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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의 수제화 다시 만날 날이 온다

문재인 대통령 수제화 사회적 기업 재기
어제(30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회의실.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발기인 대회가 열렸습니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20명 모두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을 보면 구두업계 관계자, 유명 작가와 연예인, 장애인단체 대표 등 다양했습니다. 중년의 1급 시각장애인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지오 시즌2’를 위한 발기인 대회를 시작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수제화 사회적 기업 재기
이 분은 사회적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의 대표였던 유석영 씨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낡은 구두 사진이 인터넷에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대통령의 구두가 낡았다는 것도 화제였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주축이 된 기업이 만든 수제화였고, 지난 2013년에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유석영씨는 바로 그 기업의 대표였고 ‘아지오’는 구두 브랜드였습니다.
문 대통령 구두
● "지금까지 버텼더라면 더 많은 청각장애인이…"
 
SBS뉴스 <착한 성장> 시리즈로 사회적 기업의 생존 요건을 취재하기 위해 열흘 전쯤 경기도 장애인복지 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인 유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구두 만드는 풍경’을 창업하기 전에도 파주시 장애인복지관장을 맡았던 유 대표는 폐업 이후에도 장애인들이 만든 각종 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유 대표는 지난 5월 초 대통령 비서실에서 수제화 제작이 가능하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폐업해 불가능하단 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인터넷에선 대통령의 낡은 구두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 이후 유 대표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관심이 쏟아진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버텼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소통의 장벽 때문에 험한 데서 일하거나 저임금 받으시는 분들 많아요. 지금까지 버텼더라면은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물꼬 하나만 잘 터줬어도... 그런 아쉬움이 좀 저한테는 많이 남죠.”
 
● "최고의 품질로 모든 열정을 쏟았죠"
 
장애인 복지관장을 하면서 직접 본 청각장애인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유 대표는 지난 2010년 40년 경력의 구두 장인, 청각장애인 6명과 함께 공장 문을 열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의 기술과 최상의 가죽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승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명품 수제화에 걸맞게 제품 구입 문의를 받으면 직접 찾아가서 발 사이즈와 모양을 재고 나서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5종의 신사화 250족을 생산하고, 한 수녀원에는 편안하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수녀화 300족을 납품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업으로도 인증을 받았습니다.
 
유 대표는 인터뷰에서 ‘더 죽을 각오로 덤볐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당시 그와 직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품질을 믿고 모든 열정을 쏟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수제화 사회적 기업 재기
“매장이 따로 없으니까 아는 분들께 구두 한 켤레 드릴 테니까 모델을 해주세요, 여러분들이 모델해주신 그 보증서를 가지고 구두를 팔겠습니다 해서 홍보물도 만들었고요. 경기도청과 국회도 가서 저희들이 찾아갔습니다. 특히 국회에선 저희 회사 취지를 설명하면서요, 그냥 팔면 안되고 스토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9월 2일을 ‘구두 데이’라고 하자 그렇게 해서 많은 분이 오셨는데, 그 때 의원이시던 문재인 대통령이 오신 거죠. 저희가 품질은 자신을 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이어나갔었죠. 한 때 백화점에도 들어갔습니다.”
 
▶ [수도권] 장애우가 만든 '구두'…명품 안부러워 (2011.02.17)
 
● '사회적 기업이니까 되겠지'는 잊어라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안에 속해 있던 사회적 기업이다 보니 마음대로 투자를 받거나 돈을 빌릴 수 없었습니다. 또 판매망이 한정적이어서 매출도 쉽게 늘어나지 않다 보니 신제품 개발이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쓸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결국 경영 악화에 빠지게 됐습니다. 열정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장애인 생산 물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편견도 바꾸지 못했던 것도 컸습니다. 장애인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벽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을 위한 수제 구두
인터뷰를 마치면서 유 대표는 후배 사회적 기업가들에게 ‘사회적 기업이니까 되겠지”라는 생각은 미리 내려 놓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당당하게 품질과 가격, 디자인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각오가 돼있어야 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장애인이고 여성이고 새터민이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상품이 시장에서 견뎌낼 수 있는 상품이어야 되고 참여자들이 같이 해서 잘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만들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고 또 환경이 이러니까 이렇게 만들면 소비자들이 사주겠지'라는 생각은 바꿔야 될 것 같아요.”
 
● 4년 만의 재기…두 번의 실패는 없다
 
‘구두를 만드는 풍경’ 은 폐업 4년 만에 재기를 위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예전처럼 청각장애인이 맞춤형 명품 수제구두를 만들 계획입니다. 열정 또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실패에서 배운 교훈, 바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것이 바뀝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합니다. 마케팅, 판로와 관련해서는 많은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계획들이 세워지고 있고,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예정입니다. 내년 3월쯤이면 대통령의 수제화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대통령 수제화 만든 기업 결국 폐업…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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