 없이는 민주주의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 - 1995년 '유엔인권이사회' (p. 90)

- 인권을 제약하는 구실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어온 '국가 안보'의 논리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1995년 '국가 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 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 제 2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규제는 그 순수한 의도와 명시적 효과가 무력 사용 또는 위협에 맞서 국가의 존립과 영역적 통합성을 보장하기 위함이거나, 외적으로는 군사적 위협, 내부적으로는 폭력적 정부 전복을 위한 선동과 같은 위협 또는 무력 사용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능력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 외에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p. 93)

- 우리 사회에는 진정으로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이 필요하다. "사상의 열성적 표현은 민주적 제도를 진보시키기 위한 가장 긍정적인 방도"이기 때문이다. …… 기성의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고, 조사하고, 논쟁하고, 도전하는 것, 이러한 자유 없이 진보는 없다" (p. 99~100)

[취재파일] '이적(利敵)'이라는 낙인…'조국 교수'는 '조국 수석'에게 뭐라고 할까?
2001년 조국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란 책에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조국 교수는 1992년 '사상의 자유'라는 책을 냈는데, 이를 손봐서 2001년에 다시 펴낸 겁니다. 이 책에서 조 교수는 "양심과 사상을 실현하는 자유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표현의 자유'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국'이라는 인물은 90년대 대학생들에게는 신화적 인물이었습니다. 박노해·백태웅 씨 등과 '전설의' 사노맹 활동을 하고, 젊은 나이에 법학 교수가 돼 '사상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이론적 무기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적 집총 거부권 보장 등을 부르짖었고, 그의 이론들은 포스트 386 세대들의 민주주의관(觀) 정립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위 인용한 구절들처럼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살아야 할 민주주의 사회는 최소한 저런 모습이어야 하겠구나라는 신념 체계를 세우는데, '조국'이라는 인물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 '조국 교수'를 기억하는 면에서 보면,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쏟아 낸 페이스북 글들은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그가 '이적(利敵)'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걸 보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 '전쟁'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7월 18일, 조국 수석 페이스북)

-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7월 20일, 조국 수석 페이스북)

- 이러한 일본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이에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정략적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7월 21일, 조국 수석 페이스북)



조국 수석은 울산대 교수 시절 '남한 사회주의 과학원' 사건과 관련해 이적단체 가입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아마 본인 스스로 '利敵'이라는 말의 무게, 그 무서움 혹은 부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그가, 일부 야당과 보수 언론이 정부의 대응 기조에 '비판적·이탈적 문제제기'를 했다 하여 '이적 행위'라고 규정한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일부 야당과 보수 언론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두둔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틀린 사실, 혹은 '국익'에 반하는 주장이 있을 겁니다. (또 나름대로 자신들이 일본을 잘 안다며 '지일파'(知日派) 관점으로 지적했노라 하는 주장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그들이 정부를 매도한다며 '이적'이니 '친일파'니로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는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입니다.
조국 수석
20여 년 전 '조국 교수'는 빨갱이라는 낙인찍기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음"을 웅변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된 '조국 수석'은 그 자신이 또 다른 낙인찍기에 나선 모습입니다. 물론 '빨갱이'와 달리 '이적 행위자', '친일파'라는 낙인은 이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직접적인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으니 경우가 다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20년 전 '조국 교수'와 달리 현재의 '조국 수석'은 '권력자'입니다. 그것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곧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될 핵심 권력자입니다.

법률적인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낙인찍기는 곧바로 '권력의 효과'를 불러옵니다. 대중의 광범위한 비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동시에 대중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겁니다.

위 조국 수석의 페이스북 글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 (북한과) '전쟁'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 이러한 북한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이에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한국 대법원과 000 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운동권과 야당의 정략적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 1953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북한 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종북 빨갱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러디한 이유는 구조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섭니다. 이적의 대상을 일본에서 북한으로 바꾸고, 친일파를 종북으로만 바꾸면, 20년 전 '조국 교수'가 분노해 마지않았던 '빨갱이' 낙인찍기와 구조가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주의적 이분법 논리입니다. 국가가 정해놓은 선 앞에 일렬로 일치단결해 서라는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의 논리이자 북한 김일성-김정일 세습 정권의 통치 논리이기도 했습니다. 다양성의 사회, 더 많은, 더 깊은 민주주의 사회로 가자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진보적 지식인'의 사유 구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익' 또는 '애국'의 가치가 최상위 가치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의 '경제 전쟁 도발'로 당장 국익이 백척간두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 앞에서 '이견'은 곧 '이적'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너무나 익숙한, 과거 '조국 교수'가 그토록 극복하고자 했던, 국가 안보를 앞세운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의 데자뷔입니다. "북한의 적화 야욕 앞에 사상의 자유가 어디 있냐"는 논리와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조국 민정수석
그래서 '조국 수석'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애국'의 가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건지. '조국 교수'가 그토록 강조했던바,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에서 백가쟁명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거기서, 권력의 낙인찍기를 거두고, 자유로운 논쟁과 토론으로 논박하고 압도할 수는 없는 건지..

그리고 상상해 봅니다. 20년 전 '조국 교수'라면 오늘의 '조국 수석'에게 어떻게 말했을까...

"자네,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애국이냐 이적이냐가 아닐세. 중요한 건,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냐, 인정하지 않느냐일세"라고 일갈하지 않았을지…….
[취재파일] '이적(利敵)'이라는 낙인…'조국 교수'는 '조국 수석'에게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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