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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의겸 부동산 실패기…이번에도 '실패'하기를 바라며

[취재파일] 김의겸 부동산 실패기…이번에도 '실패'하기를 바라며
● 김의겸의 부동산 실패기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였던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논란 하루 만에 사퇴했습니다. 청와대 안에서는 평생 무주택자가 첫 집을 구입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불법도 없었는데 사퇴는 과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에 더 이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김 대변인의 선제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현 정권이 자칫 '투기 정권'이라는 오명을 본의 아니게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김 전 대변인 부동산 투자 건을 취재하다가 그의 부동산 투자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투자기라기보다는 '실패기'에 가까웠습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이 전한 '김의겸 부동산 실패기'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과거 당시는 직함을 생략합니다.)

1990년 '한겨레' 기자가 된 김의겸은 사회부 법조팀 등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민완 기자였습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회사 선배의 소개로 서울 한남동의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자격을 구입하게 됩니다. 당시 가격 2천만 원가량에 프리미엄까지 주고 샀다고 합니다. 그리곤 조합이 요구하는 대로 꼬박꼬박 빚까지 얻어가며 납부금을 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사기'였다는 겁니다. 조합은 해당 부지에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지만, 당시 그 지역은 고층 아파트 허가가 날 수 없는 고도제한 지역이었습니다. 조합은 해산됐고, 김의겸은 납부했던 돈을 거의 되돌려받지도 못한 채, 당시 전 재산이었던 1억 몇천만 원을 송두리째 날리게 됩니다.

이 일로 김의겸은 부인과 어린 자녀를 데리고 회사 또 다른 선배 집에서 몇 년 동안 그야말로 '더부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더부살이 하면서도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몇 년 뒤에 결국 '독립'해 전세살이를 시작합니다. 잠실에 잠시 전세를 살다 목동으로 이사해 17년여 동안 목동에서 전세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 사이 집을 '살'(Buy) 기회도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노무현 정부 시절, 전세살이에 지친 그의 부인이 목동 아파트를 사기로 마음 먹고 가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김의겸이 버럭 화를 냈다고 하지요. "부동산 시대는 갔다. 앞으로 부동산은 절대 오르지 않는다"라면서요. 당시 김의겸은 참여정부 청와대 출입기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부동산에 달려가서 바로 계약을 해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두가 아시는 바입니다. 김의겸이 계약을 해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목동 등 서울 아파트 집값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이지요. 결국 김의겸은 자신 명의 집 한 채 갖지 못한 채 목동에 쭉 전세로 살게 됩니다.

그러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 흑석동 재개발 지역 건물을 매입하게 된 거죠. 매입 과정도 김 전 대변인의 해명대로 부인이 상의 없이 계약을 한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까운 친척이 흑석동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매물이 나와 부인이 알아서 계약을 했고, 김 전 대변인이 추후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25억 원 짜리 건물인지라 10%인 계약금만 2억 5천만 원에 달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사퇴의 변을 통해 밝힌 대로 일생 동안 '내 집 마련에 대한 무능과 게으름, 결정 장애'로 '부동산 실패자'가 된 셈이니, 요즘 말로 부인 말에 '찍' 소리도 할 수 없는 신세이기도 했겠지요.
부동산, 전세, 아파트
● '강남 불패'의 한 축 '엘리트 586'

그래서 "노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좀 넓은 집과 노후 생활 자금이 필요했다. 투기가 아니라 실거주 목적의 투자다"라는 김 전 대변인 해명이 거짓이라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본인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겁니다.

특히나 김 전 대변인을 비난하는 또래 '엘리트 586'들을 보면서 그가 더 억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주로 교류했던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엘리트 586'들, 20대 시절 거리에서 돌을 던졌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건, 독서실에서 고시 공부를 했건, 상당수는 강남에, 목동에, 서울에 집 한 채씩은 갖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이들 세대는 시대적 수혜를 많이 받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회에 진출하고 생애 첫 내 집을 장만하는 시기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인데, 이때는 집값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었고, 심지어는 1997년 IMF 금융위기로 집값 하락이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사회 초년일 때여서 그 윗세대가 겪었던 IMF 정리해고 칼바람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전후 서울 강남 은마 아파트와 목동 아파트 단지 시세가 2억 원 대였으니 어찌보면 우리 사회에서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이었을지 모릅니다. 당시부터 부동산에 눈 밝던 '엘리트 586'들은 빚을 내서든,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아서든 일찌감치 알짜배기 지역의 주택 구입에 나섰고, 이후 이들은 '강남 불패' 신화의 한 축이 됐습니다. (2003년에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저도, 이들 세대로부터 "집을 사려면 무조건 강남에 사야 돼"라는 말을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으니까요.)

특히 김 전 대변인을 거세게 비난했던 국회의원들의 최근 재산 공개 내역을 보면, 전체의 1/4 가량인 71명이 강남에 집을 갖고 있고, 다주택 소유자만 113명에 달하니, 그들의 '공격'에 더 화를 삭였을지도 모릅니다. (현 청와대에도 다주택자·부자들, 꽤나 많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김 전 대변인은 부동산엔 참 아둔한 사람이었던 셈입니다. 또래 '엘리트 586'들이 강남 불패 신화를 신봉하면서 다닐 때, 기자 일에만 충실했고, 또 참여정부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부동산 불패 신화는 끝났다'는 참여정부의 약속을 열렬히 믿었던 거니까요.

고등학교 때 학교 선생님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걸 지켜보고, 20대에는 민정당 연수원 점거 사건을 주도하며 구속까지 됐던 김 전 대변인은 어쩌면 이들을 보며 안치환 가수의 노래 '자유'에 나오는 대목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혹은, 욕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이들을 부러워했거나요.
역전세난
● 현직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올인 투자'가 문제

그렇다고 김 전 대변인의 흑석동 부동산 '올인 투자'가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엘리트 586'들은 다르겠지만, 그가 현재 갖고 있다는 전 재산 14억 원을 평생 가져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서민'들이 무수히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 '서민'들은 '엘리트 586'들이 과거, 민중·노동계급·학우대중·근로대중·피억압대중 등등으로 호명했던 사람들일 겁니다.) 그가 전 재산에 은행 대출 10억 원까지 더해 '딱지'를 사서 들어 가고 싶어 했던 고급 '캐슬' 아파트('흑석9 시그니처캐슬'을 검색해 보시면…)는커녕, 여전히 내 집 한 칸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 800만 가구가 넘습니다.

김 전 대변인은 '모든 건 부인이 상의없이 한 일'이라고 했지만, 결국엔 25억 원짜리 건물을 부인과 지분 절반 씩 공동 등기했습니다. 이미 흑석동 지역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투자를 했으니 재개발 사업이 어그러질 일은 절대 없겠다는 기대가 넘쳐난다고 합니다. 이 자체로도 현직 청와대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은 분명합니다.

● 문재인 정부 '성공' 위해 김의겸의 투자는 또 다시 '실패'하기를

그래서 평생 '부동산 바보'였다는 김 전 대변인의 이번 부동산 투자도 또다시 '실패'로 귀결됐으면 합니다. 악의를 담은 바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원하고 있을지 몰라서입니다. '실패'라는 건 몇 년 뒤 재개발이 완료됐을 때 시세 차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차익을 노린 게 아니라 실거주 목적이었다는 그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도일 겁니다. '까칠한 대변인'을 자처할 정도로 꼬장꼬장한 선비 스타일인 김 전 대변인의 실추된 '명예'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할 겁니다. "명예를 버리고 돈을 좇은 청와대 대변인으로 기억될 것"(정의당 논평)이라는 모욕 같은 꼬리표를 떼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의 부동산 투자 '실패'는 곧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성공'했다는 징표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취임 이듬해부터 급등한 부동산 가격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집값 반드시 잡겠다, 부동산으로 돈 벌지 못하도록 하겠다, 나아가 집값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수준으로 되돌려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직한 노동을 통해서도 충분히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부동산 정책 목표"라는 '멋진' 언사들도 나왔습니다. 참여정부처럼 처참히 실패하지 않고 그러한 약속과 정책들이 성공한다면, 김 전 대변인은 2018년 25억 원에 '상투'를 잡은 셈이 되고, 2022년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는 시세 차익도 없게 되는 부동산 투자의 '실패자'가 될 겁니다.

그래서, 부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서민 대중'의 마지막 희망조차 영영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덧붙여 김 전 대변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그의 부동산 투자가 또다시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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